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거 별거 읎다. 짠지 간국 빼 먹듯이 살먼 되는겨!”
소금만 듬뿍 넣고 담근 짠지는 먹을 때 간 조절이 가능하다. 짜게 먹고 싶을 땐 짧은 시간 물에 담그고, 싱겁게 먹고 싶을 땐 전날 저녁에 꺼내다 밤새 담그면 된다. 그렇게 간기를 뺀 짠지를 볶아서도 먹고, 찬물 부어서도 먹고, 무쳐서도 먹고, 쌀뜨물 부어 찌개처럼 지져서도 먹는다.
-그렇구나! 지지고 볶는 것이 삶인데, 입에 맞을 때도 있고, 짤 때도 있고, 싱거울 때도 있겠구나, 그럴 때 요령껏 물을 타거나 소금을 넣어 적당히 입맛에 맞추면 견딜만한 맛이 되었지, 입에 안 맞는다고 버려버리면 먹을 만한 것이 몇 개나 될라고?... -
“짠지 간국 뺀다 생각허니께 비위도 맞출 수 있더라”
어느 날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 모퉁이쯤 오면서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면 달려 나가 팔짱을 끼고 들어 왔다. 잠드실 때까지 주정을 하는 아버지를 -야! 그럼유! 그럼유!- 하며 비위를 맞추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술 깨면 한마디도 못하시던 아버지를 쥐 잡듯 잡았다. -알었어, 알었어, 인쟈 안 그럴 겨- 아버지의 항복을 받아내고서야 엄마의 얼굴은 순해졌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아버지를 아예 대놓고 이빨 빠진 호랑이 라고 한다. 마냥 으르렁 거려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스스로 정한 아버지의 그 자리에 계시다가 엄마가 밥상 차려주면 드시고 때가 지나도 밥상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얼른 경로당에 가셔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바지주름이 남자의 가오쯤으로 여기시는 아버지는 엄마의 노안으로 다림질이 힘들어지자 그마저도 직접 하신다고 하셨다. 호랑이처럼 군림하시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생존을 위한 끼니마저도 눈치껏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는 밥상 정도는 마음 내킬 때만 차려도 되는 약은 토끼가 되어 있었다.
“짠지 한통 담어 놨느니께 니 입맛에 맞게 간국 빼서 먹어봐”
“엄마! 그래도 이서방은 안돼, 절대로 변하지 않을걸!”
“물이 되야여, 짠지 간국을 뺄라먼~ ”
나 더러 물처럼 순해지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술 깬 아버지를 몰아치던 사나운 파도가 스쳐갔다. 엄마에게 짠지 간국 빼듯 다루어지다가 머리에 흰 눈을 덮어쓰고, 얼굴에 골타리 마저 늘어진, 작고 왜소한 이빨 빠진 호랑이, 소금기 다 빠져 허여멀건 해진 짠지, 스스로 가오를 잡겠다고 다림질한 옷을 집안에서도 챙겨 입는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아버지의 자리가 되어버린 그곳에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앉아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