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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l 05. 2024

무더위를 나는 맛, 감자채전

7월 식탁

장마.

비가 무섭게 내리더니, 며칠 덥다가 도로 내린다.

쏟아지고 개는 일이 한동안 반복되겠지.


이렇게 축축한 날에는 상반된 욕구가 생긴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걸 마시고 싶으면서, 저 한편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떠오른다.  

그리하여 쫀득한 감자전.

살얼음 서리는 막걸리 함께.


미국에서 한 번은 오래됐고 유명하다는 스위스 마을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샌드위치, 가벼운 요리, 맥주 등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뢰스티(rösti)”를 주문했다.

투박한 호밀빵에 꼼꼼한 냄새가 진동하는 치즈를 두껍게 끼운 샌드위치 한 접시,

그리고 감자채를 기름에 얇게 부쳐 그 위에 그뤼에르 치즈를 풍성하게 뿌린 한 접시가 나왔다.

뢰스티를 한 점 떼어먹자마자 “이거 치즈 뿌린 감자전이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바로 내뱉었다.

간단히 요기나 때울 계획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당연히 맥주지.

곧 스위스 전통 방식으로 빚었다는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는 진하고 톡 쏘면서 풀과 꽃향이 풍부했고 신맛이 맴돌았다.  

목 넘기는 끝에는 살짝 꿀맛도 났다.

예상치 못한 근사한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주인장에게 일러줬다.

"한국에서도 뢰스티를 먹는다! 대신 치즈가 아니라 식초 넣은 간장과 먹어."

키가 큰, 중년에 막 들어선  여성은 엷은 노란색의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크게 하나로 묶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내 말에 가만히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감자와 기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군."


또 한 번은 스코틀랜드 가는 길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머물렀다.

그때는 베드 앤 브랙퍼스트에 묵었다.

아침 식사로 나온 소박한 접시에는 시금치 소테 한 줌, 선지가 가득 들어간 검은 소시지 두 개, 그리고 기름에 바싹 구운 팬케이크가 있었다.

팬케이크 위에는 신기하게도 사워크림과 쪽파가 얹어져 나왔다.

박스티(boxty)라고 했다.

한쪽을 포크로 크게 잘라 입에 넣자마자 말했다.

“감자전을 사워크림에 찍어 먹는 거네!”


여름 동안 민스크에서 연구원이 왔다.

한 날은 몇몇 모여 팟럭 파티를 했다.

민스크에서 온 연구원이 들고 온 컨테이너에는 얼핏 보면 호떡같이 생긴 동그란 부침이 켜켜이 있었다.

드라니끼라고 했고, 사워크림을 얹어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맛보기 전에 이미 알았다.

“이것은 감자전!”


더 있다.

일본에서 먹어본 이모모찌는 도톰하게 만든 감자전과 호떡 중간 무언가였다.

안에 찹쌀가루를 넣었는지 쭈욱 늘어나는 재미있는 식감이었다.

간장에 바짝 끓인 듯 깊고 짭조름한 풍미와 함께, 오니기리처럼 김이 붙어있는 것도 색달랐다.


독일은 또 어떤가.

뮌헨 현지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가을 중엽에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나는 소시지나 아이스바인 못지않게 카토펠푸퍼(kartoffelpuffer)를 좋아한다.

감자로 만든 팬케이크로, 라이벤쿠헨(reibekuchen)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애플 처트니처럼 상큼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부드러우면서 녹진하고 도수 높은 밀맥주에 곁들이면 최고 궁합.


남아메리카나 중국 역시 감자를 갈아 이런저런 채소와 고기를 섞어 돼지기름에 부쳐 먹고, 머리가 띵할 만큼 강한 향신료나 매운 소스를 곁들인다.

맥도널드에는 해쉬브라운이 있다.  

프랑스는 감자를 채치거나 얇게 벗겨내어 층층이 쌓아서 버터에 부쳐 먹는데, 딱 감자채전이다.

폼 다팡(pommes darphin)이라고 부른다.


이쯤 되면, 동서고금 막론하고 감자를 향한 상상과 맛깔나게 먹겠다는 욕구가 한 곳에서 수렴한다는 게 신기하다.

