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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49.

별 빛(김미경) 초대전, “마음 속 작고 소중한 이야기”

by 강화석

가온 갤러리(인사동 마루1층), 2025 7/23(수)~8/5(화)


인사동 가온갤러리에서 2025년 7월23일(수)부터 8월5일(화)까지 “마음 속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전시주제로, ‘Mom’s Flower garden’을 부제로 한 『별 빛(김미경)』 작가의 초대 개인전이 열렸다. 별빛 작가의 작품들이 환상적인 동화 속 장면 같은, 흐뭇하고 정겨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울림까지 전해주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파꽃’과 ‘고봉밥’을 은유적 대상으로 삼아 그 내면에 흐르는 심상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부제로 “엄마의 꽃밭”이라 보탠 것은 꽤 오래 전부터 그려온 “파꽃”의 조형미학뿐 아니라 “꽃”이 전하는 상징적 은유와 함께, 작가 스스로도 엄마이지만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그리고 지금에도 엄마가 전해주는 “꽃”이나 “식물”을 키우는 정신과 자세로부터 새삼 깨닫고 배운 진리와도 같은 메시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작가의 근원적인 반응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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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에 대한 작가의 미학적 조형작업은 이미 오랜 시간동안 지속하는 중인데, “파꽃”에의 영감이 끼치는 영향력과 그의 확장은 깨달음뿐만 아니라 삶의 놀라운 지혜를 전하는 즐겁고 행복한 내적 소통으로부터 외부로 퍼져가는 놀라운 감화를 작가 스스로 즐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삼 “파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그로부터 터득하게 된, 신비하기도 한 우주적 질서를 창의적 상상력으로 해석하는,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작가의 메시지는 단순한 시도이거나 경쾌한 발상의 소산이라 하기엔 매우 독특하고 자극적인 울림이라 할 만하다.

작가가 일상의 눈으로 보았다면 묻혀버리거나 지나칠 수도 있었을 “파”로부터 발견한 생명의 원리, 생의 고귀한 현상을 통하여 숨겨져 있다시피 한 고결함이나 아름다운 빛을 확인하게 된 것도 그의 심성이나 통찰력에 의한 순박한 내면 덕분이었을 것이다. 즉 ‘파꽃’이 화려하고 현란한 숱한 꽃들 속에서 눈에 띄기에는 지극히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으며 어딘가의 주변에 치우쳐 있는 소외된 존재처럼 여겨지는 까닭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발견하고 그 내막을 찾아내고자한 작가의 독특하고 특별한 시선과 혜안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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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가는 파꽃에 담겨있는 무수한 작은 꽃송이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하면서 그것들을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으로 읽고 이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작은 점으로 인식하면서도 핵심의 원리는 곧 우주의 본질과 닮은 것이라는 통찰의 의미로 전환시켜 놓았으며, 그러한 내적 심상의 결실을 무수한 점으로 단순화하여 화폭에 시각화 한다. 그것은 자기와의 간결하고 명확한 내면의 교류와 공감을 재현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한땀 한땀 찍어내는 작은 표식들이 갖는 완성의 조형미는 크기에 상관없는 무결점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임으로써 보다 확장되고 가시적이 될 거대한 규모의 우주와 질서를 확인시킬 수 있는 흐름을 보여주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것들의 핵심을 보다 더 표현적으로 다채롭게

전개하려는 것은 본질과 현상의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증거 하려는 현실에서의 관점과 보여줌의 대신(代身)인 것이다. 당연하지만 ‘보여 지는 것이 지각되어지는 것’이고 마음속에 믿음으로 품어내는 것이라는 인간의 의식절차의 한 방법인 까닭이기도 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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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파꽃”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간 우리가 “파꽃”에 소홀했던 것에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파꽃의 생애(?)는 눈물겹고 희생적인 고귀함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인 등 문학 작가들이 스스로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며 깨닫게 된 “파꽃”에의 통찰과 각성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밀어 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하략).. (「안도현」 <파꽃> 1연)


