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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13. 2023

당신의 마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_ 들깨 쑥 된장국.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신곡, 지옥편’ 중.  

   

 며칠간 대지를 거세게 두드리던 빗방울이 멈추고, 꿀빛을 닮은 햇살이 서재를 가득 채웁니다. 움푹 패이고, 날카롭게 할퀴어진 흙 사이로 연녹빛 새싹들이 자그마한 눈을 하고서 깜빡입니다. 자그마한 것들에게서만 느껴지는 애잔함과 저릿함이 심장에서 일어납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뚫고서 하얗게 번져가는 빛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일상에도 알 듯 모를 듯 온유함이 은은히 번져가길 바라봅니다. 비가 그친 서재는 터무니없는 아름다움을 저에게 선사해 줍니다. 제가 언젠가 가꿀 시골 책방은 반드시 자연 안에서 존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찾아오는 이들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찬연한 풍경을 본다면, 아마도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찌할 줄 몰라 하얀 시골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상상을 합니다. 빗방울을 부여잡은 반짝거리는 거미줄, 생기있게 하늘을 찬미하는 풀꽃들, 물기 어린 깊은 향기를 흩날리는 아카시아, 늙은 감나무 아래에 드러누워 떨어지는 연노란빛 통꽃과 밀려드는 평화들. 마음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맑은 풍경들.

 그런데 저는 며칠 전, 조금 울어야만 했습니다. 고통의 압력으로 붉은 실핏줄이 얽히고설킨 하얀 눈동자를 어쩌다 마주치는 일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더군요. 슬픈 눈동자와 자둣빛 콧잔등이 잔상으로 남아 한동안 자작나무에도, 매화나무에도, 복숭아나무에도, 여기저기 걸려있어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서글픈 부서 이동은 손써볼 틈 없이 서러운 눈물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기에 충분했나 봅니다. 아이들의 어미로서,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많은 역할들을 소화해 내고자 가늘게 늘어진 한숨 한 번 뱉어낼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후배 녀석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움과 속상한 마음들이 차올라 저의 안구에도 뜨거운 것이 비집고 나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독이고, 다독여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저의 무력함에, 깊은 한숨조차도 부끄러웠습니다. 긁혀진 마음이 부디 거친 흉터 없이 아물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삶의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이 행하는 일들이니까요.


 요즘 저는 쑥대밭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른 봄 솟아난 여리고 여린 쑥들을 제때 솎아내지 않으면 쑥은 어린나무의 키만큼이나 자라나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영역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렇게 비가 흠뻑 내린 후에는 손을 댈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한 평의 땅조차도 저와 작물들에게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나무들의 존립과 성장을 잠식해 나가고, 어느새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할 만큼, 한순간 황폐해진 텃밭과 뜨락을 맞닥뜨리게 되지요.

 우리들의 삶을 쌓는 마음의 조각들도 어쩌면 이와 닮은 듯합니다. 조금씩 자라나는 마음의 통증들을 그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제때 보듬어주지 않으면, 어마어마하게 무성해져서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상처들은 스스로에 대한 무심함을 먹고 자라나니까요. 저는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찾아가지만, 마음이 아릴 때는 살아온 방식대로 그저 참고서, 무시해 버리곤 했었지요. 그리고 삶은 몸의 통증과는 비교할 수조차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듯한 통증이 되어 어느새 저의 존립마저도 흔들어 버리고 있더군요. 정작 가장 사랑해 주어야 할 이는 자신이라는 걸 잊어버리고서,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겨 두었던 그 시절의 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 시절의 저를 이제는 데려오려 합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인지도. 자신에 대한 애착을 게을리함이 결국 스스로의 생을 무너뜨리니 말입니다. 지금 제 마음의 무늬는 어떤 모양인지 빤히 들여다봅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버려두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흔들리고서라도 일어나야겠어요.


 쑥대밭이 되기 전에 쑥을 솎아내려 합니다. 햇살이 따가워 그림자에 구멍이 숭숭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파란 장화를 신고서 터덜터덜 뜨락으로 걸어갑니다. 자라난 쑥들이 딸기밭을 뒤덮고 있어 우선 딸기를 구조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은 모든 피조물들의 자명한 본능일 것입니다. 그 시절의 저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책의 손을 잡았고, 문장의 손에 이끌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알게 모르게 저는 제 자신을 의식하며, 조금은 안쓰럽게 여긴 듯합니다. 그저 방치해두지 않고서 결국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씁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안심합니다. 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 저 또한 스스로 안심하기 위한 기도가 글을 쓰는 일이라 여기며, 기꺼이 고독 안에서 글을 쓰며 몸서리치다가 떨어져 내리겠다고, 하강하는 감나무의 통꽃을 보며 결심했었지요.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해 보려 애쓰던 시간을 지나야만 했던 그 시절. 분명 저에게 또 다른 행운처럼 날아든 인연이었다 생각합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려 몸부림친 잔해 속에서, 자그마하지만 흔들리며 꽃은 피어났으니까요.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에 있을까요. 쑥대밭 속에서도 딸기는 온 사력을 다해 검붉게 익어갑니다. 늦어버리지나 않았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딸기를 향해, 그리고 저를 향해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늦어서, 미안하다.


