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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Sep 07. 2018

슈퍼 갑에 치인 당신에게

스물두 살의 어느 날, 나는 을이었다.

  영화관에서 갑질은 일상이었다. 매표 업무를 맡았던 나는 자주 그들의 폭탄을 감당해야 했다. 보고 나온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 시간이 끝난 영화를 보러 들어가겠다는 고집으로, 심지어는 새치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가 사단이 벌어졌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들의 갑질은 일정했다. 눈물이 고일만큼 폭언을 쏟아내고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매표소 앞을 가로막았다. 어떤 설득도 사과도 받지 않던 그들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는 언제나 같았다.


관리자 나와!


  당당했던 그들은 그토록 원했던 ‘관리자’를 만나고 나서야 되돌아갔다. 똑같은 사과를 전해도 ‘아르바이트생’과 ‘관리자’의 무게는 달랐으니까. 영화관에서 그들은 분명한 ‘갑’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관 티켓 값은 그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영화만’ 관람하는 금액이 아니었을 테니까.



  돌이켜보면 스물두 살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갑질’에 길들여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무게를 가진 한마디가 언제나 입가에 머물렀다. 그들의 폭발이 멈출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갑질에 치인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는 바로 그들이 그토록 찾는 ‘관리자’였다. 컴플레인이 생겼을 때 중간에서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바로 ‘관리자’였으니까.



문제는 그 ‘관리자’인 매니저가 나에게 또 다른 ‘슈퍼갑’이었다는 것이다.



  매니저의 미간은 언제나 구겨져 있었다. 손님을 대할 때도 동료를 대할 때도 그녀의 입가는 미소를 머금었지만 미간만큼은 그대로였다. 미간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만났을 때 보다 구겨졌다. 미간과 함께 치솟은 눈썹은 그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일이 능숙해질 때까지 나는 몇 번이고 그 얼굴을 마주했다. 각자의 업무로 인해 모두가 사라진 사무실에서 나는 그녀의 손가락질을 견뎌냈다.



일이 늘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일이 익숙해진 무렵부터는 그녀가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홀연히 나타나 나에게 자신의 ‘사담’을 늘어놓는 횟수가 늘었다. 여전히 나에게 매니저는 무서운 존재였지만 그녀는 ‘매니저’가 아닌 '자신'을 서서히 드러냈다.


  내가 일을 잘 못하니?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말을 하는 날은 그녀가 자신의 상사에게 심하게 깨지고 돌아왔다는 증거였다. 그날은 영화관에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그녀가 상사에게 겪었던 ‘갑질’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내가 그 폭탄을 감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녀와 내가 단 둘이 마주하는 그 ‘공간’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타인의 평판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 사람들과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녀는 착한 ‘관리자’ 여야 했다. 내게 있는 힘껏 화를 내다가도 그녀의 마무리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지만 자신이 참고 넘어주겠다는 대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녀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매표소에서 관객의 ‘갑질’이 끝났을 때처럼.

 


  휴학하는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다니기로 했던 나는 관객과 그녀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예정한 날짜보다 빠르게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두겠다는 말조차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는 몇 번이나 그녀의 부탁으로 발이 묶인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본 상태였다.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그녀는 그만두겠다는 나의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그녀의 미간은 활짝 펼쳐져 있었다.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감당한 업무가 두 사람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두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매니저는 두 사람뿐 아니라 오전에 새롭게 근무할 한 사람까지 총 세 사람에게 매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 사람인 나에게 무려 세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고 ‘명령’ 한 것이다.


  덕분에 세 사람을 가르치는 내내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났다. 몸은 하나인데 세 사람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돈이 맞지 않거나 컴플레인이 생겨나곤 했다. 세 사람에게 일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데. 불안해진 나는 밥시간을 줄여가며 더 많은 업무를 처리했다.


머릿속에는 빨리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
영화관에서 나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세 사람이 일에 적응하지 못하자 매니저는 조금씩 그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입에 달았다. 다른 두 사람은 서서히 일에 적응했지만 한 사람만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매표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금액’을 실수하는 일이 많았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매니저는 돈이 비어있는 것이 새로운 사람이 아닌 ‘내 탓’이라며 비어있는 금액을 내 돈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참고 참던 내 마음속 폭탄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내가 하지 않았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매니저의 미간은 어느 때보다 더 깊게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사무실에 있는 것을 살핀 그녀는 두고 보자며 자리를 피했다.


  매표 업무로 돌아온 나는 그녀가 떠나기 전 속삭였던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뿐 아니라 함께 일을 하던 바이저들이 나를 싫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과 밥을 먹고 교대할 때마다 돈이 맞는지 틀린 지 꼼꼼히 확인했던 행동이 마치 그들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반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니. 머릿속에서 ‘갑질’을 견뎠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쳤다.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교육한 지 이주 만에 나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매표 업무를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갖지 못했던 식사 시간을 참고 견디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나는 아직 근무를 하고 있었으니까.


  간신히 추스르고 자리로 돌아오려는데 하필 그날 엄마가 영화가 보고 싶다며 영화관으로 찾아온 것이다.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나’를 발견한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되물었다.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니 참았던 울음보가 다시 터져 나왔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참고 매표소로 돌아왔을 때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매니저가 서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차마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매니저가 머리끝까지 화가 솟아오른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내가 진짜 화내는 모습 보여줘?


  그녀의 손에는 종이컵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종이컵이 마치 ‘나’인 것처럼 구겼다가 펴며 폭언을 늘어놓았다. 후임들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그녀가 생각한 가장 큰 문제였다. 분노를 쏟아낸 그녀는 나에게 제안했다.


내일 당장 일을 그만둘 것인가.
자신이 출근하는 월요일에 ‘웃는 얼굴’로 만날 것인가.


  그녀는 내가 ‘출근’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예정보다 빨리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갑질은 살갗 아래 잠겨 있었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시한폭탄이 천천히 카운트를 줄여나갔다. 폭발할 대상을 찾았으므로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가능하면 최대한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도록 거칠고 단호하게. 그들의 마음속 손가락이 하나둘 잡혀가고 있었다.


  몇 번을 겪어도 그들의 마음속 폭탄이 하필 왜 내 앞에서 터져야만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폭탄이 굉음을 내며 잔해를 쏟아낼 때 나는 매표소 구석을 찾아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괜찮아. 결국 다 지나갈 거야.


  스물두 살의 내가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위로는 갑질을 일상으로 겪는 비뚤어진 어느 날을 견디게 만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편의점에서도 다음 직장인 영화관에서도 하루 일과처럼 누군가의 ‘갑질’을 견뎌야 했으니 말이다. 견디는 것으로는 기껏 해야 생채기가 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폭탄을 피해 몸을 한껏 웅크렸으니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었다. 매니저의 한마디도 갑질 관객의 한마디도 모두 기억 속에서 흩어져 버린 것 같았는데.

 

상처 속에 숨어 살갗 깊숙이 잠겨 있었다.


  왜 그들은 아르바이트생인 나의 앞에서 ‘갑질’을 해야만 했을까.

  매니저는 왜 자신이 ‘갑질’을 당한 분노를 타인에게 풀어야 했을까.


  물음이 이어질수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에게 갑질을 했던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갑질’을 당한 사람이라는 것. 감정을 참고 참아서 폭탄이 될 때까지 뭉쳐 있다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타인에게 터트린 것이다. 펑.


  사실 그들이 진정으로 터트리고 싶은 ‘또 다른 슈퍼갑’은 따로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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