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식탁
집에 작은 텃밭을 가꾼 지 벌써 수년째다.
정원 한쪽, 장독대 있던 곳을 깨끗이 치운 후 그 위에 밭을 일구었다.
구정 지날 때쯤 초봄 맞으면서 씨앗을 싹 틔워 모종을 키우고, 여름 들어서기 전 모종을 텃밭으로 옮겨 심는다.
상추, 깻잎, 열무, 부추 등 푸성귀.
가지, 고추, 오이, 토마토.
가끔 꽃도 심고.
이렇게 여름 한 철 신나게 뽑아 먹다가 계절이 바뀌면 배추를 심는다.
가을에 잘 자라면 12월에 거둔다.
어느 해인가는 제법 여러 포기 나와서 수확한 배추로 김장을 했다.
겨울 푹 쉰 땅을 봄 동안 잘 마련해 두면, 여름 텃밭 농사는 어리숙한 도시 농부에게도 수월한 편이다.
물론 까탈스러운 식물도 있지만, 흔히 보는 채소들은 번거롭지 않게 키울 수 있다.
여름은 햇빛이 좋으니 간간이 부는 바람에 기대, 물만 적당히 주면 된다.
여름 채소는 보통 5월 말부터 줄기차게 자라고, 곧 열매를 내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뿌듯하다.
며칠에 한 두 개씩 따먹는데, 요리할 필요도 없이 날 것 그대로 먹는다.
순한 잎채소들도 따서 그대로 꼭꼭 씹어 먹으면 시원하고 고소하다.
아직 심하게 덥지도 않고 잎도 여리여리한 데다가 꽃도 여기저기 봉긋봉긋 올라오는 덕에 보이는 그대로를 감상하기도 좋다.
제법 괜찮은 장면이 연출된다.
푸른빛이 넘실대는 한 자리는 길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곤 한다.
어디서 왔는지, 하얀 나비, 노란 나비도 주변을 줄지어 날아다닌다.
간혹 서너 살 아이와 산책 나왔다가 텃밭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젊은 엄마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열매가 마구 맺힌다.
분명 어제 물 줄 때만 해도 꽃잎이 막 떨어진 것 같았는데, 금세 작은 무언가 달려있는 걸 발견한다.
한 두 주 사이, 사람이 하나하나 거둬 먹는 속도로는 나무나 덩굴이 가지에 열매 맺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6월 중순이 넘어갈 무렵, 이건 가벼운 텃밭이 아니라 농사라는 걸 깨닫는다.
열심히 거둬 내가 아는 모든 요리를 해 먹는다.
가지만 해도, 가지찜, 가지무침, 가지볶음, 가지냉채.
파스타나 피자에도 넣어 먹는다.
커리나 수프에도 넣는다.
오븐에 구워 스프레드를 만든 다음 빵과 크래커를 찍어 먹는다.
가지를 튀겨 이런저런 소스에 버무려 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면, 이제 말린다.
뜨거운 여름 볕에 말리고,
오븐에 말리고,
건조기에 말린다.
그래도 감당이 안 되면, 사람 만나러 나갈 때마다 한 꾸러미씩 들고나간다.
만나는 날에 따라 누구는 오이를, 누구는 고추와 가지를, 또 누구는 토마토와 깍지콩을 얻는다.
어느 날에는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가지 스프레드를.
또 다른 날에는 고추장아찌와 오이피클을.
나눠 가진 날 밤, 지인들 소셜미디어에서 꾸러미를 귀한 선물로 설명해 준 글귀와 예쁜 사진을 보는 재미는 그 덤이다.
생명력 넘치는 여름 채소 덕에 넉넉하게 베푸는 사람이 되는 걸 한참 누릴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꽃 떨어진 자리에 더 이상 열매가 달리지 않거나 맺힌 열매가 크지 않는다.
그러면 시원 섭섭한 마음으로 텃밭을 싹 뒤엎는다.
여름 내내 어딘가 숨어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이 이때 마지막으로 나온다.
빛과 바람을, 땅속 진기를 몸에 모아 농축하고 있던 것들.
그래서 굵직하고 길고 단단하다.
그쯤은 보통 추석이 가까워 올 때이다.
마지막으로 거둔 채소들은 추석 전날 보자기에 싸서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시라는 짧은 메모와 함께 대문 앞에 놔둔다.
그렇게 추선 전날 내놓으면, 연휴 끝날 때쯤 음료수나 한과 등이 또 다른 보자기에 싸여서 대문 앞에 놓여있다.
위 크기와 소화 능력은 기껏해야 한 끼에 가지 하나 먹을 깜냥이이지만, 굳이 텃밭을 가꾸는 이유이다.
누군가와 나눌 것도 없고 할 용기도 없는 나는 생명력 넘치는 여름 채소 덕에 쉽게 해 본다.
어쩌면 내가 여름 채소를 키운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일 수 있다.
서로 맺은 관계 안에서, 여름의 힘에 기대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시도해 보는 것일 테다.
탕수가지, 2인분
가지 두 개
소금, 후추, 전분 두 숟가락
전분 두 숟가락, 계란 한 개, 물 100ml
마늘 서너 알, 생강(마늘 크기만큼), 대파 흰 부분만 한대
당근 작은 것 한 개, 브로콜리 반송이, 청양고추 한 개
케첩 두 숟가락, 고추장과 꿀(올리고당), 식초 각 한 숟가락, 굴소스 반숟가락, 물 200ml
전분물(전분 한 숟가락, 물 두 숟가락)
가지를 어슷하게 2cm 두께로 잘라서 위생팩에 담고, 소금과 후추 한 꼬집씩 뿌려서 밑간 한다.
위생팩을 아무려 착착 흔든다.
한 10분 정도 두면 가지가 촉촉해진다.
거기에 전분 두 숟가락 넣고 다시 착착 흔든다.
튀김 반죽을 만든다.
역시 전분 두 숟가락, 계란 한 개, 물 100ml 섞어 묽은 반죽을 만든다.
전분이 덧입혀진 가지들을 반죽에 넣고 뒤적여 준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가지를 전 부치듯 부친다.
3-4분 후 하나씩 뒤집어 주고, 곳곳에 반죽물을 조금씩 뿌려준다.
반죽물까지 다 익으면 불을 끈다.
한 김 식힌다.
식히는 동안 한 서너 개 집어먹었다. 가지전으로 먹어도 맛있다.
반죽물을 한 번 더 입히고, 다시 바삭하게 부쳐준다.
마늘을 편으로 썰고, 생강은 다지고, 대파는 길게 썰어 팬에 넣고, 약간의 기름을 두른 후 향이 올라올 때까지 볶는다.
당근과 브로콜리, 청양고추 등 채소를 넣고 볶는다.
브로콜리는 끓는 물에 미리 데쳤다.
케첩 두 숟가락, 고추장과 꿀(올리고당), 식초 각각 한 숟가락, 굴소스 반숟가락, 물 200ml을 먼저 섞어서 맛을 보고, 간과 달기를 소금과 설탕 등으로 맞춘다.
채소를 볶던 팬에 소스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가지를 넣고 뒤적이다가 소스가 졸아들면 전분물(전분가루 한 숟가락, 물 두 숟가락) 넣고 불을 끈다.
남은 열기에 소스를 졸인다. 금세 걸쭉해진다.
탕수가지 완성.
가지 자체가 말 그대로 겉바속촉.
씹자마자 새어 나오는 가지즙과 달콤 새콤 소스가 진짜 최고다.
당근과 브로콜리도 단맛이 한층 올라와서 맛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가지와 대비되게 씹는 맛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재료, 가지!
#가지 #가지전 #탕수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