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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Oct 04. 2024

10년만의 그 페이소스를 위해

내 삶의 안쪽_8.

<10년 만의-그 페이소스(pathos)를 위해>

           

1995년이니,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다. 세월의 무상함도 그렇고,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이 이리 빠르고 덧없다.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야 더욱 절실하고 적절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나는 서른 후반 무렵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는 적응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중추단계로 접어들 시점이었으니, 다소 여유 있고 넉넉한 심정으로 세상의 일들이나 대상을 대할 수 있을 나이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그런 상태를 회피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포즈(pose)를 취하고 있었던 듯하다. 적당하게 포기하고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공고히 하면서 자신의 삶의 형식이나 실상을 굳혀가려는 태도가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도 될 나이쯤이었던 내가, 애쓰듯이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내가 속했던 사업부에서 사업부장의 제안으로 사업부 전체 구성원들의 글을 한 편씩 제출하게 하여 책을 내고자 하였었다. 회사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만하고 하드hard하게 아니 건조하게dry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이나 문화적 취향을 실현할 기회조차 없는 곳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광고회사로서 다소 자유롭고 활기차면서 창의적인 조직의 분위기나 특성이 있을 수 있으니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기도 한 제안이며 계획이었다. 물론 무관심하거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이것도 일의 연장선으로 보는 구성원들도 다수 있었을 테지만, 어느 정도는 뜻밖에 흥미를 끌만한 일이었다. 회사생활의 본업을 진행하는 것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지만,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책의 출간을 모두가 진행하는 셈이었기 때문에 그간 글 쓰는 것에 낯설거나 어색할 수 있었을 직원들은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겠지만, 회사 전체로 봐서는 특별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때 나는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쪽으로 알려져 있었던지, 그 책을 진행하는 실무팀을 구성할 때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아 그 일을 관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나이와 직급이 제일 많고 높았으므로 권한도 특권도 없고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행히 순조롭게 일은 진행되었고, 사업부에 소속된 구성원 83명 모두가 1편씩의 작품을 제출하였으며, 사업부장의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와 출판계약까지 맺으며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성공리에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조직의 생리와 특성을 잘 알고 있으니 거부하거나 반대의사를 낼 수 없다는, 이미 알고 있는 바도 있지만 한편으론 재미있어 하면서 출판된 책에 자신의 글이 실리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도 아마츄어(amateur) 입장에서 간혹 글을 쓰고는 있지만, 내가 남들보다 나은 문력이나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매우 신경을 쓰며 나의 몫의 글을 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그만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어깨에 힘이 들어간 듯,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런 뉘앙스nuance의 글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남들이 보기에 성의를 들였다는 인상은 줄 수 있을 만 하였다. 그러면서 나의 본심이나 당시의 마음상태에 대해 부자연스럽거나 불안한 심정이 어느 정도는 드러나는 듯이 여겨지는 글을 쓰게 되니 은연중에 나의 상황이 노출됨으로 해서, 아니면 나의 덜 성숙한(?) 현 상태를 누군가가 느낄 수도 있도록 전력(戰力)을 알게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마흔을 바라보며, 조직을 위하거나 조직에서 필요한 충실한 조직원, 간부가 되어야 하는 입장임에도 어설픈 감정을 드러내며 나이 값이나 세상의 경륜 수준을 지키지 못한 자의 인상을 줄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나는 상관없이 그 기회에 나의 본래 마음 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거나, 한편으론 그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과거의 기대감을 미련처럼 끌어가고 있는 상태의 애매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노출했기도 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과거 어릴 때의 꿈과 기대이지만 나이를 한참이나 먹고 세상의 쓴 맛 매운 맛 다 겪으면서도 원초적인 부분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이라면 당시 아직도 마흔이 안 되었던 그때의 나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런 태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그 당시 회사에서는 고급 간부의 언저리에 있었지만, 젊은 청춘처럼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남들이 알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앞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골몰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갈등하고 방황하듯 흔들리는 모습이 비춰지고 글에서도 은연중에 나온 것은 아니었을 까? 하고 이 글을 지금 다시금 읽어보면서 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썼던 그 글을 그대로 다시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삼십년 전의 나의 상태를, 확연히 드러낸 것은 아니었지만, 내면에서는 매일 매일이 고민과 갈등이었던 그 때,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내면서도 그 속내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그 글을 다시 읽어 본다. 나는 당시에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 위해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 잊었다고 말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매하거나 그래서 뚜렷한 문제인식과 해법 찾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 올리면서 세월의 간극을 보고자 한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세월이 흘렀건만,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허전하고 답답하고 그래서 허무하다. 물론 더 이상 나를 내 팽개치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나의 문제를 보다 가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견지하면서, 전前 보다는 나에 대해서, 현재의 상태에서도 어떤 것이든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찾도록 할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하게 하고자 하는 중이다.       


