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는 무겁다 vs 망치는 무겁다는 개념
부처님이 연꽃을 들자 제가 중 마하가섭만이 미소로 그 뜻을 헤아렸듯이 사람들은 망치를 들고 늘상 사용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망치 한번 들고는 세상 진리를 단번에 알아버렸다. 그는 세상을 바꾼 “3H 철학자” 중 한 명인 마틴 하이데거다. 에드문트 후설의 조교이기도 했다. 후설이 추천해서 쓴 그의 책 <존재와 시간>에서 망치를 드는 순간, 특이점을 통해 존재의 본질인 ‘에센스’를 느끼고, 자신의 주체를 선언하면서 결국 개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판단을 한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그는 망치를 들면서 “무겁다”고 느낀다. 하이데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다. 망치를 드는 첫 경험에서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모호한 무겁다는 느낌이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무거움은 그곳에 있다. 무거운 느낌이 있어 언어를 빌러 “무겁다”라고 했을 뿐 대화는 아니다. 그냥 무겁다. 무겁다는 느낌을 지정한 거다. 이 무거움은 망치 뿐만 아니라 무거움이란 느낌을 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해당된다. 이 사물들은 무거운 느낌 속에 “속”한다. 소속 같은 것이다. 생물분류 ‘종속과목강문계’의 ‘속’에 해당된다.
망치를 들고 무거움을 느낀 다음에는, 즉, ‘무거움’이란 무엇을 느끼고 그런 소속을 지정하고 나서는 “무거운 것은 망치구나” 라고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주체라고 한다. 첫 단계인 무거움을 가지는 소속을 정한 다음에 그런 해석을 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거움을 갖는 소속, 그리고, 소속을 해석하는 주체를 거친 후 판단하는 끝 단계인 “무거움의 개념은?”로까지 이어진다.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해했으니 비로소 타인과 소통하길 원하게 되었다.
망치 한번 들었을 뿐인데 세상 사물을 모두 이을듯한 느낌, 느낌으로 마음에 주름 하나 갖는 주체, 그리고, 개념까지 갖게 된다. 우리 그렇게 진리를 깨친다.
1916년 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에드문트 후설이 철학 수업을 끝내고 나가면 어려운 수업에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수업 조교(TA)였던 마틴 하이데거는 후설의 ‘존재의 핵심 본질, 에센스’ 강의 후 학생들에게 “망치를 든 철학자” 예를 들어 후설의 에센스를 추가로 설명해주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