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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Oct 04. 2024

나는 달린다

내 삶의 안쪽_9. 무라카미하루키"슬픈외국어", 요쉬카피셔"나는 달린다"

《슬픈 외국어》는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이고, 《나는 달린다》는 독일의 전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의 수필집이다. 오래 전에 서로 닮은 점이라고는 없는 두 인물의 책을 각각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두 책에서의 유사성을 굳이 발견하려한 것은 아닌데, 공통점이 있었다. <요쉬카 피셔>와 <하루키>가 모두 마라톤을 하고 있고, 마라톤에 대한 자신들만의 견해가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작가인 <하루키>는 이름을 들어 잘 알고 있는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까지 읽고 싶지는 않았었다. 일본 작가라는 편견과 그들의 가볍고 감각적인 풍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아서 아무리 대중적인 인기와 국내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그의 <노르웨이의 숲>,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등 몇 권의 책을 읽게 된 이후, 그의 감성과 묘한 분위기에서 스토리를 풀어가면서도 스케일에서 조차 그만의 적절한 구도를 잡아가는 것에 본의 아니게 그를 흠모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요쉬카 피셔>는 단지 내가 마라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불어 닥친 아마츄어 마라톤 열풍으로 이미 마라톤을 통해 개과천선改過遷善하였다고 고백한 <요쉬카 피셔>장관의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것이었다. 무엇이든 시작을 하게 되면 호기심어린 관심과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명분을 맞춰보고자 하는 심리가 있는 듯하다. 흔치 않았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마라톤에 대해, 그 이상으로의 가치와 실용적 성과가 있었다고 체험을 통해 전해주니 누군들 마다할 까 싶게 내 주위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은 듯하였다.


아무튼 놀라운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개의 소설가들과 달리 마라톤에 도전하고, 그 외에 대중들이 선호할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에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수영을 꾸준히 한다든지, 와인을 즐기고 재즈를 좋아하는 취미가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는 사업가 적(的)이면서 자유분방한 모습 등에서 묘한 느낌을 줄 문화적 취향이 왠지 적절하지 않은 조합인 듯 하면서도 어우러지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즐긴다 하니, 반가웠다. 그리고 나의 마라톤도 그런 차원에서 다소 특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히려 <피셔> 장관이 마라톤을 통해 체중조절을 하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건실한 생활습관과 패턴을 확보했다는 것 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쪽이 훨씬 더 고급(?)스럽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때의 생각으로는, 건강과 체중조절 등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목적(물론 이는 매우 원천적이어서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마라톤의 의미이지만)으로 마라톤을 시작하여 결국 끈기 있게 그 지루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재미도 없는 운동을 지속하여 목적을 달성한 <피셔> 장관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하루키>의 마라톤은 이미 그 보다 더 마라톤의 가치를 차원 높게, 또 넓게 저변을 늘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었다(그저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나는 1997년 우연히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물론 처음부터 풀코스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선일보사가 일반인이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 대회를 연다는 회사공고를 보았고, 마라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니 그 대회가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일반인, 즉 마스터즈masters들을 마라톤 대회에 참가시키기로 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리고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 일반인이 참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몰랐는데, 나의 무관심 탓이긴 했지만 그만큼 마라톤이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겼던 증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대회보다 2년 전쯤 부터 비공식적으로 일반인들이 알음알음으로 국제 행사인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었고, 결국 공식적으로 신문사 공고를 통해 대회를 새롭게 확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대회를 알게 되었고 엉겁결에 참가를 하게 된 셈이었다.


