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노력을 해야만 이어갈 수 있는 관계. 나는 자신을 다독이며 세어나가는 관계를 붙잡기 바빴다. 내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그들은 내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곤 했으니까.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야 나는 진실을 깨닫곤 했다. 내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자신을 탓하기 바빴다. 떠난 사람들에게 문제를 찾는 것보다 자신에게 가혹해지는 것이 더 쉬웠으니까. 덕분에 나는 조금씩 관계 속에서 움츠러들었다. 상처 받기 싫어서 미소 아래 자신을 가뒀다. 마음 깊은 곳에 굳게 잠긴 벙커를 만들어 버렸다.
벙커 속에 깊숙이 숨어 아무 관계도 만들지 않으면 상처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하지만 굳은 믿음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면서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결국 관계를 쌓기 시작한 것이다. 시선이 주는 부담 아래 나는 ‘마음을 연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른 이들 사이에서 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같은 길을 반복한 것이다.
욕심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사람들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자신을 바라보기 전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살폈다. 모두가 지나치듯 흘리는 한마디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시 ‘열심히’하는 관계의 굴레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상처 받기 싫은 자신을 감춘 채로.
정말 고마워. 너밖에 없어!
익숙한 관계의 클리셰가 내 앞에 펼쳐졌다.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관계. 손을 꽉 쥔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내 얼굴. 그들은 정말 나를 알고 있을까. 나는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그런 의문이 다시 찾아왔을 때 이런 대답을 듣게 되었다.
별일 아니잖아. 그게 왜 힘들어?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한마디에 나의 허상은 뿔뿔이 흩어졌다. 익숙한 노오력은 뻔한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직장이라는 관계를 벗어나면 그저 사라져 버릴 관계.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만 ‘필요한 사람’인 것이지 직장 ‘밖’의 관계를 이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눈치를 살핀 것의 반만큼도 그들은 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끊어질 관계니까.
그날을 계기로 나는 벙커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기다렸던 것처럼 나오고 싶어 하는 한 아이. 금방이라도 자신이 채찍질당할 것 같아서 웅크린 아이. 나는 언제까지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으려 하는 걸까.
결국, 내게 필요했던 건 인정하는 일이었는데.
떠나가는 관계를 놓을 용기. 붙잡히지 않는 관계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남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신을 제삼자처럼 지켜보는 걸 멈추는 일.
퇴사를 앞두고 그 사람은 나에게 자신의 퇴사를 축하하는 자리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참석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반응하는 그 사람. 돌이켜보면 한 번도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한 일이 없었다.
나는 못 갈 것 같아요.
나의 대답에 그 사람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처음으로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었다. 마음속 깊이 뭉쳐있던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꼭 참석해달라는 그녀의 말을 뒤로한 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는 놓아버릴 관계에 자신을 쏟아내는 일을 하기 싫었으니까.
관계를 잃었지만, 그날은 괴롭지 않았다. 빠져나간 덩어리만큼의 후련함이 마음을 채웠다. 벙커 속 웅크리기 바빴던 아이는 어느새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