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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Apr 13. 2023

한번 긍정하면 10번, 100번 부정하자

실망 대 절망

실망하면 그냥 포기하고 딴 것을 하면 된다. 그러다가 희망이 생기면 다시 돌아와 노력해도 된다. 실망의 '실'은 잃어버릴 '실'이니 찾아나서면 된다. 그런데 절망하면 희망을 아예 싹뚝 잘라 버리는 것이라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배제된다. 동전을 넣었는데 자판기가 잼되어 음료가 나오지 않으면 화도 나고 실망스럽지만 큰 일은 아니라서 대개 그냥 포기한다. 하지만 수년간 준비하던 시험에서 자신이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희망하던 꿈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므로 절망한다.


그런데 실망은 부정(不定)이고 절망은 긍정(肯定)이라고 하면 쉽게 동의가 힘들다. 이렇게 설명 가능하다. 실망은 희망을 잃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다시 찾으면 된다. 찾는 과정에서 하나를 정하지(定) 않고(不) 자유롭게 선택할 대상을 찾을 수 있다. 확고하게 하나를 정하는 대신 다른 가능성을 없애지 않기에, 정하지 않아서 부정이다. 대신 절망은 희망을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라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 이 말은 절망해 사라져 버린 것 대신 택한 다른 것에 모든 것을 걸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선택한 것에 대해 전념한다. 확실하게 정해 버렸기에 긍정이다.


한 카페에 실망하면 잘 안가게 되지만 계기가 생겨 좋아하게 되면 얼마든지 다시 단골이 될 수 있다. 그 카페를 부정하다가도 다시 선택해 좋아할 가능성은 남겨둔다. 그런데 카페에 절망하면 재고의 여지가 없다. 완전히 끝이 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절망해 끊어내 버린 카페를 대체하는 다른 카페 하나를 몇 갑절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절망해 버린 선택 아닌 다른 선택을 오히려 강하게 긍정하게 된다. 그래서 절망을 긍정이라 한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한 정당에 실망하면 다른 정당에 희망을 걸었다가 다시 원래 좋아했던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쉽게 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든 진보든 특정 정당을 일단 지지하면 절대 바뀌는 않는 사람도 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을 긍정하고 반대 정당에 대한 희망을 아예 끊어 버린 것이다. 절망하고 대신 강력한 긍정을 택한 것이다.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부정하는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유연하다. 쉽게 하나의 목표에 빠져 다른 가능성을 쉽게 포기해 버리지 않는다. 부정적 사회가 아니라 부정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니 조심해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반면 긍정하는 사회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에 매몰되어 다른 것에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눈길 주지 않는 다른 것에는 이미 절망했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 모든 것을 거는 긍정을 한다.


이제 자기 자신의 문제다. 자아란 직업, 꿈 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상황을 만나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자아이다. 그러니 나의 자아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거의 무한대다. 그런데 자아의 가능성을 줄이고 또 줄여서 정예멤버만 가지고 있다면 무한히 많은 자아에 대한 희망을 아예 끊어버린 것이다. 절망된 자아가 무수히 많고 긍정의 자아만 가진 경우다. 긍정은 자아에 대해서도 지금껏 들어 왔었던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유연하게 부정함으로써 자유로운 영혼과 능력을 가진 무한대의 잠재력을 가지려면 자아를 부정해야 한다. 그러니 그대 혹시 지금 긍정했다면 오늘 하루 수많은 부정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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