    

10년만의 – 그 페이소스를 위해    

      

두 편의 시 이야기     


I. 

십일 년째 제일기획에 다니고 있다.

아직도 그 해 겨울 서투른 행동으로 보영빌딩을 드나들던 기억이 새로운데, 이미 익숙해진 세월의 두께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세월의 길이 동안-사실 ‘10년’에 대한 우리들의 집착은 남다르기도 해서–난 어떤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무엇으로 어떻게 추스르며 지금 이렇게 있는지......


누구에게든 자기 세계 속의 행로가 있다. 죽 늘어진 그것의 길고 긴 이음을 떠올리면, 새삼 수많은 생각 끝에 서게 된다. 김광규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실려 있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는 어쩌면 요즈음 내가 갖고 있는 정서와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제목이 주는 묘한 분위기는, 마치 텔레비전 멜로드라마쯤 또는 그런 유의 주제쯤으로 생각하게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그 흐름 속의 나의 상관성을 생각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많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을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중략)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중략)     


그로부터 18년 오랜 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중략)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바람의 속삭임 귓 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 했고/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다소 서글픈 내용이다. 말하는 내용은 다를지라도 삶의 모양을 느끼기에는 낯설지 않다.

이제 겨우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유난히 서늘했던 지난 10년 전 겨울의 새로움, 그 기대는 이제 마치 김광규가 노래한 느낌 속의 서글픔으로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지난 10여 년간 매달려온 내 직업으로서의 광고와, 그것을 감싸 안고 온 내 삶의 모양과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되비치고 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나에 대한, 나의 미래에 대한 애정과, 그간 쌓으려 애썼던 많은 꿈들에 대한 나의 노력의 결과는 그저 쌓다가 무너져 버린 성(城)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II. 

그의 또 다른 시 「늦깎이」는 구체적으로 내세우는 메시지는 조금 다르지만, 나의 현재를 보는 데 무관하지 않다. 늦깎이를 그런 대로 희망적인 인물로 보는 것은 내 일방적인 단정일까? 인생은 여전히 장기적 게임이고–승부를 연상하며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끼지만-어쨌든 그 싸움에서 이기거나 살아남아야 한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는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지극히 거리를 둔 냉소적인 그 무엇일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일엔 김광규의 시선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일도 많다. 누구에게나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번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몰두해야 할 것이 있다면, 늦깎이가 갖고 있는 끈기와 인내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광규의 시는 좀 적나라한 느낌이다. 어차피 세상은 서로 다른 것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이 잘 조화되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하므로”하는 패배적 정서가 아닌, 있을 수 있는 것들을 인정하고 그것의 내재된 질서를 좇는 현명함(?)도 필요할 것이다.


“ …… 인생은 때론 그런 것이지/하지만 앞으로 달라질 거야 ……”하는 체념한, 그러나 초월적 기대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언제나 달라지며 그대로 있는/역사는 어차피 이긴 사람의 편/그러나 진 쪽의 수효는 항상 더 많았지/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이대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고/나는 요즘서야 생각한다.        