안도현 시인이 “파꽃”을 통해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에 비유하고 있는 눈물겨운 은유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꽃은 추운 겨울을 나면서 줄기를 키우고 비로소 꽃을 피운 후 인간을 위한 먹거리와 삶의 양분을 공급한다. 이런 파꽃의 생장(生長)에서 읽을 수 있는 “인내”의 상징에서 안 시인은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발견해 낸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들을 “별똥별 씨앗”이라 비유하면서 자식들을 소중하게 키워내는 동안 한없이 낮은 자리에서 거친 세파와 삶을 버티고 막아내며, 희생하고 고통 받았을 어머니를 재인식하는 것에 깊은 회한의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안 시인은 이렇게 어머니의 고결한 희생을 “파”를 통하여 은유하면서 타인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삶”의 위대함을 읽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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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식과 결을 같이 하는 별빛 작가의 “파꽃”에서 비롯한 모티브motive는 어머니의 희생과 인내로 빚어지는 “별똥별 씨앗”을 최대한 아름답고 소중한 인상으로 담아내고자 심혈을 기울여 그려내면서, 이것의 깊이와 범위를 우주로 까지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이로서 별빛 작가는 파꽃에 담긴 숱한 작은 꽃들을 각각의 생명의 씨를 가진 별똥별인양 그 하나하나를 독립된 ‘별’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소소하고 하찮기도 할 작은 꽃의 씨는 결코 그렇지 않은 고귀하고 위대한 생명의 씨앗이면서 곧 우주에 당당히 존재하는 우주별의 존재로 재탄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사유의 고리를 통해 작가가 시각적인 조형미를 담아, 외부에 가시적으로 재현한 일련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는 보다 화려하고 여유 있으며, 한편 재치와 유머까지 담아 작품화하고 있다. 이전 작품들에서 조금은 더 나아간 인상을 주는 것은 작품들에는 보다 더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을 시도하면서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을 다채롭고도 흥미롭게 구성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려 하는데 있다. 따라서 “Happy Birthday”, “쉬어가도 괜찮아”,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목소리를 한데 어울리게 하면서 “파꽃”으로부터 시작된 내면의 은유가 시각적인 표상을 통해 외연으로 확장되도록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별빛 작가는 “파꽃”을 지속적으로 그리면서 “파꽃‘의 아름다움의 의미가 단지 ”꽃’으로 피어난 조형적 미학이기 보다는 그 내막에 담긴 속내를 탐구할 요량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고봉밥”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예술정신의 저변을 넓혀가고자 한다.

