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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l 13. 2024

비건 복달임, 감자옹심이 버섯들깨탕

7월 식탁

어릴 때는 찬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 이제는 속이 따뜻해지고 배불리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이 더 좋다.

이런 점에서 버섯들깨탕은 제격이다.

그래서 계절 따지지 않고 자주 해 먹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눈에 띄는 버섯 두어 종류를 국간장 푼 육수에 후루룩 끓여내고, 들깨 넉넉히 넣어 한 숟가락씩 떠먹으면 절로 보양하는 느낌.

곧 초복이라길래 어떤 근사한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간편하면서 에너지 넘치는 버섯들깨탕을 끓이기로 했다.


묵직한 고기 요리가 아니라 버섯 들깨탕을 선택한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은 올해 초복 날짜를 잘못 알아서 복달임을 이미 한 차례 하고 말았다.

7월 15일이 복날인 것을 5일로 잘못 본 것이다.

착각한 초복에는 맑은 감자탕을 끓여 먹었는데, 혹시 궁금하다면 아래를 클릭!


클린앤클리어, 맑은 감자탕


칼칼하고 걸쭉한 감자탕과 또 다른 별미다.

구수한 된장과 달근한 양배추, 진하게 우려낸 돼지 육수가 어우러져 맛을 더한다.

등뼈 사이 살코기를 살뜰하게 발라먹고 남은 국물에 밥 자작하게 말아 후루룩 넘기면 속 깊은 곳까지 만족감이 쌓인다.

고추장아찌나 깻잎지 곁들여 먹으면 훨씬 맛있다.

그러고 보니 닭 한 마리를 먹어도 되겠다.

닭 한 마리는 아래를 클릭!


충만한 이름, 닭 한 마리


이 요리는 가끔 동대문 일대에서 사 먹는 닭 한 마리를 집에서 만들어 본 것이다.

백숙이나 삼계탕과 비슷한 듯 다르다.

뭐랄까.

큼지막한 토종닭 속에 찹쌀과 대추, 인삼을 채워 통째로 곱게 고아 낸 백숙은 그 정성에서부터 왠지 고급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닭을 조각 내 이런저런 사리를 넣고 끓이면서 건져 먹는 닭 한 마리는 푸짐히 먹는 데 방점을 둔 든든하고 맛깔스러운 음식 같다.  

아무튼 돼지 등뼈로 이미 복날 한 번 났으니, 채소 중심의 음식을 먹어도 좋을 것 같은 마음에 버섯과 감자옹심이 넣은 들깨탕.


버섯들깨탕을 끓인 두 번째 이유.

전라남도 임실에서 영농조합 활동을 하는 지인이 감자 10kg을 보냈다.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굵고 큰 감자는 몇 알 없어도 훌쩍 1kg이 넘어가기 때문에, 10kg 박스가 도착했다는 말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박스를 열어보니 알감자부터 내 주먹 두 배 만한 감자까지 고루, 엄청나게 많이 있다.

일단 크기별 분류해 두었다.

상태가 괜찮고 크기가 큰 것은 친구들 주려고 한 묶음, 감자를 통으로 써야 하는 요리를 위해 한 묶음.

그렇더라도 제법 많다.

이제 앞으로 집에서 차려 먹는 식사에 어떻게든 이 감자를 사용해야 한다.

해서 버섯들깨탕에 감자옹심이를 곁들이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잘잘한 감자들로 지은 감자 냄비밥까지.

아무래도 남은 7월과 8월 식탁은 감자 식탁이 될 듯하다.


버섯들깨탕인 마지막 이유, 그러나 가장 결정적 이유.

함께 먹으려고 초대한 이들 중에 비건을 실천 중인 사람이 있다.

그의 신념과 활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하는 바,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두부나 템페 같은 걸 사용해보려 했지만 그려지는 그림이 심심한 상차림이어서 잠시 고민을 했다.

왠지 복날에는 전통적인 한식재료로 지은 한 상을 먹고 싶지 않은가.

비건과 논비건 모두 맛있게 즐기고, 먹고 난 후 땀 쫙 흘리면서 보양한 기분 느낄 수 있는 메뉴가 뭘까.

마침 냉장고 안에서 경상남도 하동산 신선한 들깨가루가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발견.

마트에서 특가로 넉넉히 집어온 버섯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진한 감칠맛의 국간장 향 구수하게 올라오면서, 들깨 덕에 꼬숩고 녹진한 들깨탕을 끓이기로 했다.

