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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면 Sep 14. 2021

노이즈 캔슬링

#1단편소설


아침이 된 창 밖은 지금도 시끄러웠다.  

시장통 근처의 내 집은 결코 쾌적한 생활권은 될 수 없었다. 

어제저녁에는 창 밖의 어떤 이가 꽥꽥 오바이트를 해 대는 통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그 소음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통에 스스로 예민해졌고 어차피 이루지 못할 잠이라고 생각하여 

믹스커피 두 봉지를 종이컵에 타 먹으며 담배를 피워댄 탓이었다. 


오전 7시, 너구리 굴이 된 방 틈 사이로 곱등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담배연기는 겉으로는 소독차에서 내뿜는 연기 같았지만 전혀 다른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곱등이가 시각이 뛰어났거나 인간처럼 깊은 

생각을 하는 곤충이었다면 절대로 이 방 안에는 들어오지 못했을 

텐데 지금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이 곱등이는 우월한 변종 유전자나  

슈퍼파워를 가지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곱등이는 방의 코너에 곰팡이들 옆에서 잠시 동안 앉아 있었는데 

저 곱등이가 차라리 곰팡이를 주식으로 하여 이 방 안의 곰팡이들을 

없애준다면 애완용으로 딱일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잠시 동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곱등이는 뒷다리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 쉴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이 거지 같은 방 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증금 100에 25만 원의 반지하. 대충 챙겨 입고 방 밖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섰어도 세상은 정말 듣기 싫은 말과 혐오스러운 투성이다. 

전화기를 들고 길을 걸어가며 큰 소리로 전화하는 이들이나 클락션을  

울려대는 좁은 골목의 차들, 그리고 종종 나타나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강요를 하는 이들은 외면하려 해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감정과 기분은 그들의 시간으로 복제 해 버린다. 그들은 무례하고  

이기적이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은 없었다. 불쾌한 감정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지만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내가 거대한 곱등이면 저들을 뒷발로 차 버리거나 그들도 똑같이  

혐오스럽도록 뒷발을 잘라두고 그 자리를 떠나버릴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골목의 어귀에 들어가 담배를 한 개 물고 라이터를 딸각 거리며 켰다. 

담배의 끝에 불이 붙었고 치익 소리와 함께 타 들어갔다. 연기를 한입 

베어 물고 “후~” 하고 불어냈는데 골목의 코너 밖에서 누군가 짜증 섞인 

말투로 들으라는 듯한 큰 소리의 말이 들려왔다. 


“씨팔, 담배 피우는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나 역시도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았다. 충격으로 한참 동안 담배를  

손에 들고 떨지 않았기 때문에 부서진 재는 바람에 흩날려 바지에  

다 묻고 말았다. 


그래, 나 역시도 누구에게는 곱등이 같은 존재였다며 스스로 자책했다. 


어두운 골목 어귀를 나오자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이 부셨다. 

어느 화창한 오후의 파란 하늘에선 ‘슈웅’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붉은빛이 줄기로 갈라져 하늘에서 내려왔고 내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머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러댔다. 내 머리 위로도 붉은빛이 떨어졌다.  


한참 동안 고통스러운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는데 내가 눈을 떴을 땐 

어떤 젊은 여자가 되어있었다. 두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 했을 땐 

오늘 아침의 곰팡이와 곱등이로 얼룩진 하루의 시작 같은 것들이 희미 해졌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담배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두뇌 속에 엄청난 양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이 사람의 기억인 듯 보였다.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람의 몸뚱이는  

부족함 없고 고민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  

지옥 속에 살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어떤가 계속해서 이전 나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막 태어난 새끼 동물처럼 얇고 가녀린 다리가 후들거리며 나를 지탱했다. 


저기 이전의 내가 보인다. 눈을 마주치자 놀라 창문을 쳐다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마치 아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어쩌면 내 몸뚱이엔 

아이가 들어갔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전 기억이 사라져 간다. 마치 컴퓨터 휴지통의 모든 파일들이 삭제되는 것처럼. 

잠깐 동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멈춘 것 같이 고요 해 졌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치마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나는 내가 아니었지만 누구도 나를 나로 보지 않았다. 

나는 이전의 기억이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것이다. 


이후에 이전 나라는 존재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갔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다. 이 사람의 행복한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티브이의 해외토픽에서는 몇몇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이 바뀌었다며  

소리를 치고 음모론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하는 흥미 위주의 티브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허름하고 곰팡이 낀 공간의 구석이 보였는데 어쩐지 익숙한 모습 같았다. 

친구는 이런 낡고 허름한 곳에 왔다며 툴툴거렸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불편하여 고개를 획 돌리고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자리를 일어나서 카운터로 향했다. 

지나칠 때 익숙한 담배냄새가 났다. 


남자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어쩌면 내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한쪽 다리가 저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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