 꺾어 온 굵은 쑥대들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놓아두고, 여린 쑥들은 사금을 캐듯 갈색빛 소쿠리에 주섬주섬 담았습니다. 가져온 쑥들을 식초물에 푹 담가 잠시 우려내고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씻긴 쑥을 바라보며, 삶을 송두리째 바수고 찢을 뻔한 수많은 심장의 상흔들을 물끄러미 마주합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억들이 순간을 비집고, 심장을 헤집어 놓기를 반복하곤 했습니다. 단호하게 망각의 칼을 빼어 들었지만, 기억은 가소로워하며 언제나 승리하더군요. 이젠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기억에 저항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기억조차 저의 일부이자, 지금의 저를 존재케 한 근원이기에, 문장들로 상처를 소독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진심 하나 매달아 두곤 합니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 재생되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심연에 고요히 자리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수많은 고통과 후회들이 지금도 도처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비대하게 성장한 채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타인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저의 생살을 뚫고 들어오는 깊은 슬픔과 우울, 분노와 집착,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폄하, 극도의 상실과 좌절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또는 경험하고 있는 끈질긴 잡초들. 그럴 때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며, 말해 주곤 합니다. 저의 이야기인 듯, 누군가의 이야기인 듯,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듯, 조잡한 문장들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둡니다. 고독 속에서 그들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인간의 태생적 결핍에 대해 생각합니다. 글쟁이에게 선고된 고독과 고뇌는 기한이 없는 형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형벌을 기꺼이 감수하고만 싶습니다. 고뇌하며 글을 쓰는 이 계절의 제가 참 좋으니까. 이젠 제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가지런히 놓아둔 마알갛게 씻긴 쑥들을 보며 후배 녀석의 시릿한 마음을 더듬거립니다.


  조금 더 깊은맛을 내보려고,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집된장 두 숟가락과 멸치액젓, 그리고 국간장 한 숟가락씩을 넣어 휘휘 젓습니다. 다진 마늘도 한 숟가락 넣어 쑥이 익어갈 국물을 끓입니다. 상처 입은 마음들에 진한 국물이 배어들어 조금씩 삶은 깊어지는 듯합니다. 그 시절, 거울 안에서 검버섯처럼 기미는 피어나고, 거뭇해져 버린 캄캄한 우물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다지 걱정도, 연민도 떠오르진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스스로 빨간불을 켜고 희망을 정지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희망을 정지시키자 어떤 의지나,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움직임조차 필요가 없었지요. 그건 처음 느껴보는 무기력함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잡초들로 무성해졌고, 결국 길을 잃어가고 있었지요.

 스스로 희망을 정지시킨 지점. 그곳에서 지옥도는 펼쳐집니다.


 지옥은 희망이 사라짐과 동시에 잉태되는 것인 듯합니다. 희망이 없다면 존립할 소명도, 보행할 이유도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사라집니다. 그 시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던 제가 책을 읽으며 겨우 붙잡을 수 있었던 바람은 그저 되살고 싶음이었습니다. 되 태어남. 어쩌면 가장 거대한 희망이었을 다시 사는 일. 예전의 저와는 다른 모습으로 조금은 더 흰 빛의 얼굴로 지금은 거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살기 위해 흙을 딛고서, 거친 문장들을 주워 담으려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았습니다. 뽑아낸 그 자리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으며 결국 저를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입을 벌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생기자, 이어서 잊고 살았던 꿈이라는 게, 이를 굳건하게 딛고서 일어서더군요. 지금도 가끔은 통증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침묵하며, 기도하고, 사랑을 되뇌이는 지금은 통증마저도 삶의 일부분이라 여겨질 뿐입니다. 고통에는 반드시 가치가 있습니다.

 뽀얀 무는 오래 익혀야 하기에 끓는 국물에 조금 일찍 투하하고, 두부는 퍼져버릴까 염려되어 들깨가루 두 숟가락과 함께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자신 안에 가라앉은 가장 두껍게 쌓인 것들부터 하나하나 떼어내고 다시 붙여, 용기 내어 마주할 때 마음은 어느새 진하게 우러나 익어가는 삶의 맛이 되는 듯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끊임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 가닿을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겠지요. 뒤돌아 그 시절의 마음들을 다시 꺼내어 보면, 온전히 제 마음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곳엔 가족을 포함해 저를 걱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이들의 마음도 단단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폭풍이 지나간 자리가 금세 단정하고, 고요할 수 있었습니다.

 외롭다는 말을 이제는 아껴 써야겠습니다.     

 좀 더 잘살아 보려고,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나 처절하게 아픈 것이니, 아픈 마음은 살아있음의 명징한 증표가 아니겠는지요. 단지 지루하리만큼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보듬는 일을 반복해야겠지요. 울고 싶을 때는 조금 울어도 괜찮고, 사무치게 외로울 때는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도 보고, 힘이 들 때면 조금은 덜 열심히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꽃은 언제나 흔들리며 피어나니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지만,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우리의 마음이니까.

 오늘 저는 하염없이 잡초와 서있고만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잘 지내시나요.

덧. 주재료: 쑥, 무, 두부, 들깨가루 두 숟가락

      부재료: 고추, 대파, 양파

      양념재료: 멸치육수, 집 된장 두 숟가락

                        다진마늘과 국간장 한 숟가락

                        멸치액젓 한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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