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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Oct 28. 2019

계속해서 수영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아침에 눈뜰 때 더욱 강하게 나를 설득해야 한다.

왜 굳이 수영하러 차가운물에 들어가야하는지를 설득해서 스스로를 일으킨다.

봐봐, 분명 너 막상 가면 되게 좋아할거라니깐.

씻고 나오면서 나오길 잘했다 할걸? 내 왼팔을 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양치를 하고 수영복과 샴부를 주섬주섬 챙긴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길의 색이 바뀌었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계절이 바뀌는 일은 너무 신기해서 늘 처음 겪는 기분이다.



물에 처음 입수할 때에는 으으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정시까지 물속에 동그랗게 서서 얘기 나누고 쉬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들어가자마자 준비 운동시간까지 마구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입술이 파래지거나 몸이 떨리는걸 방지 할 수 있다.

마구 몸을 움직이며 일반풀을 두 세 바퀴 돌다보면 금방 내 몸이 수온에 맞춰진다.





요즘 접영이 너무 재미있다.

돌고래가 된 기분.

양팔 접영은 요령이 부족해서 숨이 빨리 차지만 한팔 접영은 그럭저럭 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접영을 시작할 땐 두 팔을 뻗어 귀에 붙이고 머리부터 시작해서 내 몸이 부드럽게 물 속으로 들어간다.

몸을 물고기처럼 웨이브하며 머리-가슴-허리-엉덩이-무릎-발까지 차례대로 물결을 탄다.

그럴 땐 얼마나 물이 부드러운지 갑자기 수영장물이 젤리처럼 느껴질 정도다.


처음엔 웨이브가 감이 안 와 거의 한달을 헤맸는데 이제는 작은 웨이브도 재미있어졌다.

작게 웨이브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등허리로 물이 찰랑 미끄러지는게 느껴진다.



물은 그대로 나를 반영한다.

여유로우면 여유롭게 나를 감싸고

조급해하면 조급하게 나를 감싼다.



양팔접영은 허리가 잘 세워지지 않아 수면에서 겨우 나올 정도다.

강사님 말로는 어깨와 전체적인 몸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한다.

계속 하다보면 다음달에 양팔접영 때는 좀 더 상체를 수면으로 나올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어릴 때 수영은 1도 못하면서도 여름에 물에서 노는걸 무척 좋아했었다.

여름이면 휴가철 인파를 견뎌가면서도 우리 가족은 물가로 놀러 갔다.

우리 남매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친구이자 친척인 두한오빠/정환이 형제와 같이.


그 여름엔 차가 너무 밀려 우리는 저녁때야 지리산에 도착했다.

텐트를 펴고 밥을 해먹고 들어가 쉬었는데 아이들은 밤인데도 물가로 들어갔다.

부모님이 보시면 위험하다고 혼날게 뻔해서, 조용히 넷이서 튜브를 타고 놀았다.

도넛 튜브 말고도 무슨 작은 매트리스같은 튜브가 있어서 나는 그 위에 누웠다.

내 몸은 작았고 매트리스는 수면에 고요히 잘 떠 있었다.


나는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자체가 평화로움이 된 것 같았다.


그때 정환이가 장난 치려고 매트리스를 뒤집었고 나는 그대로 깊은 물에 빠졌다.

한참을 허우적거려도 발이 닿지 않았고 계속 물을 먹었다.

그 짧은 찰나에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갔었다.


누나, 무슨 일이야! 내가 구해줄게 !!!

가해자인 정환이가 놀라서 가까이 달려왔고 날 건져 주었다.

물에서 나가자마자 등짝을 때려줘야지, 하고 본능적으로 몸에 힘을 빼며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잠든 사이에 나는 빠져 죽을 뻔 했었지만 정환이가 구해줬었다.(병주고 약주고)

그 정환이가 저번달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다리를 수술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목발 연습도 하고 이제 곧 재활치료도 시작한다고 한다.



내년 여름엔 정환이와 수영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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