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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책을 읽다 15화

『주역』을 읽다가

믿어도 되는 것은 안 믿고 믿어선 안 되는 것은 믿는다

by 휴헌 간호윤

『주역』〈문언전〉‘곤괘’를 해설하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남는 경사’ 즉 ‘여경(餘慶)’은 선한 일을 많이 행한 보답으로서 그의 자손들이 받는 경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積善)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정치인 아무개가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쓰고 나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고 보니 개명한 이 세상에도 저러한 이야기가 통하는 듯싶다. 그래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도 있다. (혹 저이가 선거에 떨어지면 저러한 '탓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사실 이러한 것은 영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그래 어느 조상이 저승에 가서까지 제 자손을 못되게 하겠는가. 다 덕을 쌓지 못한 제 탓이니, 말가리 없는 맹탕 헛소리일 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 이러한 구절이 보인다.


“믿어도 되는 것은 안 믿고, 믿어선 안 되는 것은 믿는, 이런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근심거리이다(可信而不信, 不可信而信, 此愚者之患也).”


믿어도 되는 ‘선(善)’은 안 믿고, 믿어선 안 되는 ‘미신(迷信)’을 믿으니 ‘어리석다’느니, ‘근심’이라느니 하는 내쳐야 될 말이 나오는 것이다.


생각난 김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한 자락만 더하자. 이 이야기는 명대(明代)의 소화 집(笑話集)인『종리호로(鐘離葫蘆)』<유언을 남기다(遺命)>에 보인다.


한 노인이 임종을 앞두고 유언을 하는 자리이다.

노인이 말했다.

“다른 말은 할 게 없다. 다만 관 옆에 구리로 만든 튼튼한 고리 네 개를 박아두도록 해라.”

유언치고는 사뭇 이상하여 자손들이 물었겠다.

그랬더니 노인이 가로되,

“아, 너희 놈들이 지관의 말을 듣고 내 관을 이리저리 옮겨 다닐 것 아니냐?”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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