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간과된 위험
인간의 기대수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OECD 평균 기대수명은 80.7세에 달하며 한국의 기대수명은 2017년 기준으로 82.7세다. 그중에서 여성의 기대 수명은 85.7세에 달한다 (OECD, 2019). 기대수명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개인위생상태가 개선됐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상승해 올 수 있었던 건 의학 기술의 발전이 한몫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사람들은 ‘백세시대’가 곧 도래할 거라며 기대하고 있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대수명의 증가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관찰되는 현상이고 거의 모든 계층에서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의학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 보장제도로 인해 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보장받은 효과다.
최근 들어 기대수명 연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나노 바이오 기술을 통한 나노 로봇으로 기존에 치료하지 못하던 질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유전자 기술로 본인의 유전자를 활용한 인공 장기를 만들어 노화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했던 ‘바이센테니얼맨(Bicentennial Man, 1999)’의 현실화가 멀지 않은 느낌이다. 이야기만 들으면 꿈같은 현실이 펼쳐질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 개발의 현실성과는 별개로 이 기술들이 상용화될 수 있는 시점에 지금의 의학기술들처럼 보편적으로 모든 대중에게 혜택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기술들을 보편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사회 보장제도의 확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뤄질지를 확언할 수 없다.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 혜택은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편이지만 건강과 관련된 영역은 개인의 역량에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을 위해 커버해야 할 범주는 너무 광범위해 식습관을 포함한 전반적인 개인의 삶 전부를 국가 제도가 도움을 줘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 그 정도의 복지를 '수용'할 여력은 없다. 아니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건강은 차별적이다. 건강한 삶은 계층으로 나뉘고 이런 현상은 역시나 거의 모든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경제력과 밀접하게 관련성을 갖는다.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영양제를 구입 및 섭취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에 다니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에 놓이는 것(보통 직업적 환경과 관련)은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 최근에 정기적으로 운동하지 않는 것이나 과체중 및 비만 등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여론이 득세하고 있으나 이는 계층과 인간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앞서 서술했지만 나노 바이오 기술과 유전자 기술들은 상용화되더라도 큰 비용이 드는 조치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기술들이 가져다 줄 모습은 건강의 영역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모습과 비슷할 수 있다. 즉 여력이 되는 누군가는 더욱 효율적으로 치료와 관리를 받아 건강하면서도 훨씬 늘어난 삶 속에서 본인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거나 유지해 나갈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계층의 누군가는 공통적으로 제공받는 혜택을 통해 비교적 충분한 생명 연장은 이루겠지만 그 연장된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결국은 계층 간의 격차 문제고 불평등의 문제다. 특히 노년층의 불평등은 젊은 시절의 불평등이 지속, 심화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문제다.
노년층의 경제상황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2018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43.4%)은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에 있다(OECD, 2019). 희한한 점은 한국의 노령층(65세 이상)의 취업률, 즉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2017년 기준 30.9%로(노인실태조사, 2018) 조사기간은 다르지만 독일의 경우(2019년 65세 이상 8%, Statisches Bundesamt 2021)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2017년 독일의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10.2%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빈곤하니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거기에 자식에게 과도한 투자를 하는 한국의 상황과 그런 투자는 보통 자기 자본이 아닌 대출을 끼는 게 일반적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도 빈곤한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게다가 고도 성장기에서 호황을 누리며 부를 축적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저성장과 급격한 고령사회를 떠받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 자식 세대들은 부모의 빈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노령층의 빈곤은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문제가 됐다.
게다가 이 문제는 또 다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노년층 인구의 급격한 증가세다. 여전히 많은 나라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다만 많은 선진국, 특히 유럽의 국가들은 출산율이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을 이미 맞이했거나 맞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를 겪고 있다. 때문에 이를 위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듯 급격히 줄어드는 출산율에도 많은 나라에서 인구가 아직까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수명 연장, 즉 노년층 인구의 증가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노령층 인구가 20%를 넘는 고령사회이고 한국은 이보다는 아직 낮은 2018년 기준 14.29%로 고령화 사회에 속해있다 (OECD, 2020). 이 추세가 지속되면 2025년에 한국도 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우리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특정 기술이 소개되면 그 기술로 파생될 이득, 그리고 그 기술의 수혜로 벌어질 낙관적 전망들만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우리의 머리를 점령한다. 이런 기술들로 인한 사회변화가 가지고 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여기에 관심이 없으니 대비가 이뤄질 리 없고, 관련한 논의는 이미 사달이 난 후에 불이 붙는다.
기존의 사회와 환경에서도 인간이 누리는 자원은 제약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 제약은 점점 강화될 것이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는 노동력을 상실해 가는 노년층이 절대적 다수 계층이 되어가는 현상과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평등 요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이 대립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날이 오면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평가를 할 것이다. 연장된 생명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이고 늘어난 삶을 영위하며 사회적 부가가치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연장된 삶을 간신히 연명해 가는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평가할 것이다. 이미 노년층에 대한 여러 지원에 대해 청년층의 그것과 비교하며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을 맞이하는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그 시점에서 정당성을 주장하겠지만 그것이 진짜 정당한지는 지금 이 시점부터 바라봐야 한다.
OECD (2019), “Life expectancy by sex and education level”, in Health at a Glance 2019: OECD Indicators, OECD Publishing, Paris.
OECD (2019), “Poverty”, in Society at a Glance 2019: OECD Social Indicators, OECD Publishing, Paris. DOI: https://doi.org/10.1787/8483c82f-en
보건복지부 (2018), “노인의 경제활동 실태”, 노인실태조사: https://kosis.kr/statisticsList/statisticsListIndex.do?menuId=M_01_01&vwcd=MT_ZTITLE&parmTabId=M_01_01&outLink=Y&parentId=G.1;G_9.2;#G_9.2
OECD (2020), OECD Labour Force Statistics 2020,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5842cc7f-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