  

늘 시작과 끝은 있지만, 시작의 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닐 터이다. 다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신과 삶에 대한 애정은 어떤 모습으로든 스스로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어야 하리라.    


      

광고에 대해     


광고는 어려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여전히 잘 모르는 대상이고 시간이 좀 더 흐른다 해도 그러할 것 같다. 감히 아는 체하고 그 ‘체’를 가지고 직업으로 밥을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그럼에도 그 ‘아는 체’는 늘 나를 표면에 내세우게 하는 어리석은 무기임을 부정할 순 없다. 직업의 전문성, 전문가 운운하며 지내온 것을 반성하며, 여기 고해하는 심정을 토로하고자 한다. 따라서 광고에 대해선 얘기할 것이 별로 없다. 


다음 두 가지는 내가 지침처럼 여기는 광고에 대한 생각이며 화두가 될 것 같다. 화두거리가 되기엔 지나치게 개인적인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I. 

광고는 쉬운 것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든지 쉽게 다가서고 이해되는 것이어야 한다. 광고란 정확한 정보전달이라는, 목적이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의 한 표현이므로 또한 상대가 따로 정해진다는 측면에서 무턱대고 쉬워야 한다는 말이 합당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광고는 쉽게, 편안하게 그 뜻이 전달되어야 한다. 


이것이 광고를 어렵게 만든다. 광고하는 사람의 머리를 쉬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쉽고도 명확하게 전달하게 위해 광고인들의 기질이 숨겨지고 인내되어지고 그래서 가장 독특한 개성이 가장 일반화된 형태로 재구성되어 산출되므로 이것이 광고를 어렵게 하는 것이리라. 무엇이든 몰두하노라면 대가가 있게 마련인데, 광고에 관련된 사람에게 지적으로, 개인적 몫으로 돌아오는 대가란 쉽지가 않다. 쉽게 만들기 위해 희생(?)하는 스스로의 고통과 고뇌가 또한 그 대가의 몫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지적 작업에 속하는-광고, 광고회사를 얘기할 때 창조, 창의를 가장 먼저 떠 올린다는 것을 상기하면-일을 하는 사람에겐 그것이 표현되어져야 하고 그것이 잘 될 때 자기 만족이 생겨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의 누적을 통해 자기 세계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 광고하는 사람은 그 부분과는 거리가 있다. 지적 절제, 자기 정체성의 객관화, 일정한 태도의 유지-이러한 말들을 떠올릴 때 광고의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광고는 쉬워야 하고 쉬운 것이기 때문에 광고가 어렵고, 광고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뇌와 고통이, 그들의 흰머리와 주름살이 값져 보일 수도 있다는 자기 합리화를 해 본다.           


II. 

광고는 왜 하는가. 광고를 하는 이유를 멋스럽게 표현해 볼 수는 없을까.

이미 누군가가 쓴 듯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정의한다면 얘깃거리가 될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무언가를 위해. 물론 지나치게 비화한 느낌이다. 그러나 ‘소중함’을 위해 몰두할 열정을 떠올린다면,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 줄, 말해 줄 메시지를 찾는 작업, 그 특별성과 함께 모두에게 열려진 공감의 의미를 떠올리고 싶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몇 가지 생각   

  

I. 早老(조로)

난 새치가 많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기 시작했다. 아마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나는 것이긴 했어도, 그때 난 그것이 좀 싫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든 별로 내색 안 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것이 보여지는 것이 쑥스럽고 아무튼 나를 웅크리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고, 꽤나 많은 새치를 가진 젊은 오빠가 되었다. 

‘하긴 나잇살도 적잖이 먹긴 했다.’ 흰머리의 상징은 나이 듦, 늙음과 다름 아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여 생기는 흰머리 운운은, 재치를 곁들인 유머로 생각하는 편이 그런 대로 유익할 것이다.

