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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Oct 04. 2024

해프닝 또는 기억의 한 토막

내 삶의 안쪽_5. 이기백  “한국사 신록”

이 책은 처음엔 잘 모르고 샀지만 사연까지 있는 책이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책이다. 요즘 같으면 집어 던져버릴 책이지만 그때는 잘 몰랐으며, 그저 한국사를 좀 읽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군대에 가 있던 때에 그 책이 읽고 싶어졌을까? 나의 군대 생활은 책을 읽을 수 있을 만치 시간여유가 있거나 한가한 것도 아니었는데. 오래전 기억이니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책을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친구들 만나 써야 하는 돈을 들이며 까지 구입하였는데, 난 그 책을 산 그날 잃어버렸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다소는 어이없는 상황에서 그 귀한(?) 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휴가를 나올 때쯤 엔 다소 여유가 있었다. 계급도 상병이었고, 군 생활도 2년 가까이 하고 있으니, 꽤 연륜도 쌓였다 할 수 있었다. 첫 휴가를 나왔을 땐, 오히려 마음만 바쁘고 정해진 휴가기간을 제대로 보내질 못했었다. 그때는 만나고 싶다하여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기에 특별한 기억거리를 만들지 못한 채 어설프게 시간을 보내고 말았었다. 다만 나보다 두어 달 늦게 입대한 친구가 강원도 전방부대에 배치 받아 근무 중이었는데, 그 친구를 면회 가서 하루 밤을 같이 자고 온 것이 그나마 특별히 한 일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휴가를 나와서는 보다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유롭게 보냈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대학재학 중에 군대를 간 것이었는데, 대학생활 중에 활동했던 동아리에도 가보고 싶었다. 물론 열심히 동아리활동에 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회원들이 대부분 선배들이었고, 나는 2학년에야 가입을 해서 만나는 기간도 짧았고, 자주 모이는 분위기도 아니었었다. 그랬지만, 환경이 달라지니 또 군대라는 격리된 환경에서 그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보니 대학생 신분의 자유로움과 대학시절의 추억들이 자연스레 떠오른 곤 했었다. 첫 휴가 때는 겨울방학 중인 탓도 있고, 지금처럼 통신환경이 좋은 때도 아니어서 마음대로 연락하고 만나는 환경이 아니었으니 엄두조차 안 내었지만, 이번엔 가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 명뿐인 동기생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학교로 가기 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잠시 종각 근처에 있는 종로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였다. 책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두어 권의 책을 샀었는데, 그 책들 중에는 이기백교수가 지은 "한국사신론"이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그 책을 샀는지는 잘 생각이 나진 않는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역사에 관심은 있었던 것이고 그 책은 꽤 알려진 책이었으니 마침 눈에 띄어 산 것일 것이다. 역사 지식이라 해봐야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리고 입시 준비하느라 배운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그때 배운 공부가 평생을 가다시피 한다. 그러나 입시를 위한 공부로서가 아닌 조금은 더 체계적이고  폭넓게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고, '아놀드 토인비'나 '에리히 카' 등의 책을 읽고자 하였고,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기도 하였었다. 


