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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n 14. 2024

충만한 이름, 닭 한 마리

6월 식탁

와.

한 그릇 가득 담아 개운하게 먹고 났더니 이마와 목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속이 따뜻하면서 시원해졌다.

양극의 두 형용사가 동시에 등장하는 모순된  요리가 많지 않을 텐데.

음식에 대해 갖는 이런 감각은 한식의 특징 같기도 하다.

닭이 주재료인 다른 나라 음식, 특히 스튜처럼 오랜 시간 공들이는 음식을 먹을 때  받는 느낌과도 다르다.


닭을 통째 끓여낸 후 국물까지 먹게끔  요리하는 음식이 있다.

예를 들어 닭 한 마리, 닭백숙, 삼계탕 등등을 먹고 있으면, 어쩐지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어떤 기운을 들이켠다는 착각이 든다.

뼈에서 살을 알뜰히 발라내는 동안 흘리는 땀은 분명 더위와 음식의 열기 때문에 나는 것인데도, 괜히 몸속의 기혈이 뚫려 순환이 촉진되기 시작했다는 징후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닭 국물 요리를 한 그릇 가득 비우고 나면, 충만함도 올라온다.

든든한 속과 더불어 닭을 통째 먹었다는, 마치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한 듯한 만족감.

또 내가 이 음식을 제패했다는 승리감.

엉뚱한 감정이다.

아무튼 이런 맛 때문에 여름에는 보양식을 먹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이런 보양식을 챙겨 먹는 것은 일종의 경건한 의례이다.


그래서 복날이 있나 보다.

그것도 초, 중, 말, 세 번이나.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무장하고 마음을 다 잡듯, 여름을 나려면 적절한 채비를 해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복날은 단순히 음식을 일컫는 것 이상이다.

어떤 절차이다.


이를 테면 우선 땀을 한 번 쫙 흘리고.

따뜻하면서 시원하다는 모순된 기분에 괜한 흐뭇함을 느끼고.

아, 더위 따위 끄떡없어, 올여름 잘 나겠군, 같은 예언을 연발한 다음

식당에서 먹었다면, 여기 괜찮네, 같은 평가.

혹은 직접 해 먹었다면, 집에서 할 만하군, 웬만한 식당보다 낫군, 직접 해 먹으니 더 맛있고 푸짐하네, 같은 자신감 뿜뿜까지.

이렇게 전 과정이 사실 여름 나는 채비.


특별히 닭 한 마리는 탁월하다.

이름부터가 “닭 한 마리”니까.

한 마리를 다 먹든, 몇 조각만 먹든, 채소만 건져 먹든, 어쨌든 닭 한 마리를 먹은 것이니 이보다 더한 대비가 어디 있나.


여름의 닭 국물 요리가 더욱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이맘때 먹을 수 있는 여름 채소가 아주 물이 올라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앞 접시에 닭 국물 자박하게 담아 포슬포슬하게 익은 햇감자를 넣고 으깬 후 숟가락으로 섞어서 떠먹으면 그냥 술술 넘어간다.  

달근하게 익은 애호박도 살캉하니 씹는 맛이 일품이다.

혹 알배추나 열무, 오이로 담근 겉절이, 나박김치, 소박이가 있다면 청량하고 상큼한 여름 김치에 닭고기 한 점 얹어 먹는 게 꿀맛이다.

끝물인 부추와 이제 막 커지는 깻잎의 향긋함도 빠지면 섭섭하다.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싸고 고급진 음식을 먹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이들과 모여 먹을거리를 나누는 즐거운 자리일 수도 있다.

오늘은, 시간과 땅의 향내 물씬 풍기는 신선한 식재료를 먹는 것, 시간 들여 곱게 끓여낸 한가득 냄비에서 한 점, 한 방울까지 음미하는 것 역시 잘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잘 먹었다.


닭 한 마리, 2인분

닭 500g(반 마리)

물 800ml, 대파 흰 부분 한 대, 양파 작은 것 한 개, 청양고추 한 개, 생강(마늘크기만큼), 마늘 대여섯 알, 통후추 열 알, 코인 육수(사골) 한 개

소주(청주), 꿀(올리고당), 소금


감자 중간 크기 세 개, 애호박 반 개, 대파 푸른 부분 서너 대, 칼국수 등등


양조간자, 연겨자, 스리랏차


닭 잡내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닭을 세 번 정도 씻고, 기름 덩어리는 잘라낸다.

씻은 닭은 냄비에 담고, 잠길 만큼 찬물을 부은 후 끓인다.

완전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그때부터 5분가량 더 끓인다.

닭을 꺼내 헹군다.

한 번 끓여낸 닭을 다시 냄비에 담고 물을 800ml 붓는다.

대파, 양파, 청양고추, 마늘, 생강, 통후추 다 넣는다. 청양고추 하나 넣으면 국물맛이 개운해진다.

소주(청주)를 냄비 가장자리로 한 바퀴 후루룩 두르고, 꿀이나 올리고당 혹은 설탕을 반 숟가락 정도 넣는다.

필수는 아니지만, 코인 육수(사골) 있으면 하나 넣는다. 조미료 맛없이 국물맛이 더 진해진다.

양파와 대파가 흐물흐물해지고 마늘이 뭉개질 때까지 중 약불에서 끓인다.

닭 삼는 동안 닭 한 마리에 넣을 사리 준비.

요즘 감자, 애호박 등 제철 채소 엄청 맛있다.

닭 한 마리는 대파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

칼국수면이나 떡, 고구마를 넣어도 잘 어울린다.

닭 육수가 나올 만큼 충분히 끓였으면, 뭉그러진 채소와 후추 등 전부 건져낸다.

닭 육수와 닭고기만 냄비에 담고, 국물 간을 맞춘다. 소금 한 꼬집 넣으면 맛이 확 살아난다.

준비해 놓은 사리도 넣는다.

사리가 읽을 때까지 끓인다.

닭 반마리로 끓인 닭 한 마리 완성.

찍어 먹는 소스 1 : 스리랏차.  웬만한 한식 요리, 특히 고기 요리에 다 잘 어울린다.

찍어 먹는 소스 2: 겨자 소스. 닭 국물과 양조간장 한 숟가락씩, 연겨자 취향껏


결들임 채소: 양배추를 채 썰어 양조간장, 연겨자, 고춧가루, 식초 넣고 버무린다.

사실 막 만들어 놓은 알배추 겉절이와 오이소박이가 있어서 따로 채소 무침을 만들지 않았다.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서.

일본전골처럼 끓이면서 건져 먹어도 좋다!


남은 것은 닭살만 발라낸 후 칼국수면 넣고 닭칼국수를 만들면 또 별미다.


#닭 #감자 #애호박 #닭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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