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11.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영국의 속담이다. 레이스race를 성공하려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담이 우리의 인생에 적용되는 지혜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는 이 속담의 의미를 실제 마라톤을 하면서 절감한다. 내가 처음으로 마라톤에 입문하던 때가 1997년 가을,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춘천마라톤대회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대회가 일반인 즉 아마추어 마라토너를 대상으로 마라톤 대회 참가를 시작한 첫 번째 대회라고 한다. 나는 우연히 신문사의 공고를 보고 신청을 한 것이지만, 그런 배경이 있었다. 하프마라톤 코스에 참가를 하였는데, 하프라고 해도 21.0975km의 거리를 달리는 것이므로 나로서는 엄청 부담스런 거리였다. 또한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니 긴장이 되면서 걱정도 꽤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또한 거리에 대한 감感뿐 아니라 레이스race의 속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능력을 그 거리에 어떻게 빗대어 조절해야 하는지 가늠할 능력도 없었다. 그저 덮어놓고 달리려는 생각뿐이었다. 참가를 위한 준비라고 해야 지난 4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을 3~5km정도 달리면서 연습한 것이 전부였고, 하프코스의 총 거리만큼 한 번에 달려 본적도 없었으니,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자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왠지 마음이 흥분되고 신이 났다. 그때 나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젊은 나이였지만, 당시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의 속마음은 어린 젊은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잔칫집에 온 것처럼 신이 나고 뿌듯하기 까지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었고, 내 인생에 이런 군중이 운집한 행사의 참가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마라톤 코스는 풀코스가 정상이다. 42.195km의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옛날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불리한 상황이라 예상하였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가 이 승전보를 한 병사로 하여금 달리게 하여 고국에 전하도록 하였는데, 그때의 거리가 이쯤 된다는 것이다.(그 병사는 승리 소식을 전하고 곧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한다) 나 역시도 풀코스를 달리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나의 수준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하프코스 조차도 겁이 나고 과연 완주할 수 있을 지를 염려해야 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풀코스는 대회 행사 장소에서 출발하여 예정한 마라톤 코스를 달려서 되돌아오는 것이었고, 하프 참가자들은 반환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출발하여 대회 장소까지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참가자들과 출발 신호에 맞춰 출발하였다. 참가자 수는 거의 2만 여명이나 되었고 하프 참가자도 그 반 이상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많은 사람의 틈에서 함께 달리며 분위기에 젖다 보니 과연 이게 내 페이스pace가 맞는 것인지 분간할 틈도 없이 무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자 달리며 연습할 때 보다는 힘이 더 나는 것 같았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과 대등하게, 어떨 땐 추월하면서 달리는 나를 돌아보니 충만한 감정이 일어 더 열심히 달리도록 자극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리니 한편으론 이미 뭔가를 이룬 듯한 만족감이 들었지만 몸에서는 무리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페이스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생애 처음으로 긴 거리를 달린다는 것과 여기까지라도 달려온 것에 뿌듯한 심정이 되었으나, 완주까지는 아직도 꽤 남아있는데, 서서히 몸에서는 무리하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의 갈등과 다소의 절망감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으나 내 생애를 위한 고통스럽지만 유익한 체험일 수도 있었다. 내가 원한다 하여 자신의 상태와 능력을 고려하거나 조절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결과에 대한 나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학습의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중간에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뿐 만 아니라 완주를 하고자 했으니, 무릎에 통증이 있거나 호흡이 가빠도, 그래서 달릴 수가 없어서 걸을지언정 목표지점인 피니쉬 라인finish line까지 가야 했다. 결국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남들이야 나의 상황을 알 리 없었겠지만 나는 우격다짐하듯 하여 결국 완주를 해 낼 수 있었다. 거의 7~8km의 거리를 이런 상태에서 견디고 극복하는 사투(?)를 벌이며 달린 것이니 내 딴에는 나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고통을 이겨낸 것이다.
