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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05. 2021

리스본행 야간열차

오늘도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당신[내] 앞에 멈춰있다!

<나는 오늘도 리스본행 야간열차 앞에 서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감독:빌 어거스트/출연: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 휴스턴/개봉:2013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영화는 '운명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운명의 바뀜은 한번의 만남이면 된다. 문제는 그 '한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맞힌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운명은 소소한 시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 내 운명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지만 지금껏 그래 왔기에 당황할 필요도 없다.(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운명도 시나브로 흐르는 물방울만 한 시간들 속에서 만들어졌다.)


영화 속에는 두 개의 운명이 존재한다. 하나는 영화의 중심을 흐르는 거대하고 특별한 운명(1970년대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과 관련된 세 명의 남자와 그중 두 남자와 연인이 되는 한 명의 여인, 그리고 여인의 사랑이자 『언어의 연금술사』저자로 혁명의 중심에 있던 아마데우 프라두의 묘비명,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 등의 대사로 짐작할 수 있는 특별한 운명들)이요,


하나는 거대하고 특별한 운명을 바라보는 운명이라 할 수 없는 운명(고전문학 선생으로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가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한 권의 책, 그리고 그 속에 든 리스본행 열차 티켓 한 장으로 특별한 운명들을 만나러 간 특별할 것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거대한 운명보다 운명이라 할 수 없는 운명인 후자에 마음이 기운다. 동병상련이라 해도 도리가 없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는가.


영화의 마지막, 그저 그런 삶을 산, 초로의 고전문학 선생은 다시 한번 열차 앞에 선다. 그의 앞에는 여행 중 만난 한 여인이 서있다. 여인은 말한다.


"여기 머무르면 어떨까요?( Why don't you stay?)"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떠난 그였다. 이제 이 열차를 타면 떠났던 처음 그곳으로 돌아간다.  머무르든 떠나든 운명이 강하게 와닿는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는 그의 운명이 되기에. 과연 그는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늘도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당신[내] 앞에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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