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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Jul 19. 2024

태양을 통째로, 토마토 절임

7월 식탁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거뒀다.

여러 차례 따서 호로록 먹은 개수도 적지 않지만, 빨간 동그라미들이 대롱대롱 달려 있는 게 사랑스럽고 예뻐서 대부분 그냥 두고 구경했다.  

그러다 비가 세차게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 전부 따고 보니 큰 용량의 컨테이너로 두 통이나 된다.


몇 백개에 달하는 토마토를 깨끗이 씻고 마리네이드 해서 병에 담았다.

당연히 번거롭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해놓으면 한동안 샐러드, 파스타 해 먹기 편하고, 주변에 나눠 주기 좋다.

뭘 쌓아두거나 쟁여두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토마토소스는 한 번에 몇 리터씩 만들어 냉장고 안에 쟁여두는데, 여름에는 마리네이드 해놓은 토마토가 추가된다.


토마토 병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

어릴 때 엄마가 된장과 고추장을 담가 놓아야 일 년 간 마음 편하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얼추 알 것 같다.  


우리 집은 된장, 고추장, 식초 등을 만들어 먹는다.

엄마 말로는 아빠와 결혼 후 계속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만드는 법은 할머니에게 배웠다고 했다.


내 기억에 명절 쇠러 온 가족이 할머니네 가면, 꼭 그때마다 할머니는 직접 쑨 메주를 몇 덩어리씩 아빠 차에 실어주었다.

손재주 좋은 엄마는 서울 집 마당에서 그 메주들을 띄워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 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의 어느 날, 해마다 마당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곤 했다.

싱싱하게 다시 살아난 메주와 지난해 가을, 역시 할머니가 키우고 거둬 곱게 말린 태양초, 장날 샀다는 이런저런 약재들, 푹 삶은 노란 콩이 마당 바닥에 가득했다.

괜히 들뜬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부드럽고 달달한 콩을 막 집어먹기도 하고, 메주 냄새가 고약하다며 소리도 지르고, 메우니까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으라고 엄마에게 훈수를 두기도 하면서.

그렇게 엄마가 한나절 솜씨를 부려 놓은 걸로 온 가족이 일 년 내내 건강하고 푸짐하게 먹고살았다.

나는 특히 초여름에 마당에서 여린 상추 이파리를 잔뜩 뜯어다가 엄마의 고추장으로 상추쌈 해 먹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

가끔 캔참치 하나 곁들여 호화로운 여름 밥상을 즐기기도 한다.


식초는 마당의 감나무 덕을 톡톡히 봤다.

가을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면 전부 따서 깨끗이 씻은 다음 항아리에 담는다.

그리고 항아리째 마당 한쪽에 묻고 몇 년 삭인다.

전부 무르고 발효됐을 때 꺼내 그대로 체에 거르면 그게 바로 감식초.

그렇게 거른 감식초 원액을 유리병에 담아 다시 실온에서 몇 년 숙성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초의 탁한 주황색은 점점 뽀얗고 투명하게 변한다.

 

할머니는 메주만이 아니라 농사지은 쌀, 말린 고추와 버섯, 무겁고 큰 늙은 호박, 콩, 팥, 참깨, 문어와 오징어 같은 건어물, 한과도 차에 한가득 실어주었다.

각각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엄마에게 조곤조곤 설명도 했다.

이 정도 참깨는 참기름이 서너 병 나올 양이니까 방앗간에서 기름낼 때 꼭 확인해라, 말린 고추는 씨까지 가루를 내야 칼칼하고 맛있다, 계절 바뀔 때 피문어 불려서 아기(나)랑 어멈 죽 끓여 먹어라 등등.

할머니는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옆에서 들은 내용을 전부 기억한다.

할머니가 철철이 보내주고 싸주는 덕에 엄마는 대파 한 뿌리도 살 필요가 없었단다.

그래서 살림에 보탬이 많이 됐고 주변에서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자주 한다.  


할머니는 몸이 노쇠해져 내가 중학생 때 서울로 와서 함께 살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엄마는 시장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메주를 샀다.

저기 시골 어디서 무농약으로 키운 콩으로 쑤고 좋은 산바람으로 말렸다는 메주를 비싼 값에 사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염 장 담그는 방법을 배웠고, 요즘은 메주 덩어리 대신 메주 가루를 사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만 장을 담근다.


마당의 감나무도 너무 관리가 힘들어 어느 해인가 베어 버렸다.

주변의 장독도 없앴고 그 자리에 텃밭을 만들었다.

향기 나는 고급 식초도 국내산은 물로 전 세계의 어디 것이든 금세 살 수 있으니 먹는 것 자체가 아쉬운 건 아니다.


며칠 전, 두어 숟가락 남은 엄마표 저염 고추장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다 먹어버리고, 빈자리에 토마토를 채워 놓았다.

엄마가 보더니 고추장 담가야겠단다.

좋은 게 많으니 그냥 편하게 사 먹자고 했다.


"먹을 게 없어서 하는 건가, 하는 게 재미지 뭐.

해서 나눠도 주고."


뜨거운 햇빛에 바싹 익은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꼭 보석 같다.

먹을거리에 켜켜이 쌓인 추억은 새로운 게 없는데 언제나 재미있고 신비하다.


토마토 절임, 500ml 한 병


방울토마토 500g 미만 (35-40개쯤)

얼음물

마늘 두어 알, 양파 반 개

발사믹식초 1Ts(15ml)

양조식초 1Ts

레몬즙 3Ts

꿀 1Ts

소금, 후추 약간

올리브오일 4-5Ts

텃밭 토마토

방울토마토는 꼭지를 따고, 꼭지가 달렸던 부위를 십자로 칼집을 내준다.

토마토를 끓는 물에 2분 데친다.

데친 토마토를 찬물, 가능하면 얼음물에 헹군다.

토마토의 껍질을 벗긴다. 잘 벗겨진다.

마리네이드 하는 양념을 만든다.

양파와 마늘을 잘게 다지고, 여기에 올리브오일 제외한 모든 양념을 넣서 섞는다.

일반 토마토 대신 스테비아 토마토를 쓴다면, 양념에서 꿀은 뺀다.

바질이나 파슬리 같은 허브를 넣어도 좋다. 그러면 토마토에 허브향도 밴다. 나는 나중에 먹을 때 음식에 맞춰 따로 추가하는 걸 좋아해서 넣지 않았다.

양념에 데쳐서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넣고 잘 섞는다.

여기에 올리브오일을 3Ts를 넣고 섞는다.

병에 차곡차곡 담고 제일 위에 올리브오일을 2-3Ts를 더 넣는다.

토마토 절임 완성.

냉장고에 차게 보관한 후 먹는다.

샐러드로. 모차렐라를 깍둑썰기해서 토마토 절임과 섞고 올리브 오일 넉넉히 두른다.

삶은 스파게티 넣어서 파스타로.

모차렐라나 부라타, 바질 곁들이면 오스트리아 부럽지 않다.

이렇게 먹으면 폭염이든 폭우든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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