꼭 새콤하거나 상큼한 소스, 향채를 곁들이는 것 역시 흥미롭다.  


당시 민스크에서 온 연구원과 몇몇이 제법 친해졌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고, 다음 해인지 미국에 또 와서 여럿이 어울려 다녔다.

그리고 내가 귀국한 후 민스크 사람은 시간을 내어 서울에 놀러 왔다.

뭔가 맛있고 독특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한국 전통주만 판매하는 식당을 한 블로그에서 발견해 방문했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술이 있었고, 개중에는 나도 처음 보는 독특하고 뛰어난 것들이 많았다.

지리산 아래, 경상남도 함양에서 정성스레 빚었다는, 이름도 예쁜 "꽂잠"이라는 막걸리를 시켰다.

마침 메뉴에 감자전과 육전도 있어 주문했다.

향기로운 술이 먼저, 이어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운 감자전이 아주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감자전 위에는 보슬보슬한 치즈 가루가 눈 쌓인 것 같이 가득 덮여 있었고, 안에는 양파가 살캉하게 씹혔다.

같이 나온 고추장아찌는 고소한 맛을 배가 시켰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기름에 지져낸 것을 "전"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줬다.

더불어 전 요리는 반드시 새콤달콤한 전통주, 특히 막걸리와 마셔야 제 맛이라는 귀한 정보도 전해줬다.

눈을 반짝이던 민스크 사람은 입맛을 다시면서 젓가락을 한 짝씩 양손에 쥐고 전을 크게 찢은 후 둘둘 말아 입에 넣고는, 몇 번 우물거리다 바로 말했다.

"아니 이거 드라니끼잖아!

감자와 기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군."


아 먹을 줄 아는 사람들.

별 것 없는 수수하고 간소한 맛에 우정을 나누고 깔깔댈 줄 아는 사람들.


무덥고 꿉꿉해서 쉽게 지치는 장마는 바로 그 맛에 의존해 나는 거다.


감자채전

감자 원하는 만큼(큰 감자 한 개=두툼한 감자전 한 장)

소금, 오일

치즈, 버터 등 취향껏



감자를 채친다.

채칼 없으므로, 감자칼로 챱챱챱. 이어서 감자칼로 얇게 벗겨낸(?) 감자를 가늘게 썰면 된다.

채친 감자에 소금 약간 뿌린 후 뒤적뒤적해서 간을 본다. 원하는 대로 간 맞추고 15분 이상 그대로 둔다.

감자가 갈변되면서 전분물이 자박자박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여기에 오일을 한 숟가락 섞는다. 겉바속초 팁 1.


감자떡 같은 쫀득한 식감을 원하면 전분 한 숟가락을 더하고, 바삭한 감자채전을 원하면 전분물을 버린 후 전분을 더한다.

팬을 중 약불에서 충분히 달군 후 감자채를 두툼하게 올린다.

감자채 위에 전분물을 골고루 뿌린다.

뒤집개로 살살 눌러가면서 익힌다.

가장자리가 노릇하게 익어갈 때쯤 전 위로 물을 쪼르륵 뿌려서 속까지 물이 스미도록 한다. 겉바속초 팁 2.

물이 다 사라지면 서너 번 번 반복. 감자가 촉촉하게 익는다.

감자채가 흩어지거나 삐죽 나오면 모양을 잡아준다. 타지 않게 여러 번 뒤집으면서 굽는다. 불은 계속해서 중 약불.

모양도 잡히고 다 익었으면 오일 반 숟가락을 팬 바닥에 뿌린다.

불은 강불로 올리고 겉면을 바삭하게 익힌다. 겉바속초 팁 3.

쫀득 바삭 감자채전 완성. 식었을 때 먹으면 훨씬 쫀득.

요건 동그랗고 크게 부친 감자채전.

이 위에 치즈나 버터 한 조각 올려 먹으면 또 색다른 맛.

케첩 찍어 먹으니 딱 해쉬브라운.

또는 스리랏차나 디종 머스터드 곁들여 맥주와 먹으면 더위 순삭이다.


감자 하나로 이런 맛이 나온다니! 먹을 수 밖에.


#장마 #감자전 #겉바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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