“돌쇠어멈은 커다란 막사발에 조가 반쯤 섞인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을 고봉(高捧)으로 꾹꾹 퍼 담아 부뚜막에 늘어놓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미망”에 나오는 구절에는 “고봉”으로 담은 밥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밥사발에 넘칠 듯 퍼 담은 밥그릇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의미와 상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젊은 축에 드는 세대들은 “고봉으로 담은 밥”에 대한 기억은 고사하고 의미조차 잘 모를 수가 있다. 고봉(高捧)은 “되 또는 말에 수북이 담는 것”이란 사전적인 뜻을 갖고 있거니와, “곡식이나 밥 따위를 그릇 위까지 수북하게 높이 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봉밥”은 예전에는 “밥심”을 강조하면서 상대방에게 정(情)을 전하는 인심의 표시이며, 마음으로부터의 사랑의 크기를 재는 척도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별빛 작가는 어린 손녀에게 고봉밥을 늘 챙겨주시던 할머니의 은근하면서도 지극한 사랑의 표현을 당시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아낌없는 사랑의 메시지임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몰랐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고봉밥에 담긴 할머니의 넉넉한 사랑을 기억하는 작가는 이를 실제로 교감하기 위한 성찰에 적절한 단서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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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밥이 주는 시각적 형태가 혹시라도 낯설면서도 복고적 정서를 자극하는 시각적 오브제objet로 선택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그간 지속해온 일련의 작업과정을 비추어 볼 때 매우 진지하면서 깊은 통찰의 의미를 담고자 하였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미 “파꽃”을 반복적이거나 다양한 변용을 추구하면서 작품으로 시각적 재현을 해온 과정을 볼 때 그는 올곧게 그리고 깊이 있는 탐구의 자세를 견지해오고 있는 중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그와 더불어 이러한 노력들은 단지 시각적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에 담긴 정신과 정서를 한데 어우르며 새롭게 여겨질 시도를 제안하면서 스스로 즐거움의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며 하나”라고 했듯이 고봉밥의 모양과 그 안에 담긴 정성이 서로 다르지 않다면 그 고봉밥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의 크기를 제한된 크기의 그릇에 담긴 것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은유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 크기는 한정없는 것이기도 하며, 따라서 그동안 작가가 파꽃을 통해 우주를 떠올렸듯이 동일한 맥락으로 고봉밥의 크기와 마음의 크기를 잣대삼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북이 담은 고봉밥의 형태와 이를 감성적이면서 아름답게 시각화하여 이뤄내는 추가적인 상징과 은유는 겉으로 드러난 것에 한정하지 않고 작가 자신의 마음 밭에 뿌리고 가꾼 다양한 것들, 그것이 사랑, 행복, 위로, 배려, 보살핌, 안도 등등 인간의 여러 가지 정서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은근하고 정겹게 나아가 함께 서로 어울리면서 그 무엇에라도 맞추고 합쳐지게 하면서 내면에 내재한 감정의 교환을 확인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별빛 작가는 ‘파꽃’과 ‘고봉밥’이라는 일상적 삶의 오브제를 선택하여 독창적인 상징화를 바탕으로 그 내면에 담겨있는 심오하고 견고한 생명의 가치와 고결한 삶의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였다. 텃밭의 한 쪽에 수더분하게 자라나는 “파”와 그가 피워내는 “꽃”에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화려하고 고귀해 보이는 숱하게 많은 꽃들 속에서 “파꽃”은 과연 꽃 축에나 들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작가는 “위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옛날이야기”, “할머니의 사랑”, “동화이야기”, “따뜻한 추억이나 기억” 등을 “파꽃”을 통하여 들려주거나 일깨워 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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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은유는 사소하고 감춰져 눈에 잘 안 띄는 것에 대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생기(生氣)를 의미하는 빛이나 기운(氣運)은 “광자(光子)”라는 ‘미립자(微粒子)’로 이루어진 것이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이것들은, 그러나 전체를 이루는 일부이면서 그 자체인 것이다. 우주의 경우에도 전체이면서 일부인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를 확인시키는 “살아있음”은 이런 구성의 원리와 구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기의 고유한 감성으로 세계를, 우주를 바라보면서 자기 존재와 더불어 인간의 존재와 삶이라는 과정의 ‘사명’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봉밥’ 역시 무관하지 않게 동일한 사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니, 이는 창의적인 발상이면서 당연시 된 본연의 질서를 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에서도, 특히 보기만 해도 즐겁고 흐뭇한 양식을 선택하여 순수하고도 꾸밈없이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니 그것을 바라보며 반응하는 정도가 더욱 더 밝고 가슴 뛰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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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빛의 광자는 점 속에, 사물 속에, 인간의 삶 속에 들어가 채우는 될 것이므로, 이런 구조를 시각화함으로서 우리는 앎이라는 변화를 경험하면서 놀라운 통찰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듯한데, 별빛 작가가 의도한 또 다른 필살기인 것 같아 매우 놀랍다고 생각한다.

삶은 어느 정도는 고달프고 힘겹기도 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나 소유에 대한 지나친 욕구가 부각되기도 하며 인간 세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가 다반사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외롭고 쓸쓸해하거나 고되게 여기며 낙심하기도 한다. 이런 때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의 등장을 원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별빛 작가는 어쩌면 스스로 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인가도 싶다.

작고 소박하지만, 또한 강렬하지는 않지만 본질의 내막을 이해하고 소홀히 할 수 없는 깊은 통찰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 함께 공유하고 교감하려는 별빛 작가의 시도는 마치 거대한 뿌리가 내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듯이 우주적 질서를 정신적으로 수용하고 그를 느낄 수 있을 듯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려는 일련의 작업들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런 흐름과 분위기에서 사람들의 내면으로 스며들고 있으며, 상호적인 교감으로 서로 충만한 기운이 차오르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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