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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n 26. 2024

가뿐, 피넛버터 메밀국수

6월 식탁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처음 본 것은 학기 시작 전 8월, 학과가 주최한 환영 행사에서였다.

자기소개를 해야 했는데, 그해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나와 그 친구 둘이었다.

하지만 세부 전공이 달라 같은 해, 같은 학과에 입학했음에도 수업이나 학술 행사에서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복도에서 보면 눈인사 정도를 나누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첫해를 여기저기 치이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다음 해 여름 방학을 맞았다.

하필이면 내 전공과 관련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학회의 논문 마감일이 여름 중이어서 꼼짝없이 학교에 붙어있었다.

교수나 랩 사람들은 한국에 다녀오라 했지만, 부담이 커서 그냥 미국에 머물렀다.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오고,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국립공원에 캠핑을 다녀온 것으로 첫해 여름을 대신했다.


내가 살았던 지역은 한국 못지않게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었다.

여름은 특히 뜨겁고 건조했다.

햇빛이 닿기만 해도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이 타버리는 것 같았다.

한 날은 학교까지 오는 길이 너무 더웠던 탓에 랩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로비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헤이”


그때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돌아보니 일본에서 온 그 친구였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서로 교수는 누구인지, 랩이 어디인지 이야기했던 것 같다.

몇 마디의 말이 더 오갔고, 그 친구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부탁이 있다고 했다.

좋다고 했다.

아이폰을 꺼내 음악 앱을 하나 열고 슥슥 넘기더니, 노래 한 곡을 들려줬다.

한국인 여성 가수의 노래였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활동한 전설급 가수였다.

나는 그때 그 가수의 노래를 처음 제대로 들었다.

정말 훌륭했다.

상냥하고 보드랍게 시작했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듯 나오는 목소리가 온몸에 스며든 열기를 한 방에 날려주는 듯했다.


친구의 부탁은, 자기가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가사가 궁금하니 영어로 옮겨달라는 거였다.

알겠다고 하고 그날 밤 집에서 노래를 여러 차례 들으며 가사를 옮겼다.

좋은 시처럼 참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가사를 영어로 다 옮기자마자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고맙다면서 일요일에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학교 근처 호숫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요일 저녁 가까운 시간, 호숫가 나무 그늘에 앉아 기다렸다.

친구가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곧 나타났다.

음식을 직접 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 그늘에 자리를 폈다.

해가 들지 않아 시원했다.

주변은 파랗고 푸르러 기분이 상쾌했다.

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산책 나온 사람들, 물가에 삼삼오오 앉아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내는 쾌활한 소음에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친구가 꺼낸 도시락에는 땅콩버터에 비빈 메밀국수, 치라시초밥이 있었다.

나는 둘 다 처음 먹어봤다.

어쩜 그렇게 상큼하고 가볍고 시원하면서 속은 든든해질 수 있는지.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친구는 그날 밤에 레시피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줬다.


이후 우리는 종종 만났다.

덕분에 그 뜨거운 여름도, 집에 못 간 서러움과 논문의 중압감도 유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덥다.

아직 6월인데 너무 덥다.

몇 주 전만 해도 아침, 저녁은 견딜만했는데, 이제 아침 밝아오면 금세 뜨거워진다.


이런 날은 고소한 땅콩버터와 채소를 듬뿍 넣고 비빈 메밀국수에 얼음 몇 조각 올려서 먹어야 한다.

배경 음악으로는 국어와 영어 둘 다로 가사를 알고 있는, 그때 그 노래.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피넛버터 메밀국수, 2인분

쯔유(또는 국시장국) 세 숟가락과 물 두어 숟가락

쯔유 없다면... 대신 참치액 두 숟가락, 양조간장 한 숟가락, 레몬즙과 꿀(올리고당) 각각 두 숟가락, 통무 2cm 두께

마요네즈 세 숟가락

땅콩버터 한두 숟가락

들기름


메밀면 200-250g

오이와 피망 반 개씩, 양배추 두어잎, 쑥갓이나 깻잎

삶은 달걀


쯔유도 국시장국도 없어서 간이 제조.

참치액 두 숟가락, 양조간장 한 숟가락, 레몬즙과 꿀(올리고당) 두 숟가락씩 섞은 다음 무를 갈아 넣는다.

싱거우면 간장이나 소금으로 하는 게 좋다. 참치액을 더 넣으면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텁텁해진다.

마요네즈 세 숟가락과 땅콩버터 두 숟가락도 넣는다.

땅콩 100%, 첨가물 없는 땅콩버터를 사용했다. 하지만 가염, 가당된 땅콩퍼터를 넣어도 괜찮다. 아몬드나 캐슈처럼 다른 종류의 넛버터도 좋다.

견과류가 싫다면 참깨나 들깨를 넉넉히 갈아 넣어도 맛있다.

메밀면을 삶는다.


마트에서 메밀 100% 면을 구매해 봤다. 생면이 냉동상태로, 1인분씩 포장되어 있다. 건면보다 비싸지만 메밀향도 제법 나고 식감도 좋다.

삶아진 메밀면은 찬물에 헹구고, 채소는 채친다.

미리 만들어 놓은 소스를 붓는다.

잘 섞는다.

면과 채소를 같이 집어 먹어보고, 짜면 물을 한 숟가락씩 넣거나 채소를 더 넣어서 간을 맞추고, 싱거우면 간장을 반 숟가락씩 넣어 간을 맞춘다.

그런데! 채소와 메밀맛을 느끼면서 살짝 싱겁게 먹어도 맛있다.  

그릇에 담고 들기름 한 바퀴 두른다.

마지막으로 쑥갓과 삶은 계란 얹으면 완성.

보기에도 청량하고 시원하다!

상큼하고 산뜻한 피넛버터 메밀국수


#메밀  #비빔국수 #땅콩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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