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를 뱉기 전에 생각해 본 이유들
힘듭니다.
많이 의지했던 리더들도 줄줄이 퇴사했습니다.
이 기록에 다 담지 못한 배경도 많고, 담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는 수도 없이 담금질해 왔고 속했던 조직에서의 관계들도 어느 하나 틀어짐 없이 잘 다져 왔죠.
그 덕에 항상 박수받으면서 떠났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박수받으면서 빠르게 성과 내고 동료들의 신뢰를 받아 왔던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목표를 정해 두고 어떻게든 달성하고자 나아가는 사람들이 합류했고 덕분에 조직에서 어떻게든 해 보려는 의지를 갖고 아등바등하고 있습니다.
빛이 잠들면 어둠이 찾아오듯
그럼에도 어려움은 늘 곁에 드리웁니다.
마음을 태웠던 우리는
왜 힘들까.
왜 지쳤을까.
왜 하루를 한숨으로 시작할까.
"힘들다"를 입 밖으로 꺼내기 전까지
수도 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정리한 몇 가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만 잘 다듬어서 기록해 봅니다.
'소 잡을 칼로 벌레 잡는다'라는 말. 이 같은 상황의 무한반복.
뭔가 거창한 일을 할 것처럼 안내받고 오지만 결국 한두 가지 병목을 해결하면 할 일이 붕 떠 버리는 상황이 생깁니다. 업무 분배가 직무와 그 사람의 배경을 고려하고 이뤄지기보다 '이거 잘할 것 같은데? 저것도 잘할 것 같은데?'가 됩니다. 받는 사람은 일단 시키니까 합니다. 또 끝나고 또 같은 상황이 생깁니다.
일을 주는 사람이 직무에 대한 이해도나 그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하는 일,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니 흔한 말로 '주먹구구식으로' 오가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100의 역량을 가진 사람이 20-30 수준에서 머무르고 갈증은 커져 갑니다.
팀원들이 잘하는 영역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업무를 주고 싶어도, 더 위에서 개인톡 또는 구두로 주어지는 미션들이 많습니다. 미션이 주어진 배경은 같습니다. '이거 하면 잘할 것 같은데.'
결국 그렇게 이것저것 수습하다가 하루이틀 가기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기록할 경험이 없어요.'가 팀원 입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조직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신뢰받는 의사결정권자일 수도 있고, 비용 집행자가 될 수도 있죠. 굳이 '어떻다'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회사 내에서 기획 업무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미션이 갑니다.
'새로운 것'과 '과감한 것'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요구를 받습니다. 촘촘히 기획합니다. 컨펌의 끝단 전까지 많은 설득과정을 통해 쭉쭉 갑니다. 최종 컨펌이 되지 않습니다. 컨펌이 안 된 이유에 대해 같은 자리 있는 모두가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밀고 갑니다. 그렇게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옵니다. 맥락이 맞지 않으니 뒷단에 붙일 수 있는 액션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쥐어 짜내서 알립니다. 당연히 내부 공감도 못 사니 외부에서 공감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성과가 좋지 않습니다. 피드백이 갑니다. '왜 안 됐는지' 원인을 파악한다지만 추궁에 가깝습니다. 실무자에게는 '난 처음부터 이럴 것 같아서 이렇게 하지 말자 그랬는데'가 남습니다. 책임에 대한 피드백만 받으니 뭔가 찝찝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걸 가져오라 합니다. '어차피 새로운 것 가져가봤자 안 돼'가 먼저 마음에 깔립니다. 그때부터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것들만 남습니다. 이 상황이 결국 반복됩니다.
저는 피드백받는 사람보다 피드백 주는 사람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드백을 주려면 팀원의 성향도 파악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전달해야 이해가 될 지도 생각해야 되고, '저 친구가 더 잘하려면 어떤 포인트를 건드려줘야 이걸 잘 받아들이고 더 크게 볼까' 생각해야 되고, 같은 뉘앙스지만 전달하는 언어의 온도도 신경 써야 한다 생각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실수가 잦은 영역입니다. 일은 일로 끝나야지 감정의 영역까지 가면 안 되겠죠.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회사 업무의 많은 영역에서 실무자들이 원하지 않는 한 뜻으로 좁혀집니다. 그렇게 많은 작업들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팀원들의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겠죠.
