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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Dec 31. 2019

고마워 2019






아침에 올해 마지막일 수영을 하다가 사고를 쳤다.

사람이 많아 레인에 붙어서 평영을 하다가 옆레인 여사님_평소에 눈인사 드리던_허벅지를 힘껏 발로 찼다.

평영은 다리를 개구리처럼 모았다가 팡 차면서 앞으로 나가는 영법이라 발차기가 특히 세다.

저번달에 우리레인 다른분 발에 맞아 본 적이 있는데 멍이 들 정도로 아팠었다.



처음엔 누구를 걷어찬줄 모르고 놀라서 일어나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멀리서 여사님이 웃으셨다.

으아오어아아.. 당장 가서 제가 찼다고 말씀드리고 사과드렸다.

여사님은, 모른척 한거 아니니까 괜찮다며 멍들어도 낫겠지 뭐! 하신다.

이후엔 계속 수영하면서도 머릿속에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생각뿐이었다.






나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폐를 끼친 순간 내 잘못 이외에는 어떤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안한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 지금 많이 당황했구나. 미안하구나. 걱정되는구나. 불안하구나. 무섭구나.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집중하고, 끝나고 한번 더 죄송하다고 인사하러 가자.

이렇게 나를 도닥인다.




샤워장으로 가기전에 다가가서 손을 잡으며 죄송했다고 인사드리자 다시한번 호쾌히 웃으신다.

이걸로 됐으니 상황을 더 크게 만들지도 눈치보지도 말자.

새해에 뵙겠다고 꾸벅 인사하고 탈의실을 나왔다.














하루 남은 2019년에게 가장 감사한 일은 명상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고 그림일이 없어서 일년내내 애썼지만 고마운 일이 더 많은 해였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

꿈, 절망, 우울, 희망, 의욕, 매력, 열정때문에 가슴이 터질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작고 성실하고 꾸준한 변화를 믿는다.

일년이 아니라 십년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느리지만 꾸준히 나름대로 애를 써 왔는지.

못한걸 책망하고 싶지 않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똑바로 보고 조금씩 고쳐 나가면 된다.

문제는 그걸 고쳐나가고 싶은 의욕과 열정이다.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몸.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을 때 패닉에 빠지거나 술을 마시는 대신 명상을 했다.

안되면 낙서라도 했다.

그것도 안되면 영감을 일으키는 영상이라도 찾아서 봤다.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내 속의 어린아이를 찾으려고 자주 애썼다.

이것이 올해 가장 달라진 멋진 점이다.


또 영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수영도 시작했다.

전보다 훨씬 횟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발레도 한다.

우울할 때 춤추는 발레댄서들을 보면 여전히 기분이 좀 나아진다.

2시 전에는 자려고 노력했고 10시 전에는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전화 영상통화를 위해 오래된 휴대폰에서 새 아이폰으로 바꿨다.

이것 때문에 한달 동안 중고나라만 들락거렸었고,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좋아도 내 자신이 내키지 않는 모임은 더이상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일 풀링을 시작하면서 생리통이 한결 더 나아졌다.

모하 시리즈를 다 그리고 텀블벅 달력을 시도해봤다.

가을에 처음으로 홀로 행복한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사람들에게서 나쁜점/좋은점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눈을 뜨는 아침마다 오늘을 의식적으로 맑은 정신으로 보내야지 다짐했다.

2018년과는 완전히 다르게, 디지털 작업을 실컷 그려봤다.

마음이 맞는 작가님들이 계셨고.

엄마의 다친 갈비뼈도 많이 나았다.




알게 모르게 나를 키워준 2019년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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