 

부쩍이나 나이 듦에 걱정이 는다. ‘늙은 척하지 마라’고 은근히 경고하는 시인의 소리가 크게 들려서만은 아니다. 세대차에 대한 거리감을 걱정하거나 안타까워서가 아니고, 젊다는 것이 부러워서만도 아니다. 아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쉽게, 지금의, 현재의 긴장이 느슨해져 가는 것에 대해서 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가야 할 곳이 먼 사람에게 나이 듦이 주는 부정적인 부분은 좌절감을 수반하는 충격적 인식인 셈이다.  

        

II. 성급함

지금도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다니던 기억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럴 것이다. 혹은 그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된 것에 기분 나빠질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마주치기도 하고, 일부러 만나기도 하는 그 때의 친구들, 참 다정한 모습들이다. 무리 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곳이 어디가 되든 가 보았던 지난날의 기억…….

 ‘추억은 아름다워라’인가? 산의 이름을 생각해 내면 그 때의 일들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여유로웠다. 하루 거리면 하루에, 그 이상이면 이틀이든 사흘이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웠고, 그곳에서 지낸 한가로움이란……. 지금, 산에 오르는 일은 중단되었다. 아마 이유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이며, 여유로움 또한 그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서두르는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에 쫓기는 생활 리듬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져서, 오히려 느긋하고 여유 만만한 모습이 이질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어떤 일이든 숙성되고, 무르익기 위해 필요한 절대의 기다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수동적이고 나태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보다 더한 완성을 위한 자연스런 여유의 다른 표현일 것이고 그러한 것이 생활 속에서든, 인생에서든, 잘 배어 나오게 될 때 우리는 좀더 큰 무언가를 보게 될 것만 같다. 초조해지고 성급해지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과 불안감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 틀리지 않다면 우린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 때문에 안달해야만 하는가. 안달할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의 생리를 떠올려야 할지 모른다. 광고 뿐 아니라 살아가는 일엔 꼭 필요한 완급이 있다. 그 완급을 잘 바라보고 다룰 줄 아는 관조의 미학이 그립다.           


III. 짝사랑

나는 유난히 짝사랑에 강했던 것 같다. 무엇에건 대상으로서의 상대는 늘 거리가 유지되었다. 그것은 사물의 위상을, 존재의 살아있음을 관찰하는 데는 유익했으나, 늘 가슴 졸이는 안타까움과 고통을 희생물로 바쳐야 했다. 아마 그 거리감의 유지는 나름대로 상기한 희생의 대가였으므로 그만큼 가치가 실리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 쉽지 않았을 거리감 유지를 통해 나의 존재를 정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랑하는 상대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객관성이 사람 사랑법을 그만큼 몸으로 체득할 수 없게 한 셈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타입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식의 인생, 자기만의 미래, 자기답게 사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짝사랑이었든, 온몸으로 사랑했든 자기식의 방법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창조적으로 사는 일, 이 일을 유독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차지할 수는 없겠으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요하게 매달릴 일이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그 근원들과 공존하면서, 그 근원들을 사유적으로가 아닌 구체적으로 매달림으로써 명확히 드러나리라고 본다.  

    

당신의 양 어깨를 눌러 꺾고,

당신을 땅바닥 쪽으로 구부러뜨리는

‘시간’의 그 끔찍스런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야만 한다.

그럼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당신 좋으실 대로,

하여간 취하라!     


보들레르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우린 자기식으로 무엇에든 취해 있음으로써 살아있음에 대한 자기 확인과 그에 따른 긴장감을 오래도록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0년’의 단위를 지낸 지금, 아직도 나아가야 할 저 먼 지평의 끝에 어렴풋이 피어나는 맑은 빛의 유혹은 선연하고, 난 취해 살아야 할 순수한 목표물을 너른 세계에서 투망하듯 부지런히 건져 올려야 하리라. 여전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내 주위를 서성이고,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할 나의 또 다른 행보는 나름대로 무언가의 약속을 위해 의미롭게 펼쳐지리라는 믿음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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