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 Jun 20. 2024

여름의 감각, 오이소박이

6월 식탁

한식 중에서 계절감을 가장 섬세하게 느낄 만한 음식은 김치가 아닐까.


이를테면 겨울에는 무조건 아름드리 속 꽉 찬 배추로 담근 김장 김치와 시원한 동치미로 속을 채워야 한다.

볕이 살살 포근해질 무렵에는 꽃처럼 활짝 벌어진 봄동이나 얼갈이로 쓱쓱 버무린, 샐러드 같은 겉절이에서 생기를 얻는다.

돌나물이나 취나물, 참나물로 만든 물김치도 입맛을 상큼하게 돋운다.


여름에는 차게 식힌 물에 밥을 말아, 역시 찬기 가득 머금은 여름 채소로 만든 김치를 얹어 더위를 난다.

그러다 무가 맛있어지기 시작하면 당연히 깍두기, 총각무 김치.

달근한 무는 씹는 맛도 으뜸이다.

중간중간,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의 삭은 배춧잎 떼어내서 물에 살살 행군 후 들기름에 무쳐 먹거나 굵은 멸치 몇 마리 넣고 바글바글 조려 먹으면, 그것 또한 별미.


벌써 목 뒤가 끈적일 만큼 덥다.

폭염주의 알람도 온다.

그렇다면 바로 오이소박이.


나는 오이소박이를 먹을 때, 오이의 아삭한 식감과 특유의 싱그러운 향내 못지않게, 같이 버무려진 속을 두툼하게 집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부추 더미가 정말 맛있다.

오이김치라고 부르지 않고 오이'소박이'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오이에 '소'를 촘촘히 '박'아 넣기 때문이겠지.


2년 전쯤, 동네에 채소 가게가 생겼다.

문구점, 휴대폰 가게, 기능성 신발점, 마카롱 베이커리가 순서대로 들어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더니, 그 자리에 청년 몇이 들어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감자, 양파, 마늘 따위를 무더기로 가져와 싼 가격에 팔길래 이 역시 금세 없어지거나, 다음 가게 들어오기 전 잠깐 머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싼 가격과 채소의 신선한 상태 때문인지 곧 동네에 입소문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자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파는 품목도 금세 다양해졌다.

어느 날은 강한 향이 풍기는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새송이 버섯, 팽이버섯을 바구니당 천 원에 팔았다.

또 어느 날은 달콤한 참외와 수박, 복숭아가 인도에까지 진열되었다.

태양 빛 그대로 품은 토마토, 고추, 잎채소들이 종류별로 나와 있더니, 추석이 가까워오자 알록달록한 사과와 물이 꽉 찬 배가 보였고, 간혹 망고, 바나나, 고수, 아보카도가 등장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꽝꽝 얼은 동태나 코다리가 묶음으로 있거나 샛노란 귤이 볼풀장같이 펼쳐지기도 했다.   


전에는 뭐가 먹고 싶으면 가장 먼저 마트에 들렀다.

플라스틱 상자와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된 과일과 채소를 사는 게 간편하고 좋았다.

간혹 온라인으로 냉동된 과일을 사서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랜 기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으로 쌓여있는 더미에서 소쿠리에 하나씩 골라 넣어 계산하는 게 익숙하다.

근처 오갈 때는 괜히 기웃거리기도 한다.

싼 값에 질 좋은 과일과 채소를 살 수 있는 것 못지않게, 뭐가 제철을 맞았나 확인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할머니들이 장바구니 용도의 카트 하나씩 세워두고, 고심해서 감자를 한 알 한 알 고르는 모습도 인상 깊다.


어머니, 아버지, 이모, 넉살 좋게 부를 줄 아는 청과 가게 사장들의 땀이 짙어졌다.

가게 안팎에서 나는 신선한 흙냄새 끝에 여름 땀냄새가 활력 있게 배어있다.

커다란 선풍기가 쉴 새 없이 소리 내며 후덥지근한 바람을 내몰아낸다.

여름의 감각.

그 안에서 집어오는 오이와 알배추의 연둣빛이 주는 청량한 틈.


오이소박이


오이 다섯 개

당근 작은 것 하나, 양파 작은 것 하나, 부추 한 줌(100원짜리 동전 정도)

굵은소금


고춧가루 여섯 숟가락

멸치액젓 세 숟가락, 새우젓 한 숟가락

매실청 한 숟가락

사과 한쪽

마늘 대여섯 알, 생강(마늘 크기만큼)



동네에 청과 가게에서 오이 여섯 개 2,000원에 샀다.

하나는 금세 씻어서 바로 먹어 버림.


오이는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씻으면서 표면의 가시를 제거한다. 이렇게 하면 쓴 맛도 사라진다고 한다.

오이를 삼등분하고, 각각 세로로 자른다.

보통 오이소박이용 오이 손질은 끝부분 1cm 정도 남겨두고 십자로 자르는 게 정석이지만, 편히 먹기 위해 다 길게 잘랐다.

알배추도 세 포기에 2,000원.

알배추 겉절이도 담그는 만용을 부려봄.

소금물 끓이기.

물 1,000ml에 소금 다섯 숟가락을 넣고 끓인다.


오이를 소금물에 살짝 절인 후 오이소박이를 담가야 오래 두고 먹어도 물이 안 생긴단다.

팔팔 끓는 소금물이 준비되면 손질해 놓은 오이에 그대로 붓는다.

오이를 소금물에 담근 채로 정도 둔다.


그릇이 너무 작아서 물이 넘치기 직전.

오이를 절이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고춧가루, 멸치 액젓, 새우젓, 매실청을 섞고, 사과, 마늘, 생강도 곱게 다져서 넣는다.

간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으로 맞춘다.

고춧가루가 액젓에 불도록 잠시 둔다.

당근, 양파, 부추 등 김칫소로 쓸 채소를 채 썬다.

채 썬 채소와 양념장을 섞는다.

40분이 지났으면, 오이를 소금물에서 건진다.

체에 밭쳐서 물기를 뺀다.

생각보다 짜지 않고, 아삭아삭하다!

오이에 김칫소를 넣고 버무린다.

한 번에 버무릴 만한 큰 볼이 없어서, 가장 큰 냄비 동원.

완성된 오이소박이.

요리는 장비발이라더니.

하는 김에 알배추 겉절이도 담갔다.

양념을 똑같이 만들어서 알배추 두 포기를 버무렸다.

절일 필요 없어서 금세 만들었다.

역시 큰 냄비에서.


잘 버무렸으면 김치 용기에 담아 냉장보관 한다. 몇 시간만 지나도 오이나 알배추에 양념이 베어 들어서 막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어진다!

아삭아삭하니 정말 맛있다.

샐러드 같다.

다음번에는 소금물 농도를 더 짙게 해도 될 것 같다.

여름에 안 먹으면 섭섭한 여름 김치, 오이소박이.


#오이 #오이소박이 #김치

이전 02화 충만한 이름, 닭 한 마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