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식탁
보통 빨갛고 걸쭉하면서 들깻가루 담뿍 들어간 감자탕만 먹어 보다가, 마포구청역 근처 식당에서 맑은 감자탕을 처음 맛보았다.
일등식당이라는, 도무지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내건 간판의 가게에서였다.
정오 직전, 아마 열한 시 사십 분쯤이었을 텐데, 가게 앞 웅성거리며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 몫했다.
일등식당은 감자탕이 아니라 해장국이라는 이름으로 한 뚝배기씩 팔고 있었다.
기다란 뼈가 통째 나오고, 감자 대신 우거지가 가득 담겨 있었으며, 국물은 맑지만 칼칼했다.
얼마나 곱게 삶아졌는지 뼈에서 고기가 스르륵 떨어졌고 우거지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무엇보다 국물은 진하지만 담백했고, 자극적인 맛이나 텁텁함도 없었다.
이후 망원동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챙겨 먹곤 한다.
먹는 법은 이렇다.
뼈를 들어 살을 발라 먹다가 뚝배기 안에 공간이 생기면 밥을 한 숟가락씩 만다.
고깃살은 계속해서 발라 같이 내주는 장에 찍어 먹는다.
우거지도 한 번씩 걷어 올려 입에 넣는다.
이 우거지를 돌돌 말아 남은 흰 밥 위에 반찬처럼 얹어 먹어도 맛있다.
마지막 한 두 줌의 고기는 뼈에서 깔끔하게 떼어내어 도로 뚝배기 속에 넣는다.
그리고 그동안 고깃 국물에 불은 밥알과 부스러진 고기조각들을 듬뿍듬뿍 떠서 씹는다.
마지막,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하 잘 먹었다, 감탄사 한 번 내뱉으면 진정한 마무리.
한 날은, 그날은 여름날의 금요일이었는데, 일등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전 내내, 에어컨 바람 심하게 나오는 방 안에서 몇 주 골머리 앓던 문제와 관련해 회의를 한 후였다.
다행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속은 알 수 없게 찝찝했고 두통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뜨끈한 뭔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옮겨 타고 마포구청역에서 내려 일등식당에 들어갔다.
해장국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사람이 많이 빠져나간 식당 한쪽에 편안히 앉아,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맑은 국물에 소주 한 잔, 우거지 얹은 밥 한 숟가락에 소주 한 잔, 그렇게 한 병을 비웠다.
목소리만 클 뿐 실속 없이 무례한 사람, 아무런 준비 없이 나타나 시간만 끌게 만드는 사람, 만날 때마다 말이 다른 사람, 자기가 한 말을 기억 못 하는 사람... 콱 쥐어박고 싶은 골머리의 주범들이 소주 한 잔씩 비울 때마다 떠올랐다.
뱃속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무거운 몸으로 식당에서 나와 조금 걸었다.
금세 곧 망원역이었다.
망원시장이 가까워오니 정육점들이 한두 곳 보이기 시작했다.
핫핑크의 조명이 유독 눈에 띄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장님이 바삐 움직이는 곳 앞에 서서 냉장고 안을 구경했다.
아무래도 취기였겠지, 즉흥적으로 돼지 등뼈를 3kg을 샀다.
만원 정도 낸 것 같다.
아주 저렴했다.
비닐봉지 두어 장으로 살뜰히 싸준 등뼈 3kg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뒀다.
다음 날 토요일, 이 3kg을 어쩔 것인가 하다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가장 큰 냄비에 물을 받고 등뼈를 그대로 쏟아부어 핏물을 뺐다.
서너 시간 지난 후 또 어쩔 것인가 하다가 일단 삶았다.
된장 넣고 월계수잎도 넣고, 마늘, 양파, 대파 등등 냉장고 안에 자질구레하게 남아 있던 자투리 채소 다 넣고.
얼마나 삶았는지 모르겠다.
