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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ul 09. 2018

'나'의 어느 날, 행복의 구분선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네가 아니면 아무도 못 믿겠어.

  너의 한마디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덧없이 흘러가던 하루 속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어느 날 네가 찾아왔다. 너에게 시간을 쏟는 만큼 내 행복이 부풀어 오를까. 나는 하염없이 바람을 넣었다. 함께하는 하루가 쌓여갈수록 너에게 미소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풍선은 시간만큼 부풀어 올랐다.   


  너는 나이팅게일 같아.


  어느 날의 너는 말했다. 불현듯 흘러나온 한마디에 나는 숨이 막혔다. 풍선이 부풀다 못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너를 보며 가만히 멈춰 있었다. 너의 표정을 살피며 나는 최선의 대답을 찾아야 했다.

 

  네가 실망하기 전에. 네가 나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라고 착각했다. 대답을 찾지 못하는 나를 두고 너는 정적을 깨버렸다. 익숙한 이야기가 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최악의 대답을 꺼냈다.

  전에 들었던 거잖아. 너의 입가에서 불편한 진실이 흘러나왔다.


  아, 내가 너한테도 말했구나. 다른 친구랑 착각했나 봐.


  나는 비로소 ‘나’의 가치를 깨달았다. 온 힘을 다해 들었던 너의 이야기. 고민 끝에 건넨 나의 대답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나 말고도 너의 곁에서 풍선을 부는 사람이 가득했다. 넌 행복할까. 나는 ‘너’의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는데. 풍선이 너의 앞에서 터져버렸다.


  풍선이 터지고 나니 너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너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기 위해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나에게 털어놓을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내 대답은 그저 너의 이야기 속 짧은 쉼표였다.


  너의 한마디 너머 ‘나’는 어디 있을까. 나는 그제야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은 너를 따라 부풀지 않았다. 나를 짓누르던 풍선은 터져버렸다. 내 앞에는 웃고 있는 네가 있을 뿐이었다.


  진실을 깨닫고 나서도 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너와 잠시 멀어지면 네가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너’를 봤으니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충분했으니까. 내가 노력한 만큼 네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네가 변했어.


  너에게 나는 ‘갑자기’ 변한 사람이었다. 맹목적으로 너를 바라보던 내가 너와 멀어지려 한 것이다. 터져버린 풍선의 조각을 나는 하나하나 치워버렸다. ‘너’는 ‘나’를 몰랐다.

  나 역시 ‘너’를 몰랐다.


  너와의 거리가 멀어지자 나는 스쳐간 하루를 마주 보게 되었다. 너와 함께한 하루 속에서 나는 오로지 너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하루 속에서 나는 지우개로 지워진 얼굴이었다. 다 지워지지 않은 형태가 어중간하게 버티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나’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시 ‘나’를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나’를 알아가야 했다. 너를 벗어나고 나니 하루에 시간이 넘쳤다. 너의 생각에 몰두하던 버릇을 ‘나’에게 넘겼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발목 위를 스치는 빗물이 시원해서. 카페에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했다. 몸을 움직여야 속이 풀리는 너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어떤 얼굴로 너의 옆을 지켰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불현듯 너의 소식이 들릴 때면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너에게 몰두했던 이유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스스로가 가치를 부여할지 몰라서 나는 너의 한마디에 나를 부풀렸던 것이다.


  너는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더는 너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어느 날에는 구분이 생겼다.


이제야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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