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한지 꽉 채운 삼개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잘 했다고 나에게 컬러풀한 새 수영복을 선물했다.
잘 맞는듯 하고(좀 작나?) 마음에 쏙 들었다. 같이 주문한 하얀색 수영모자도 예뻤다.
그동안 입었던 검은 수영복과 검은 수영모자를 얼른 벗어버리고 싶다고 몇번이나 생각했었다.
초보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대부분 검고 심플한 수영복과 검은 수모를 쓴다.
검정은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나를 지켜주는 보호색이다.
4개월째에는 꼭 새 수영복을 입고 수영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엊그제 첫 날, 나는 늘 입던 검은 수영복을 입고 다녀왔다.
늘 검은 수영복만 입다보니 색깔있는 수영복을 입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사실을 알면서도.
게다가 한번 색깔 수영복을 입기 시작하면 다시는 검은 수영복과 수모를 손대지 않을 거라는걸 알았다.
아직 이렇게 튼튼한데. 내 가장 중요한 초보시절을 함께 해줬는데.
가만 보면 이럴 때 나는 꼭 우리 할머니같이 물건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색깔 수영복은 서랍속에 고이 접어두었다.
조금만 더 검은 수영복을 입다가 마음이 '이젠 정말 그만입고싶어' 할때 새 수영복을 입기로 했다.
어린아이처럼 가끔 새 수영복을 꺼내 만져보고 다시 접어 넣어둔다.
수영을 시작할때면 줄지어 차례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반에 유난히 발차기에 힘이 들어간 분이 계시다.
그 분이 출발할때면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닦아야 한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거의 물로 맞을 정도다.
그래서 그 분이 준비할때는 우리 모두 얼굴을 돌려 손으로 막는다.
여지없이 물이 튀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저 언니는 힘 하나는 세다니까!'
하고 웃어버리는 나이든 할머니 말을 듣고는 다같이 한번 더 웃는다.
이럴 때 불평하거나 불러세우지 않는 사람들의 성숙함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냥 두어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물이 튀면 얼굴은 닦으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