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1일, 영업장에서 아침 장사 준비를 하다가 며칠째 팔리지 않는 소라 몇 개를 삶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두통과 다리가 풀리는 느낌에 쓰러질 것 같았다. 순간, 소라엔 독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좀 전에 소라의 독을 제거하지 않고 먹었던 생각이 났다.
걱정이 된 나는 바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해독제 주사 한대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병원에선 ‘독극물’이라는 표현을 하며 독극물에 대한 치료 담당자가 없으니 얼른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해독제 주사 한 대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불안해 지기 시작 했다. 첫 병원까지는 운전을 하고 갔지만 병원을 옮기기 위해 다시 운전을 하려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사이 소라의 독이 내 몸 곳곳을 장악해 버린 것인지, 병원에서 자기네는 손 쓸 수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어서 인지, 알수없는 공포까지 몸을 감싸고 있다.
급히 달려온 남편을 보니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함께 대학병원으로 가면서 유언을 했다.
"나 죽으면 깨끗하고 따듯한 바다에 뿌려줘, 애들 결혼할때 까지는 재혼 하면 안돼, 보험은 어느어느 회사에 몇몇 들어있고, 통장은 여기저기 은행에 개설되어 있어, 그리고 자기 모르게 땅 조금 사놓았고, 인감도장은 허름한 빨간색 프라스틱 도장이야, 내가 갚아야 할것은 회사미수금만 있고, 받아야 할것은 컴퓨터 엑셀에 월별로 정리되어 있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정리를 하려니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너무 앞만 보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혼자 남겨질 남편을 생각하니, 그렇게 웬수같이 느껴지던 감정은 어디가고 불쌍하다는 생각과 미안하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또 눈물이났다.
도착한 응급실에는 이전 병원의 연락을 받은 '독극물 담당자?'가 대기 하고 있었다. 곧바로 각종 검사를 하였다. 버리기 아깝다고 먹은 소라 몇개가 이런 소동을 일으킬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팔수 없는건 제발 좀 버리라며 잔소리하던 남편의 말을 듣지않은 것이 그 순간만큼은 후회가 되었다. 팔뚝에 꽂은 주사바늘 속으로 이런저런 약들을 넣어주는데, 눈이 감기며 그렇게 죽는건가 싶은 생각에 두려워 남편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가벼운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웃음이 나오는데 참는 표정으로 곁을 지키던 남편은 두통을 호소하는 내 이마에 손을대며 의사에게 보고한다. 다가온 의사는 좀 있으면 두통도 사라질 거라며 안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소라 독으로 사망한 보고는 아직 없었다고 말한다. 의사의 말대로 점점 두통도 사라지고 다리에 힘도 붙었다. 집에 가도 될 듯 싶은데 혹시 모르니 하루 밤만 지켜보자고 하여 오랜만에 푹 쉬자는 마음으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컨디션이 좋아지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응급실의 다른 모습들이 보이고 커튼 넘어의 소리들이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제소리 들리세요?”
“할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눈 좀 떠 보세요”
“으음~으음~ 아이고~ 아이고~”
할아버지를 모셔온 아들과 간호사의 급박한 목소리, 그리고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노인의 신음소리다.
그뿐이 아니고 응급실 곳곳에서 환자의 신음소리와 가족들의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 아프다고~~” 간호사에게 소리치며 처치를 거부하는 목소리도 있고, 할머니 환자에게 마음 편안히 하시라는 기도를 올리는 소리도 들렸다. 온몸에 각종 관들을 연결하고 모니터에 높고 낮은 굴곡을 그리며 빨간불 파란불이 깜박이는, 뚜~뚜~ 하는 소리만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환자와, 수심가득한 얼굴로 들어와 바로 침상에 눕고 검사를 진행하는 임산부의 모습도 보였다. 생사(生死)의 경계에 선 현장이 바로 그곳이었다.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었지만 그때의 죽을 고비 앞에서 느꼈던 공포보다 더욱 큰 공포감이 몰려왔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응급실 환자들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와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에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았다. 금식과 함께 하루를 입원했다 가라는 의사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고 남편을 채근하여 퇴원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병원밖에 나오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 들러서 남편과 둘이 3인분을 시켰다. 점심을 굶었으니 잃어버린 한끼를 절반이라도 찾아 먹자는 심리였다. 바로 30분 전까지도 금식이라며 물외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여 포기했던 저녁을 찾아먹으니 행복이 멀리 있지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이 그토록 행복한 일인 줄 절실하게 느꼈다. 매일 산소마시듯, 느낌 없이 먹고 마시던 일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잘못될까 봐 곁에서 자리 지키며 걱정해 주었던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느꼈던 불안함, 응급실에서 보았던 상황들, 그곳 침상에 환자복 차림으로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의 시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결코 두텁지 않다는 걸 느꼈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 내 삶의 편린들을 꺼내본다.
내가 죽는다면 날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심히 살았노라고 자찬해 보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이아닐까? 내 작은 힘이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나 자신을 위해서 해준것은 무엇이었을까? 남편과 아이들이 먹고남은 음식을 먹고, 팔다가 남은 재료들이 아깝다고 반찬 해 먹고, 내 옷이 필요할때면 홈쇼핑에서 몇셋트씩 묶어서 주는 싸구려 옷을 사입고, 어느 식당에 그것이 먹고싶다는 말에, 돈 아낀다며 재료사다 허리가 아프도록 만들어 준 음식을 한술뜨고 안먹는 남편이 미워서 싸우고, 일주일에 하루라도 같이 쉬자는 남편말을 무시하고 난 안쉬어도 좋으니 당신이나 쉬고 싶을때 쉬라며 억척을 부린일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응급실에 실려와서 삶의 경계를 넘어설지도 모를 인생을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사는것이 맞는건지 답을 구하지도 못했다. 누군가를 보면서 "너 왜 그러고 살아?" 라고 물었던 말들이 나를 향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만 남아있다.
PS: 나중에 안 일이지만 소라의 독은 원래 두 시간쯤 푹 자고 나면 저절로 해독된다고 한다. 처음 겪었던 일이라 곧 죽을 것 같은 불안함에 어수선을 떨었던 것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또한 유언이라며 숨겨둔 비상금과 땅 사놓은것까지 밝혀버린것은 뒤돌릴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