이걸 단순히 '마이크로 매니징'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으니까요. 일련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건 링크로 걸어두겠습니다.
1-2번의 과정이 반복되니 브랜드가 좋아서 온 팀원들이 애정을 갖지 않기 시작합니다.
밖에서 볼 때 정말 뭔가 있는 것 같고(뭔가 있었고), 브랜드의 스토리가 좋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고, 이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직원들 중 많은 분들이 브랜드 팬이었습니다.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 마음이 입사 후에도 지속이 돼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고객보다 더 많은 관리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브랜드에서 던졌던 메시지를 넘겨받아 이어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세월은 가고 누구나 늙습니다. 매일 보는 매체들도 익숙해지고 점점 새로운 것이 생기기 마련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가 나오는가 하면 전 세계를 휩쓰는 멋진 브랜드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좋아하는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이들을 믿어주는 것이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가 되어 후배를 양성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니까요.
이 믿음 없이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움켜쥐려 하면 새어 나가기 마련입니다.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소통의 당사자가 먼저 본인 피드백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을 듣는 사람이 선호하기에 많은 분들께서 솔직한 피드백을 드렸습니다. 이 피드백 현장에도 여러 차례 동석했죠. (팀 단위로 들어갔기에 직접 제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이 자리에서 서로 선을 넘거나 무례한 표현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피드백 자리가 끝나면, 솔직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했던 그 팀원은 그대로 집에 갑니다. 어느 순간 사무실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그의 흔적은 지워지고 다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남은 팀원들에게 그 어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반복되면 또다시 피드백을 요합니다.
이제 아무도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입을 닫고 하루하루 묵묵히 보냅니다.
많은 분들이 나가셨고, 많은 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OJT를 진행합니다. 얼굴을 트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들 묻기 시작합니다. "전에 계셨던 분은 왜 나가셨어요?"
쉽게 대답하지 않지만, 그분께서 겪으실 어려움이 예측이 되기에 최대한 걸러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며칠이, 몇 달이 지나고 전임자 분의 힘들었던 모습이 신규 입사자 분께 똑같이 보입니다. 또 똑같은 과정, 똑같은 어려움, 똑같은 프로세스와 똑같은 대화, 그리고 똑같은 한숨.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해 노력하는 시간은 있었을까요.
브랜드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하나도 여러 명에게 코멘트가 갑니다.
내일 포스팅 하나 올라가야 하는데 출근 전날 저녁인 지금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캡션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부터
이미지 톤과 디자인 요소의 배치, 업로드 이후 전체 그리드 상에서의 조화까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잡더라도 수정사항이 생깁니다. 그래서 디테일하게 봐봤자 의미 없다는 내부 피드백까지 들리고 있지요. 어차피 바뀔 거고 맞춤법은 또 틀려 있고 실무자들은 최종 수정을 할 겁니다.
내부 실무자들에게 세부 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름 많은 비용을 들여 고퀄리티의 에셋을 만들고 업로드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 계정을 팔로 하셨던 팬으로부터 DM이 왔습니다.
"이 포스팅에 써두신 말들이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못 알아듣겠어요."
황급히 확인했을 때는 이미 일기장에 쓸 법한 알 수 없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각 요소들이 의미하는 것부터 맥락을 천천히 말씀드리니
"이제 이해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공식 계정인데 신경 좀 써 주세요. 맞춤법도 가끔 틀린 걸로 올라오던데."
이 날의 부끄러움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저희 팀 모두가 몰랐던 상태에서 수정되어 있던 문구들과 그걸 수정하며 수습하던 각 팀원들.
브랜드 내부에서 해야 할 게 뭐고, 정말 중요한 게 뭘까요.
예전 같았으면 이 주제로 3시간 넘게 앉아서 얘기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동력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