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식탁
“애호박 별명이 뭔지 알아?”
“...”
“채소계의 비트코인!”
계절별 가격 차이가 심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내 기억에도 겨울에는 한 개에 3,000원 남짓 가격표를 봤는데, 요즘은 내 팔뚝보다 두껍고 풋내날 만큼 싱싱한 애호박을 두 개 1,000원에 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름에 특히 맛있는 애호박을 냉장고에 쟁여두고 온갖 요리를 다 해 먹는다.
흔히 먹는 방식은 물론, 출출하면 하나 슥슥 씻어 둥글고 얇게 자른 다음 전자레인지에 살캉하게 익혀서 간식으로 먹는다.
빵 구울 때도 애호박을 채쳐서 한가득, 쥬끼니 브레드나 바나나 브레드, 당근 케이크 비슷하게.
먹는 이야기를 주로 쓰다 보니, 부지런하게 하루 세끼 잘 챙겨 먹는 미식가, 또 대식가 같지만, 사실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다.
점심때도 혼자 있으면ᅠ 역시 과일이나 빵 한 조각 정도 간단히 먹는다.
그것도 두어 시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보통ᅠ 그 시간까지 별로 입맛이 없다.
대신 출출해지는 저녁에 잘 차려 먹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오전 ᅠ식욕을 부추기는 메뉴가 있으니, 바로 “주말 브런치”.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내리다가 따뜻하고 퐁신퐁신한 브런치가 먹고 싶어졌다.
냉장고 속에 뭐가 있나 떠올려보니 애호박과 달걀이 생각났다.
그래서 꺼내 호다닥 썰고 섞어 애호박 프리타타를 구웠다.
마침 딱 한 모금 남은 아몬드브리즈도 우유 대신 넣어봤다.
덕분에 굽는 내내 달콤한 향까지 더해져 별것 없는 식탁 위가 금세 브런치 카페로 바뀌었다.
그다음 토요일 아침.
역시 점심 가까운 시간, 커피를 내리는 중에 친구가 왔다.
“아점”을 만들어 먹자는 말에 냉장고를 열었다.
또 애호박과 달걀.
찬장에 딱 한 줌 남은 소면을 꺼내 잔치국수를 끓였다.
친구와 마주 않아 먹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지난주에도 똑같이 애호박과 달걀만 있었거든.
브런치가 생각나서 뭘 먹을까 하다가 애호박 프리타타를 구웠어.
오믈렛 같은 거 말이야.
그런데 오늘은 아점 먹자는 말에 너무 자연스럽게 잔치국수가 떠올랐어.
재밌어서.
재료가 같잖아.”
브런치라고 부르냐 아점이냐고 부르냐에 따라 나오는 음식이 다르다.
브런치와 아점은 같은 개념인데.
브런치를 먹으러 주말에 종종 들르는 곳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예술의전당 안 모차르트 502 카페.
여기서는 가지 카포나타를 먹는다.
다른 한 곳은 가장 좋아하는 브런치 카페로, 압구정 부베트.
일단 봄, 여름에는 미모사, 가을과 겨울에는 카푸치노를 마신다.
이어 철에 맞춰 과일을 곁들인 와플이나 프렌치토스트.
그리고 함께 간 이에 따라 메뉴를 추가한다.
두 곳 모두 저녁에 식사할 수 있고, 저녁 메뉴도 따로 있다.
하지만 브런치 메뉴가 충실해서 열한 시쯤 가는 걸 더 좋아한다.
미국에 살 때 단골이었던 팬케이크 가게는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주말 아침 아홉 시 반쯤 가면, 20-30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를 잡은 후, 팬케이크나 더치베이비, 그리고 시즌 과일을 무한리필 커피와 먹곤 했다.
한편 자주 가는 설렁탕집도 새벽 여섯 시부터 장사를 한다.
설렁탕, 도가니탕이 주메뉴이다.
흠... 이곳에서 오전에 먹는 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꼬릿한 향의 진한 고기국물은 아점인가, 브런치인가.
아, 그냥 아침 식사인가.
쓸데없는 긴 생각 참 덧없다.
브런치면 어떻고, 아점이면 어떤가.
또 붙일 이름 없으면 어떤가.
아침부터 입맛을 부추기는 촉촉하고 따뜻한 무엇.
바지런하게 움직인 이가 내놓는 푸짐한 접시, 가득한 뚝배기.
맛있으면 그만이지.
애호박 프리타타, 1-2인분
애호박(혹은 주끼니) 한 개
올리브 서너 알
달걀 두 개
우유(혹은 아몬드 브리즈) 50ml
버터 두 숟가락
소금, 후추
단단한 치즈(페코리노 로마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그라나 파다노 등)
애호박은 길고 얇게 자른다.
소금 한 꼬집과 후추로 밑간 한다.
블랙 올리브가 있으면 구멍 뚫린 동그란 단면이 보이게끔 얇게 자른다.
팬을 달궈 버터 한 숟가락 녹이고, 불을 끈다.
버터가 녹은 팬 위에 올리브를 듬성듬성 배열한다
올리브 위에 애호박을 차곡차곡 올린다.
중 약불에 익힌다.
가장 위에 있는 애호박 표면에 물기가 배어 나올 때까지 굽는다.
버터 한 숟가락을 컵에 담아 녹이고, 거기에 달걀 두 개와 우유 50ml를 넣고 고루 섞는다.
녹인 버터가 뜨거울 때 달걀과 우유를 넣으면 몽글몽글해질 수 있으므로, 녹인 버터를 한 김 식히고(1-2분) 섞는다.
여기에 치즈를 갈아서 한 숟가락 정도 넣는다. 없으면 소금 한 꼬집.
살캉해진 애호박 위에 달걀물을 붓는다.
그대로 익히다가 달걀 익는 냄새가 올라오고 달걀 윗면도 익기 시작하면 불을 끈다.
팬을 뒤집고, 그 상태로 역시 한 김 식힌다. 그래야 프리타타가 조금 단단하게 굳는다.
양면팬이 아닌 경우, 조금 더 익힌다. 윗면이 다 익으면 팬 위에 접시를 대고 뒤집에 담는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향긋한 애호박 프리타타 완성.
호다닥 차린 브런치.
빵은 집 앞 베이커리에서. 밀가루, 설탕, 버터를 프랑스에서 가져와 주인장이 직접 만든단다. 층층 있는 레이어와 물씬 풍기는 버터향이 찐 크루아상.
주말 아침에 느긋하게 즐기는 노긋한 브런치, 애호박 프리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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