물론 지금 같으면 이기백이 쓴 그 책은 일부러라도 사지 않았을 텐데, 그때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그저 역사책이니 산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뜻에서 그 책들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학교로 갔었던 기억이 난다. 외대문학회는 학내 유일한 문학청년들의 문학욕구와 창작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자극하는 모임이다. 당시에는 문학에의 관심이 기본적으로 있을 시절임에도 회원들은 얼마 안 되었었다. 고작 한 학년에 두어 명이면 많다고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군대를 간 후 2년이 지난 그때엔 꽤 많은 후배들이 들어와 있었다. 군 입대 전엔 고작 대여섯 명 정도,  많이 모여 봐야 열 명도 안 되는 소수의 인원이, 제대로 토의하고 연구하는 그런 분위기조차 잘 느낄 수 없었던 서클이었는데, 이제는 기본적으로 열 댓 명은 모이는 규모가 큰 모임으로 바뀌어 있었고 처음 본 후배들의 모습도 상대적으로 신세대라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활발하고 싹싹하기 까지 하였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이야기하고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사서 들고 다니던 그 한국사신론을 서클 회의탁자 위에 두었는데, 얼마 후에 보니 없는 것이었다. 잠깐 사이이고 넓지도 않은 방에 또, 아주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던 것도 아니고 칠팔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오고 가며 함께 섞여 있었던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 책이 없어진 것이다. 곧 서클룸을 나와 술이라도 한 잔 하려던 차이기에 책을 챙겨야 하는 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내 친구도 그 자리에 있으니 그 친구를 포함 여럿의 사람들이 그 책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를 못했다. 그 중에서 한 후배 여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그 책을 꽤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얼핏 보았던 나는 그 후배를 의식하고 혹시 그 애가 가져간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들고 온, 새로 샀기에 새 책이며, 그 책을 포함 몇 권의 책이 포장 백에 같이 들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책만 없어진 것이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니 결국 포기하고 다만 의심이 가기에 내 친구에게 따로 내 생각을 전하고 그 후배에게 잘 이야기 해보라는 말만을 했을 뿐이다. 책이 없어진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조금 전까지 그 후배가 그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보았고, 잠시 뒤 자신의 가방에 무언가를 넣는 것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책을 넣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넣은 것을 보았고 얼마 후 그 책을 찾을 때 그 책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묘하게도 생각이 그 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무언가를 넣고 있는 순간을 보고 나는 이유를 모르게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이 상황은 무엇인가? 마치 눈 뜨고 일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때 순간적으로 책이 없어진 것을 목격한 것도 아니니 그 책을 떠올리면서 그 책을 지키려 한 것도 아니었기에 잠시 뒤에 책의 부재를 확인한 것이니 작은 순간의 차이일망정 상황을 돌이키며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의심이 가는 나의 심증은 확고하였고, 그러나 그를 확인하고자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즉 나의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한 시도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의 상황이 내 의심대로 맞다고 해도 문제이고, 틀린다고 해도 문제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어이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 책이 잘 모르는 선배이지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선배가 사가지고 온 책임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멀쩡히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 책을 챙길 생각을 했다는 것과 그 책 주인이 겪게 될 곤란한 결과에는 무심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한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하여,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달리 순간 이 책을 가져가고 싶다는 어떤 생각이 들었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책을 챙긴 그 심리 또한  궁금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무엇으로도 나는 정리하기는 어려웠고 불쾌했고 황당하였다. 또한 잠깐 본 인상이었지만 그 후배에 대한 인상을 좋게 생각하여 좋은 기억으로 관심을 기울이던 중이었는데, 그런 일을 벌인 당사자로 돌변한 것에 몹시 난처하였다. 


아무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찾는다고 한동안 부산을 피었으나 결국 책은 나오지 않았고, 그 학생에 대한 나의 의심스런 시선은 그 후배가 그전보다는 다소 절제한 모습인 것에 더욱 심증을 굳히려는 의지를 다질 뿐이었다. 그리고 어찌해야 하나, 선물했다고 생각해야 하나, 잠시 곤란해 하였지만 결국 포기하였다. 매우 아쉬웠고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에 내 친구를 따로 불러 아까의 상황과 내 뜻을 전했다. 그러나 궁색하였다. 이를 테면 ‘내가 실은 그 책을 가방에 넣는 것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한 것도 아니면서 가방을 뒤져볼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곤란하니 혹시라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잘 이야기 해 보면 좋겠다’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 친구도 상황을 알고 있으니, 그리 하겠다고 하였지만 실제 그렇게 말을 해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중간에서 곤란하니 어쩌면 말도 꺼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흔쾌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기에는 좀 개운치 않았던 해프닝이었다. 


그 이후 복학을 하여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 모임에는 꼬박꼬박 나가서 합평회도 하고, 회식도 하며 그 후배를 계속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심증이고 확실하지도 않은 혐의에 대해 나의 일방적인 의심에 불과한 것임에도 나는 그 심증을 밀어붙이며, 그 후배의 알 수 없는 행동배경과 그 두 모습이 서로 상치가 되니 매우 곤란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였지만 속마음의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 《한국사 신론》은 한권 더 사게 되었고, 그 책을 잘 완독하고 역사를 더 잘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친일 식민주의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민족을 배반한 어용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 나로서는 그 책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싶을 뿐이며, 젊은 시절 뭔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대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시절에 겪은 기억거리의 하나로서 떠올려지는 에피소드episode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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