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되지 않은 010~ 번호였다. 어쩌면 새로운 고객이 물건 때문에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물건도 다 빠진 시간이고, 얼른 한숨 자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어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이라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먼저 '오빠랑 거래했던 곳'이라고 밝힌 상대는 책을 들고 오면 사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순간 어떤 상황인지 선뜻 파악하지 못하고 "책이요? 그때 그 안내양이요?" 하고 묻는 내게 상대는 "네 솔직하고 소박한듯 하면서도 꿈을 이루며 사는 이야기에 감동적 이었는데 그 작가가 강 사장님(이번에 돌아가신 우리 오빠)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무 반가워서 사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했다. 갑자기 마음속으로 부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머나 제가 더 감동적 이예요.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합니다" 하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시장에 자주 왔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며 단박에 작가가 노은시장 상인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오빠의 미수와 계산서 발행 관계로 나와 통화를 하면서 저장해 둔 번호가 카톡에 자동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등록된 카톡의 내 프로필에 올려놓은 책 소개를 보았다는 것이다.
나 하고는 통화 몇 번 한 것 말고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거래했으나 갑자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그 사람의 동생이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라 생각하니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반가웠다고 했다. 그래서 출근 하자마자 전화를 한 것이라며 시장에 책 가지고 올 테니 사인을 해달라는 내용 이었다.
가슴이 벅차다.
이렇게 행복한 전화를 받은 것이 내 생애 몇 번이나 있었는지 얼른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열개도 꼽히지 않는다. (설마 열번도 없었지는 않았겠지만 갑자기 떠오르지가 않았다.)
오히려 요즘엔 내가 낸 책이 생각만큼 인기가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의기소침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책을 스스로 사서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그 작가를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나를 충분히 행복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책을 내놓고 날 아는 분들만 한 권씩 사 주신 거로 생각했었다. 판매부수가 처음에는 막 올라가더니 어느 날부터는 1권, 2권 그것이 다였다. 며칠동안은 한권도 팔리지 않는 날도 있다. 1000권을 팔려면 얼마나 걸릴지 계산도 하기 싫은 상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분이 내 책을 사주셨고, 참 좋다는 느낌으로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편하게 사는 이야기 도란도란 들려주듯이 쓴 책이라서 너무 좋다고 했다.
"사인을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라고 말하니 "정말요?"하며 뛸 듯이 기뻐하는 목소리에 내 행복의 게이지는 순식간에 치솟아 버리고 말았다.
다시 용기를 낼 것이다.
내 책을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호평을 해주시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그 작가를 만나게 되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독자분이 너무 감사하다.
요즘 '슬픔이 나만 비켜가지 않았듯이 행운도 나만 비켜가지는 않을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는데 그말을 소리내어 하고 싶어졌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펴고 말했다.
슬픔이 나만 비켜 가지 않았듯이 행운도 나만 비켜갈 리 없잖아? 이제는 행운이 내게 머무를 차례가 된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