물이 졸아들면 또 부으면서, 고기가 뼈에서 떨어질 때까지 그냥 계속 삶았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고기가 뭉그러질 만큼 부드럽게 삶아졌다.
냄비 채 뼈를 다 발라낸 다음, 냄비에 고기와 국물만 남겨두고 다 건져냈다.
한 그릇 가득 떠서 소금, 후추만 뿌리고 그대로 벌컥벌컥 먹었다.
덕분에 토요일 하루는 그렇게 흘려보냈다.
일요일도, 그다음 주도, 그 다다음주 초까지 나는 돼지 등뼈를 고아 만든 고깃국물과 고기 몇 점으로 식사를 했다.
매번 팔팔 끓여야 했고 먹는 내내 호호 불면서 먹어야 했다.
먹고 나면 머리카락이 솟은 두피 위로 땀이 흥건했다.
돼지 등뼈 3kg을 다 먹었을 때쯤, 문제와 더불어 일도 끝났고 내 속도 괜찮아졌다.
마지막 회의를 하는 날, 그들은 여전히 콱 쥐어박고 싶게 굴었지만, 또 에어컨 바람은 여전히 너무 차가웠지만, 나를 가뿐하게 해줄 처방을 스스로 내리고 고깃국물을 떠올리며 견뎠다.
끝나자마자 일등식당으로 쏜살같이 갔다.
해장국 한 뚝배기에 소주 한 병.
속 시원하고 개운하게 비우고 나와, 역시 망원시장까지 걸었다.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구경하면서, 튀김과 닭강정을 샀다.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반이 지난다.
섭섭하고 아쉬운 일, 언짢고 꺼림칙한 사람은 여전하다.
복날이 이쯤 시작되는 것은 뜨거운 한 그릇에 땀 뻘뻘 흘리면서, 앞서 퇴적된 것들을 게워내라는 뜻이겠지.
몸속도 마음속도 다 녹여 흘려보내고 다시 시작하라는, 새 기회를 주는 기간일지 모른다.
여름도, 이어 나머지 반도 느긋하게, 소중하게 챙기면서 잘 보내야겠다.
그래서, 초복 복달임은 이렇게 맑은 감자탕으로.
맑은 감자탕, 3-4인분
돼지 등뼈 1kg
알배추 반포기, 감자 큰 것 두 개
물 1,000ml
소주(청주)
마늘 대여섯 알
생강 한 톨
매운 고추 한 개
대파 흰 부분 한 개
양파 한 개
된장 크게 한 숟가락
통후추 10알
기본 손질한다.
돼지등뼈를 찬물에 3시간 정도 담가 핏물을 뺀다. 중간에 물을 두어 번 갈아준다.
냄비에 등뼈를 담고 잠길 만큼 물을 부은 후 끓인다. 팔팔 끓어오르면 5분 더 끓인다.
끓인 물은 버리고 등뼈를 건져내어 깨끗하게 씻는다.
이 과정이 번거로워서 등뼈를 한 번에 2~3kg씩 기본 손질한 후에, 1kg씩 따로 담아 냉동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씻은 등뼈와 육수용 재료를 전부 넣고, 물을 1,000ml 부은 후 소주를 두 바퀴 두른다.
중 약불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끓인다.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육수 완성.
체에 밭쳐 육수를 준비한다.
냄비에 육수와 등뼈만 담는다.
여기에 알배추와 감자를 넣는다.
혹시 감자가 작아서 부서질 염려가 있으면 한 번 삶아서 넣는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간을 하지 않아도 삼삼하니 괜찮긴 한데, 싱겁다면 이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진하면서 개운하고 담백한 국물의 맑은 감자탕 완성. 고기는 부드럽게 발리고, 달근한 알배추와 감자는 고깃국물에 잘 어울린다.
일본 라멘 사리를 여기 넣어 먹어도 맛있다.
색다른 복달임, 맑은 감자탕!
#초복 #감자탕 #복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