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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Feb 25. 2020

그림을 그리는 사람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메세지와 메일로 오늘 미팅은 미뤄졌고, 수정사항이 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미팅이 미뤄진건 다행이지만 문제는 수정사항이었다.

수정사항이라기보다 내가 한 작업들을 새로 갈아엎는 수준이었다.

2주동안 새벽까지 작업한 19장의 펼침스케치들과 캐릭터들을 거의 모두 바꿔야 한다.



기운이 빠지는 몸을 일으켜 몇개의 메세지를 나누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이 작업을 하기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10퍼센트라도 알기나 할까?

내가 이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즐겁게 구도를 짜고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알까?

표출되어지지 못한 화가 우울이 되어 가슴속에 쌓였다.





언젠가부터 불평하거나 화를 누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데도 내 얼굴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투덜거리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내가 가장 버거워했던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된거지.



누가 봐주건 말건 신이나서 밤을새며 작업하던 나는 어디로 갔지.

아침에 끝난 내 그림들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행복해 혼자 1분간 막춤을 추던 나는 어디로 갔지.









얼마전 엄마와 싸울 때 엄마에게 최대한 내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엄마를 마주할때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지적한 엄마의 부정적인 말들과 행동을 과연 나는 안 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로 알게 모르게 엄마를 상처주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내가 결심한건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늘리자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를 정말 사랑할 수 있도록.


맡은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마무리짓고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

나무와 풀을 유심히 살피고 만지는 사람.

생각이 짧을지라도 이해하고 맞서보려고 애쓰는 사람.

과거를 과거로 두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사람.

팔과 다리, 근육, 내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사람.

입과 몸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는 사람.

화를 화로 똑같이 되받지 않는 사람.

벅찬 마음을 마음 깊이 간직하는 사람.

핑계대고 불평하는대신 조용히 인정하는 사람.

기회가 되는 모든걸 배우고 익히는 사람.

고통속에서도 그 경험으로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스스로의 밝은 면이다.

어두운 단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정말 심각한 면이 아니고서야 일부러 세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장점을 세며 잊어버리지 말자. 그건 절대 자만하는 일이 아니니까.

처음 내 그림을 완성했을때의 행복감을 잊어버리지 말자.


지금의 나를 이룬 말없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지 말자.

그리고 내일 다시 스케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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