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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Nov 20. 2021

도망쳐요, 그 상자에서.

손에 쥘 정도로 작은, 그다지 가치도 없어 보이는 돌멩이 하나를 내려놓지 못한다. 꽉 쥔 손을 풀어야 비로소 밀폐된 상자에서 손을 빼낼 수 있을진대, 손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마냥 소중하게 느껴진다. 돌멩이를 상자 속으로 던져버리고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살그머니 빼 내면 돌멩이와 상자에 얽매이지 않은 진짜 세계로의 길이 열리는데 그게 너무나도 어렵다. 죽기보다 힘들다.


저 돌이 처음부터 가치 있게 보인 건 아니다. 상자에 손을 넣고 조심스레 돌멩이를 만져봤을 때는 그냥 그랬다. 원래 내가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에 쥐고 있기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돌멩이가 참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왠지 이 돌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저 돌을 손에 쥐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 과정은 전부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순전한 우연의 산물로 얻은 돌멩이에 애착을 갖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도 한데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 손에 저 돌멩이가 쥐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저 돌멩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 돌멩이에 애정을 쏟았다. 혼자 소중하게 생각했다. 돌멩이가 손에 쥐어져 있는 한 상자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음에도 그랬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 봤지만 그 가능성에 대한 도전은 한 없이 귀찮고 멀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지금 쥔 돌멩이를 손에서 한 순간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돌멩이었지만,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잠시라도 주먹을 펴게 되어 돌멩이를 놓친다면 아주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서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양 몸이 어떤 고초를 당하고 정신력이 한없이 소모되더라도 꽉 쥔 주먹만은 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엔 돌멩이를 손에서 놓게 되었다. 결국 30년이 지나서야 돌멩이를 포기하게 되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다른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서 그랬다. 이제 다른 누군가가 저 돌을 쥐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쫓겨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다른 돌멩이를 찾아 나서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었다. 그렇게 돌멩이와 돌멩이가 담긴 상자 주변을 서성이며 평생을 보내버린 나는 비로소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는 돌멩이 따위가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보라색 보석과 빨간색 보석, 노란색 보석, 투명한 보석들이 가득했다. 내가 아는 세계는 갇힌 상자와 돌멩이. 그럼에도 끝끝내 내 것이 되어주지는 못했던 그 돌멩이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는 왜 이렇게 예쁜 돌들이 널려있는 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대체 왜? 


혼란이 잠시 찾아왔다. 나는 곧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으니 세상의 찬란함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아직 돌멩이를 쥐었던 감촉이 여전했다. 이걸로 만족했다. 어쨌든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행복해. 나는. 나는. 


작은 동물을 속이기 위한 조악한 덫과 같이 설계된 상자와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돌멩이에 영혼을 팔아버릴 만큼 어리석은 나 같은 멍청이들을 포획해서, 그들이 제공하는 인풋과 말도 안 되게 낮은 리턴의 차이만큼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짜 세상의 모습을 알려주지 않은 채, 세상이라는 곳의 냉혹함과 차가움만을 강조하며 두려움을 조금씩 심어주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니 사람들은 이 작은 돌멩이에 감사하게 되었다. 주거 이동의 자유도,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자유도 전부 빼앗긴 채로 돌멩이를 쥐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버렸다. 작은 돌멩이와 그 돌멩이를 둘러싼 상자. 그리고 거기 종속된 나. 이것이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그 세계는 진짜 세계에 비하면 한 없이 안타깝고, 안쓰럽기 그지없는 세계였다. 

나는 끝끝내 그 안타까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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