실은 나는 그보다 몇 달 전인 그해 6월에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5km 단축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연세대 정문에서 여의도 둔치공원까지 가는 짧은 코스인데도 매우 힘들게 완주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무려 이십년이 다되어가는 군대시절을 떠올리며 그 정도는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몸 상태가 그 정도도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뭔가 변화를 찾자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그런 심리적 변화에 맞춰 조선일보의 행사안내를 보게 된 것이니, 우연치고는 적절하게 맞아간 것이다. 그리고 서너 달 정도, 짧은 거리이지만 연습을 한 후 그해 10월에 대회에 나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마라톤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였다. 나는 하프코스를 참가하는 것이지만, 풀코스 참가자도 매우 많았고, 각 코스마다 수많은 참가자들에, 그리고 나와 같이 무슨 대단한 도전이나 하는 듯이 가족 모두를 이끌고 온 사람들도 많아서 거창한 행사의 위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행사분위기에 한편으론 가슴이 뛰고 긴장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앞으로 뛸 거리 때문이라도 긴장이 안 될 수 없었지만 행사의 규모나 분위기의 열기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 색다르고 특별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첫 대회를 성공적으로 완주하였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코스는 다른 대회들이 반환점을 다시 돌아오는 왕복코스인 것에 비해 의암호수를 한 바퀴 도는 편도 코스이고, 주로가 특별하였다. 반환점이 없는 원웨이one way에, 호수 주변의 경관이, 특히 가을이어서 매우 아름다운 코스라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뛴 보스톤 마라톤대회도 반환점 없는 편도 코스로서 출발지점은「홉킨톤」이라는 작은 전원도시인데, 참가자들은 전용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서 출발하여 보스톤 시내 골인지점으로 들어오게 된다(내가 달렸다는 것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설명하는 내용이다). 1997년 당시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의 하프코스 역시 비슷하게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풀코스의 반에 해당하는 하프지점(21.0975km)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풀코스 선두가 지나가면 하프코스 주자를 출발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첫 대회 참가이고 초보자이니 거리 조절이나 페이스 조절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었고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뛰는 식이었다. 참가자 무리에 섞여 딸려가듯 달렸는데  쭉쭉 달려 나가는 레이스race가 신이 나기도 했고 그래서 나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아예 시계고 뭐고 없이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니 나의 속도가 적당한지 무리인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12km 지점쯤이었을 것이다. 서서히 무릎주위에서 무리가 느껴지더니 약간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으나 통증이 점점 심해지니 자연스럽게 달리는 것이 불가해 지고 결국 걸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걱정이 엄습했으나 포기할 수도 없으니 억지로라도 남은 7~8km의 거리를 뛰다 걷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연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주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관중들은 힘이 되기도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억지가 되었든 힘을 내었든 골인 지점을, 얼마 안 남겨 둔 1~2km지점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 기를 쓰며 달리고 있었는데 마침 길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되니 참으로 반갑고 힘이 되었다. 나는 그길로 마지막까지 무사히 달려 골인하였다. 기록은 레이스 후반부에 고전했음에도 1시간 40분이었다. 처음 참가한 사람이 기록에 목표를 두거나 욕심을 낸 것이 아님에도 뜻밖의 선전한 기록에 대해서는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수준의 기록이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레이스race 초반부에 오버페이스over pace라 할 만큼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렸다는 반증이었다. 결국 페이스 조절을 잘 못했기에 후반부에 고생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과히 나쁘지 않은 기록을 갖게 된 것은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동안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준비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첫 시작의 순간과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각 자에게는 나름의 이유와 동기부여가 있다. <요쉬카 피셔>는 그가 처한 매우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매우 큰 결단으로 마라톤을 시작하였고, 그가 독일의 외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잘 하고 있었음에도 변화가 필요했던 이유가 있었으며, 그것은 단지 목표한 것만을 달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것들을 그에게 안겨 주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가 언급하였듯, 달기기는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서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에밀 자토펙>(체코 출신,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우승자)의 메시지를 제시하는 이유이다. 이는 우리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을 망각하였거나 기본 능력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달리기는 오늘날 “자신”을 되찾는 행위이며,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고 근본적인 자기 개혁’을 시도할 방식으로서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대체할 수많은 방식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달리기는 인간의 원천임을 재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달리기는 달리는 몇 시간동안에 끊임없이 자기와의 대화를 주고받는 소통과 성찰이라는 부수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피셔>장관은 이를 강조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시간과 명상효과”가 마라톤이며, 이를 즐기면서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요쉬카 피셔>가 이 책을 쓴 계기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의 욕심을 조금씩 버리면서 점점 자신을 더 알게 되는 것”을 알려준, 이 ”마라톤”, 즉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장거리 달리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그가 보다 성의 있고 깊이 있는 글을 써 내기 위하여 스스로를 던져 “몸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몸으로 무엇인가를 쓰기 위하여” 유럽과 미국에 나가 살면서 이방인으로서의 불편한 입장과 그로 인해 겪는 일들을 피하지 않고 자초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써낸 명작들은 이런 생활체험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그가 몸으로 해내는 마라톤마저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는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는 곧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몸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몸으로 쓰기 위하여 스스로 고달프고 슬픈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난 <하루키>가 보스톤마라톤 대회 코스를 달리면서 30km를 지나면 나타나는 ‘심장 터지는 언덕’을 지나는 소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에 크게 놀랐다.      