그냥 같이 밥 한 끼 먹더라도 메뉴를 고민해서 고를 텐데, 다른 날도 아닌 특별하게 복날, fortune day라고 부르는 날에 아쉬워 입맛 다시는 이가 있어선 안 되지.




요즘에는 비건을 실천하거나 지향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만난 어떤 이는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다가 고등학생 때 시작했다고 했다.

공장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온실 가스는 당연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목지와 콩과 옥수수 같은 사료 경작지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전부 세계 곳곳의 숲을 없애고 만들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도 만만치 않단다.

또 지구상에는 여전히 기아와 굶주림이 심각하지만, 재배 곡물에서 50% 가까이가 가축 사료로 사용된단다.


상상하기 쉽게, 조금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공장식 축산에 먹이로 쓸 가축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우리나라 어딘가 대규모 화전을 일구었다.

생산 단가를 낮춰야 하니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고용해 농사를 짓는다.

그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인권의 임계에 처한 생활을 한다.

물론 당연히 그들은 싼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생산한 콩과 옥수수는 고스란히 소가 먹는다.

이런 현장이 아라셀 배터리 공장 화재사고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외 종차별주의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입장에서 비건을 선택한 이도 있고, 건강상 선택한 이도 있다.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세계의 부분 부분을 사려 깊게 살피고, 진심으로 고민하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나는 좋아한다.

가끔은 그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어쩌면 비건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좋아하니 소셜미디어에 유행하는 음식이나 식재료, 요리법을 자주 본다.

참신하고 재미있어서 따라 해보고 싶은 게 있는 반면, 강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다.

너무 소모적이고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그런 건 파괴 행위로 보이기까지 한다.  


억압과 폭력이 최소화되는 식탁, 무엇이든 함부로 다루지 않는 식탁,  소박한 식탁.

나중에 내 식탁을 둘러봤을 때, 이런 지향성이 드러나면 좋겠다.


감자옹심이 버섯들깨탕, 2-3인분

팽이버섯 200g, 느타리버섯 200g(표고버섯, 만가닥버섯 등 다 좋다.)


물 800ml, 다시마 두어 장(비건 아니면 코인육수나 시판장국 사용해도 된다.)

국간장 1Ts(15ml), 소금

부추 한 줌, 홍고추 한 개


감자 주먹만 한 것 3개, 전분 1Ts(감자옹심이를 직접 만드는 대신 시판 찹쌀옹심이, 조랭이떡도 좋다.)


먼저 감자옹심이를 만든다.

감자를 간다. 블렌더가 없으므로 강판에 직접.

간 감자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섞은 후 15분가량 그대로 둔다.

간 감자를 면보자기에 담아서 꾹 짠다. 걸러진 국물은 버리지 않는다.

국물만 15분 정도 그대로 두면 감자전분이 하얗게 바닥에 가라앉는다. 이 전분을 사용해야 하므로 윗물을 살살 따라 버린다.

가라앉은 전분에 앞서 걸러낸 건더기, 시판 전분을 1Ts 가량 더 넣고 조물조물 섞는다. 소금도 한 꼬집 더 넣는다.

동그랗게 옹심이를 빚는다.

큼직하게 빚었더니 8개 나왔다.

이제 버섯들깨탕을 끓인다.

먼저 냄비에 물 800ml를 붓고 끓인다.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여기에 감자옹심이를 숟가락으로 하나씩, 천천히 굴려 넣는다. 시판 찹쌀옹심이나 조랭이떡을 넣어도 맛있다.

냄비에서 감자옹심이가 떠오르면, 준비한 버섯을 넣는다.

버섯은 금세 숨이 죽어 가라앉기 때문에 냄비가 가득 차더라도 한 번에 넣는다.

3분 정도 더 팔팔 끓이다가 불을 끄고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은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준비한 부추와 홍고추를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아 뜸 들이듯 잔열에 익힌다.

고소한 국물과 살캉하게 식감 좋은 버섯, 그리고 탱글탱글 쫀득한 감자옹심이.

감자옹심이 안에 소를 넣고 빚으면 감자떡인가?

함께 먹은 감자밥.

속이 노란 감자와 겉껍질이 보라색인 감자를 넣었더니, 냄비 속이 정말 아름답다.

선물 받은 10kg! 감사한 감자, 감감.


#버섯들깨탕 #감자옹심이 #감자밥 #비건 #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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