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마스크도 가리지 못한 아버지의 손자사랑

by 강현숙


요즘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조심스러운 건 물론이고, 친한 사람들이나 가족까지도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에 따라 밀접한 접촉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정아버지는 80 중반의 연세에 손자를 보셨다. 그것도 큰아들에게서 본 손자가 아니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기만 해서 장가도 못 갈 줄 알았던 둘째 아들에게서 얻은 손자이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보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휴대폰 영상 통화와 카톡으로 보내오는 동영상을 통해서 손자의 재롱을 보실 수는 있었지만, 그럴수록 아버지의 손주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착한 아버지의 아들은 그 마음을 모른 체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가에 방문을 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 두 분은 마스크를 쓰고 아들과 손자를 맞이 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보고 싶으셨는지 손자가 들어가자마자 안고 얼르고 하셨는데 두어 시간 동안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들은 집에서는 마스크 안 쓰셔도 된다고 말했지만 끝내 손자가 돌아갈 때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으셨다며 답답하셨을 거라고 말한다. 금쪽같은 손자에게 혹시라도 나쁜 균이 옮아 갈까 봐 불편함을 참으셨던 것이 분명하다.


86세가 되신 아버지께는 아들 셋, 딸 셋이 있는데 장남인 아버지의 큰아들은 결혼을 하여 내리 딸만 셋을 낳고 단산을 하였다. 세명의 딸들도 모두 출가하여 아들딸 손주들 낳고 잘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늦깎이 결혼으로 이제 돌 지난 아들을 두었고, 셋째 아들은 적령기가 지났지만 아직 미혼이다. 큰아들의 딸들은 어느새 장성하여 벌써 큰 손녀와 둘째 손녀는 출가를 하여 초등 입학 적령기의 증손녀까지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연세 많으신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술 한잔 드시면, “우리 집은 대가 끊겼어, 나 죽으면 누가 제사 밥 차려 줄 거야? 죽으면 눈이나 감을 라나 몰러, 조상님들은 무슨 낯으로 뵌다냐?” 하시는 말씀이 단골 메뉴였다. 그럴 때마다 큰아들은 염치없다며 자리를 피하고 둘째, 셋째 아들도 아직 미혼인 자신들이 죄인인 듯하다며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명절이라고 한 번씩 모이면 아버지의 한탄스러운 말씀에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는데, 재작년에 드디어 둘째 아들이 색시감 이라며 참한 아가씨를 대동하고 추석을 지내러 왔다. 정말 착하고 말수도 적어 부모님 마음에 아주 흡족하셨던 모양이다. 서둘러 혼인을 시켰는데 이 이쁜 며느리가 또다시 이쁜 짓을 하였다. 결혼 1년 만에 그야말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출산한 것이다. 손자를 보신 아버지는 그 기쁨을 참지 못하시고 틈틈이 자식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둔 통장을 털어 둘째 아들에게 아들 낳은 선물 이라며 자동차를 사주셨다. 웃을 일이 없던 집안에 화사한 웃음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몸져누우셨는데, '대를 끊어놓고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어 죽지도 못하겠다' 하시더니 이제 손자를 보시고는 돌아가시라도 하면 어쩌나 가족들 모두 노심초사했었다. 다행히도 며칠 앓으시다가 회복되셔서 지금은 노익장을 보여 주고 계시다.


큰아들이 장가갈 때 든든한 손자를 기대하셨다가 손녀만 내리 셋을 낳으니 더 낳으라고도 못하고 눈치만 보셨었다. 시간이 흘러 큰아들 내외가 아기 낳을 나이를 지나버리니 체념하시고 둘째, 셋째 아들들이 결혼해서, 큰아들에게서 보지 못한 손자를 안겨주기를 원하셨는데, 이 두 아들들은 마흔이 다가오도록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전통시대의 사고를 갖고 계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상심하고 계셨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손자! 보수적인 아버지께 손자의 존재는 집안의 대를 잇고 아버지 사후, 아버지와 조상님들께 젯밥을 올리고 예를 다해 줄 기둥 같은 존재였다. 그런 손자에게 혹시라도 해가 될 바이러스라도 옮기면 아버지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을 터이니 마스크 쓰고 두 시간 아니라 두 달, 아니 20년 인들 불편하다는 생각이 드셨을까?

‘내리사랑’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아버지의 손자 사랑 같은 거라면 너무나 부담스러운 단어이다. 그러나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이 손자 손녀에게 생기는 건 틀림없는듯하다.


옆집 아주머니는 몇 년 전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며느리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말에 아이는 절대 맡길 생각도 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기를 업고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업은 체 장보기를 하고는 하였다. 손주는 맡기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다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결혼 1년 만에 손자가 생겼고, 육아 휴직을 끝낸 며느리는 맡길 곳이 없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하였단다. 잘했다고 말해놓고 시내 나간 길에 손자 얼굴이나 잠깐 보고 오려고 들렸는데, 마침 어린이집 교사의 품에서 우유를 먹으며 칭얼대고 있는 손자를 보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와 상의하여 당장 손자를 데려 오도록 하였고, 자신의 취미생활도 여가도 모두 포기하였다고 한다.

다음 해엔 돌 지난 손자는 유모차에 태우고 백일 지난 손녀를 등에 업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벌써 동생을 봤나 봐요?" 하니까 이왕 키워주는 김에 한꺼번에 같이 키워주고 자기 시간을 갖으려고 낳으려면 얼른 하나를 더 낳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손주들 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리사랑'이라는 본능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게도 남매가 있는데 결혼 적령기를 살짝 지나고 있다. 둘째인 딸이 내년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이다. 아들딸이 결혼해서 손주들 낳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손주들 키워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식 키우느라 젊음을 다 바치고 이제 겨우 찾은 나만의 소중한 시간들을 다시 손주들 보살피는데 할애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절대로! 손주는 돌봐주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막상 손주가 생기면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돌봐주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그것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발현하는 '내리사랑의 본능'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내 아들딸이 자식을 낳으면 나 역시 그 아이를 '내 자식보다 더 이쁜 손주'라고 너스레를 떨며 살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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