언덕을 넘는 것 자체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지만, 언덕을 넘고 난 뒤가 괴로운 것이다. 여기만 잘 넘으면 그 다음에는 그리 대단한 언덕이 없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언덕을 넘는다. 그러고 나서 한숨 돌리고 이제부터는 평탄한 길이니 보스턴 중심가까지 곧장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피로가 와장창하고 들이 닥치는 것이다. 

이 피로에 지친 느낌은 사람에 비유하면 40세의 액년(음양원리에 의해 사람의 일생 중 재난을 당하게 되는 해를 말하며, 40세를 액년으로 이해한 듯하다-저자 주)에 비슷하다. 20대, 30대를 힘겹게 넘기고 겨우 한숨을 돌리는 가 싶을 무렵에, 느닷없이 밀려오는 그런 피폐한 느낌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슬픈 외국어』, p32)     


우선, 40대를 이리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하루키>가 유일하지 않은가 싶어서 놀라웠다. 대부분 40대를 떠올리면, 뻔해 보이는 불혹不惑 운운하며 수천 년 전의 공자님을 거론한다. ‘고작 40세인데 불혹이 웬 말이냐’고 위대하신 공자님께 대들다시피 불평과 투정을 할 뿐인데, 아! 역시 이 사람은 다르구나. 나는 <하루키>가 여유 있게 이처럼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아니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 것에도 놀라고 있었다. 또한 <하루키>도 이 무렵 마흔을 막 넘긴 때였으니 얼마나 적절하게 자신을 승화시키고 있는가에 감탄하였다. 

    

<하루키>는 그간 여러 번에 걸쳐 미국 뉴욕에 와서 지내며 자신의 생애의 역작을 써 내고 있었는데,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잘 나가는 소설가의 화려한 삶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과정은 그 만의 진지하고 고통스런 성찰과 감내의 시기였던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마라톤을 통해, 어느 정도는 자신을 통해 내 비추고 있었고 또 그것을 글을 통해 기록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마라톤을 유지하고 있다. 때론 고통스런 고행 같기도 하고, 억지로 받은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처럼 여기기도 한다. 참가 횟수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풀코스를 백 오십여 차례, 100km를 포함한 울트라 마라톤을 10여회 이상 완주하며 나와의 대화를 끈기있게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숱한 도전과 장애를 어쩌면 이런 과정 덕분에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라톤은 내게는 <하루키>나 <요셔> 장관이 이해하고 감내하였던 것처럼 여러 이유들을 소중히 하면서도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에서의 한 부분이며, 그 과정에서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때론 나를 다그치고 비난하고 처절한 반성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또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던지기도 하는 소통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결국은 마라톤은 지금까지 내가 나와 행한 육체적. 정신적 소통과정이었으니, 그를 한 번씩 해내고 나면 언제나 홀가분하고 어떤 욕망의 터널을 흔쾌히 빠져나온 듯 한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앞으로도 그를 벗어날 이유가 없고,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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