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6. 김현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이 질문에 답하려 하면 주저하게 된다. 어떤 학문이든지 출발과 핵심은 간단한 듯하다. 그러나 그 간단한 핵심을 발견하고 정하는 문제 해결은 수월치가 않다. 뭘 알아야 답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간단명료한 질문이 사실은 매우 애매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막연한 질문처럼 여겨진다. 즉 우리는 어떤 질문에 답을 하려면 딱 떨어지는, 맞는(?) 답을 말하고자 하지만 그 답은 질문을 받은 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후에야 알게 된다. 다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려는 의도로 상대에 맞춰 조언을 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인데, 결국 그 자신도 그 답을 찾는 중일 수 있고, 여전히 그 답이 무엇인지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는 중에 질문을 받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오래 전에 자기 자신도 그런 질문을 던지며 상대를 힘겹게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진리와 같은 딱 떨어지는 답은 누구도 찾기 어렵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이고 보면, 이는 인간의 한계이며 궁금증에 대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스무 살 무렵, 그리 절실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지금 생각해도 돌발적이며 성근 질문에 불과하였다. 그 교수님은 당시에 한국문단의 새로운 중추로서 문학비평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러나 불문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국내문학비평계에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던 일단의 신진 학자그룹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한편 상대의 질문의 수준과 의도를 알고 있었을 그 분은 차분히 답을 주기보다는 공부를 우선 해보기를 바랐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하였다. 같은 동료비평가라 할 김현교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먼저 권했고, 그 외에도 서너 권의 책을 더 말해주었는데, 그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순발력 있게 필요할 때마다 인출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번역된 문학이론서들일 텐데, 아마 내 연구실 서가 어딘가에 지금도 그 책들이 있을 것이다. 바슐라르도 말씀한 것 같다. 나는 그때 문학은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나마 문학이 가장 가까운 선택대상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다만 대학을 처음 입학했지만 계속 다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때였고, 여러 가지가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는 괜한 분노를 키우고 있었으며, 모든 것으로 부터 떠나버리고 싶었다. 세상에 나서는 자의 용기로 개척하고 만들어 가려는 강한 욕구조차 없었던, 그저 그런 청년의 모습일 뿐이었다. 나의 내면에서의 갈등이므로 아마 주위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며 그저 내가 보여주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면서 여느 젊은이로서 그저 그런 말수가 적고 숫기도 없어 보이는 보통의 평범한 존재로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이니 신경 쓸 일은 아닌데, 나 역시 그렇게 보는 이런 청년들과 어울려 지내며 나의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 까?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서며 알게 되고 관계 맺게 되는 타자他者들에 대해 그다지 특별하고 매력적인 것을 발견할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무슨 상관이어서 그런 생각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잘 알 수는 없었다.
결국은 나의 문제이다. 나 스스로를 채우지 못하는 허기를 주변의 것들로 부터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기도 했고, 나의 통찰과 용기로 주변의 것들을 헤쳐 나가거나 극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 속으로 들어가려 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 시작이 되어야 할 세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합하고 맞춰가며 어떤 기회를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런 소극적이고 타협적인 사고에 휩싸여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런 기본적 문제 해결인식도 없었던 내가, 혼란과 방황 속에 있었던 내가, 무슨 진지하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문학을 해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만으로도 답변이 어려운데, 실상 이런 흔들리는 정체성의 존재에게 온전한 소통이 이뤄질 리가 없을 것이다. 결국 그 뒤로 그 교수님과는 제대로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잠시 동안 대학 내의 문학회에 나갈 때, 지도교수님이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에는 신입생 때 입학 후 야외에 나가 하루를 자고 오는 행사(MT?)에서 위험하고 쓸데없는 질문으로 교수님들을 당황하게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시고 그 이후로 거리가 멀어져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아무튼 2년 정도 계신 후 다른 학교로 옮기셨고, 그동안 나로서는, 아니 나만이 느낀 것이지만 매우 어색하였고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1학년 내내 학교에 적은 두었지만, 다른 학교를 가고자 입시준비를 따로 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은 얘기 거리도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괜한 나만의 고백이며 넋두리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 교수님이 말씀한 책들을 모두 구하여 틈틈이 읽는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문학이란 포괄적 주제에 대한 관심 수준에서 기본 개념이나 알고 있었을까? 또한 문학텍스트로서 시와 소설을 틈틈이 읽기는 했지만 그 질문에 자신 있고 명쾌하게 답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쓰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시를 끄적거리고 소설을 쓴답시고 그저 앞부분이라 할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조금 써보는 식으로 어설픈 청춘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동안, 아마 십여 년 이상 사정이 있으니 그랬지만, 주로 과거부터 갖고 있으면서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문학관련 책들을 박스에 꾸려서 집의 베란다에 쌓아두고 있다가 풀어서 세상의 공기를 맡게 한 것이 채 몇 년 되지 않는다. 미안하고 말고도 없지만, 새삼 나는 다시 과거로 시간 여행하듯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가, 벌써 수십 년 전에 나온 그 책들을 뒤적여 보고 있다.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김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곽광수 교수의 “바슐라르 연구” 등을 눈에 잘 띄고 쉽게 손이 가는 곳에 꽂아 두었다.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하여 현실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인간정신의 한 양상이다.”로 시작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서문을 읽어 보면서, 그리고 목차에 구성되어 있는 ‘문학의 본질’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라는 짧기도 하고 적당히 길기도 한, 르네 웰렉, 김현, 싸르트르, 리카르두, 유종호 등, 저자들의 아티클article을 보면서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들에 휩싸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이러고 있는가?' '어쩌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