잠시 동안이지만 나는 왜 달린 것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달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여 참가한 것인데, 이 고통을 왜 겪어야 했는가하는 후회를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튼 첫 대회의 참가와 완주는 이를 곧 잊게 하였고, 그 성취감은 꽤 오랫동안 나에게 신선한 경험이고 자극제가 되었으며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더 연습에 몰두하고 꾸준하게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마라톤이 마치 생활의 일부인양 즐기게 되었다. 또한 첫 대회에서의 기억을 발판으로 앞으로 벌어질 것을 예상하며 페이스 조절을 하거나 그 이전에 체력적인 준비를 미리 해두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달리는 사람이 경주에서 승리자가 된다는 이 영국 속담은 이렇듯 마라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서도 무수하게 통하는 교훈이다. 굳이 힘들고 인내해야 하는 선택을 안 하면 그만 아닌가 하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또한 약삭빠르고 요령 있게 경쟁이나 힘든 과정을 피하여 빠져 나가면 더 유리하고 성공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설령 요령 있고 남들보다 민첩하게 빠른 길을 찾아 먼저 도달하였다고 해도 이는 정도가 아닐 뿐 아니라 늘 통하는 방식일 수가 없다는 것을 세상을 살아 본 사람이면 곧 알게 되는 사실이다. 또한 어느 분야에서건 뜻을 이루고 보다 의미 있는 성공을 달성한 사람들은 남들의 이런 약고 민첩한 방법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방식을 변화시키거나 남들의 방식을 따라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묵묵히 우직하게 해낼 뿐이며, 그 노력의 결과로 자신만의 성취를 달성하고자 한다. 그들의 방식은 늘 한결 같으며 고집스럽고, 미련하고 우직스럽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 그대로 이다.
오래된 고사성어故事成語에 “마부위침(磨斧爲針)”이란 것이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다. 고대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이 학문공부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지루하고 힘이 드니 공부를 때려 칠 생각으로 스승 몰래 도망쳐 산을 내려오던 중에 어떤 할머니가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어 보니, 바늘을 만들고 있노라고 답하기에 처음엔 기도 안 차니 코웃음을 쳤는데, 그 할머니 말이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어디 있어!”라고 단호히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뜻하는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이처럼 절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도 우직하게 한걸음씩 밀고 나간다면 가능한 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이 터득한 이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실제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편안함과 익숙함을 즐기고 그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풍요롭고 안정된 세상에서는, 첨단기술이 발달한 덕에 인간들을 힘들게 하고 비효율적인 것들은 회피하려는 합리적인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는 시대에는 누구나 대부분하고 있는 마인드이며 정신 상태이다. 오히려 인간은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때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 내기도 하였으니, 오늘날의 이 시대를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의 문명이나 역량이 향상된 것은 악조건이나 최악의 상태에서 그 반대로 변화와 발달이 이루어 졌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를 늘 잊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언제라도 변화하고 있고 오늘의 안정과 편안함이 반드시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내일을 위한 오늘의 대비가 반드시 요구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편안함이나 요령을 생각하며 자만하여 스스로 나태하고 게으르게 처신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21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하여 반석위에 올려놓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이룬 성과에 만족하며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혁신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 생각과 지속하는 힘이 오늘의 《애플》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생전生前인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라 그리고 우직하라
“늘 부족한 듯 원하고, 바보처럼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가 스스로 실천하여 깨우친 메시지이므로 그 진정성이 와 닿는다. 우리는 느리게 가고 남들보다 성과가 적다고 두려워하며 위축되지 말고, 그래서 가는 것을 포기하여 멈추고 그대로 주저앉으려 하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라도 가는 것을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남과 비교하여 형편없이 보잘 것 없는 현재의 나와 나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버리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정한 길을 천천히, 느리게라도 가는 것을 멈추고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그 자리에 도달하여 우뚝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느리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중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우리가 늘 배우고 간직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