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13. 2023

당신의 마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_ 들깨 쑥 된장국.


 며칠 거세게 대지를 두드리던 빗방울이 멈추고, 그곳을 꿀빛을 닮은 햇살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움푹 패이고 날카롭게 할퀴어진 흙 사이로 연녹빛 새싹들이 마알간 눈을 하고서 깜빡이고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뚫고서 끝끝내 다가와 하얗게 번져가는 빛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일상에도 온유함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기를 바랍니다. 비가 그친 서재는 터무니없는 아름다움을 저에게 선사해 줍니다. 제가 언젠가 가꿀 시골책방은 자연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찬란한 풍경을 찾아오는 이들이 본다면 아마도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찌 할줄 몰라 하얀 시골 강아지처럼 뛰어 다닐 테지요. 빗방울을 부여잡은 반짝거리는 거미줄, 생기있게 하늘을 찬미하는 꽃들, 물기어린 향기를 흩날리는 아카시아. 늙은 감나무 아래에 드러누워 떨어지는 연노란 빛 통꽃과 밀려드는 평화로 마음을 씻기어 봅니다.


사실 저는 오늘 조금 울어야만 했어요. 고통의 압력으로 실핏줄이 빠알갛게 얽히고 설킨 하얀 눈동자를 어쩌다 마주치는 일은 여전히 버겁기만 합니다. 슬픈 눈동자와 자둣빛 콧잔등이 잔상으로 남아 한동안 자작나무에서도, 매화나무에서도, 복숭아 나무에서도 여기저기 걸려있더군요. 타의에 의한 서글픈 인사조치는 손 써 볼틈 없이 서러운 눈물들을 봇물터지듯 쏟아내기에 충분하였나 봅니다. 아이들의 어미로서,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많은 역할들을 소화해 내고자 가늘게 늘어진 한숨 한번 뱉어낼 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후배 녀석을 보고있자니, 안쓰러움과 속상한 마음들이 차올라 저의 안구에도 습들이 차오르더군요. 다독이고, 다독여 그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저의 무력함에, 탄식조차도 부끄러웠습니다. 긁혀진 마음이 부디 상흔없이 아물기를 기도해볼 뿐이었습니다.


 요즘 저는 쑥대밭이라는 말을 온 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른 봄 솟아난 여리고 여린 쑥들을 제 때에 솎아내지 않으면 쑥은 어린 나무의 키만큼이나 자라나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지요. 이렇게 비가 흠뻑 내린 후에는 손을 댈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한평의 땅조차도 저와 작물들에게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나무들의 존립과 성장을 잠식해 나가고, 어느새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할 만큼, 한 순간 황폐해진 텃밭과 뜨락을 맞딱뜨리게 되지요.

우리들의 삶도, 마음도 어쩌면 이와 닮은 듯합니다. 조금씩 자라나는 마음의 통증들을 그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제 때에 솎아주지 않으면, 어마어마하게 무성해져서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자신에 대한 무심함을 먹고 자라난  말입니다. 저는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제때 찾아갔었지만, 마음이 아릴 때는 그저 참고서, 무시해 버리곤 하였어요. 그리고 삶은 어느새 몸의 통증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 나락으로 떨어질 듯한 통증으로 저의 존립을 흔들어 버리고 있더군요. 정작 가장 사랑해 주어야 할 이는 자신이라는 걸 잊어버리고서,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맞겨 두었었던 그 시절의 제가 그저 안타까 뿐입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인가봐요. 자신에 대한 애착을 게을리함이 결국 스스로의 을 무너뜨리니 말입니다. 지금 의 마음은 어떤지 빤히 응시합니다.  본 척, 버려두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마음입니다.

바람이 부네요. 흔들리고서라도 일어나야겠어요.


쑥대밭이 되기 전에 쑥을 솎아내려 합니다. 햇살이 따가워 밀짚 모자를 챙기고, 파란 장화를 신고서 터덜터덜 뜨락으로 걸어갔어요. 자라난 쑥들이 딸기 밭을 뒤덮고 있어 우선 딸기를 구조하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은 모든 피조물들의 자명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 시절의 저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책의 손을 잡았, 문장의 손에 이끌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 자신을 사랑했기에 그저 방치해버릴 수는 없었나봐요.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더이상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타인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을 구조활동이라 하였습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일이 글을 쓰는 일이라면, 기꺼이 고독 속에서 몸서리 치다가 떨어져 내리겠다고, 하강하는 감나무의 통꽃을 보며 결심해 봅니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려 하였던 시절들을 겪어야만 했던 것은, 분명 저에게 행운처럼 날아든 인연이었다 여기고 있어요. 운명이라는 날실과 인연이라는 씨실로 짜여진 찬란한 옷으로 순산되는 것이 인생이 아닐는지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려 몸부림 친 잔해 속에서, 꽃은 흔들리며 피어나나 봅니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에 있을까요. 쑥대밭 속에서도 결국 딸기는 빠알갛게 온 사력다하여 익어가더군요.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꺽어 온 굵은 쑥대들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놓아두고, 여린 쑥들을 소쿠리에 주섬주섬 담아왔어요. 가져온 쑥들을 식초 물에 푹 담구어 잠시 우려내고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습니다. 씻겨진 쑥을 바라보며,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뻔한 심장의 작은 파편들을 물끄러미 마주합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억들이 순간을 비집고, 심장을 헤집어 놓기를 반복하곤 하였지요. 망각의 칼을 빼어들었지만, 언제나 기억은 승리하더군요. 이젠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기억에 저항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기억조차 저의 일부이자, 지금의 저를 존재케 한 근원이기에, 문장들 통점을 소독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진심하나 걸어둡니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 재생되고, 소중한 무엇이 되어 심연에 자리하겠지. 치유되지 않은 수많은 고통과 후회들이 지금도 도처에 산재해서는, 각자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비대하게 성장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요. 타인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만져지는 깊은 슬픔과 우울, 분노와 집착,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폄하, 극도의 상실과 좌절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본 또는 경험하고 있는 잡초들일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만 그런게 아니라며, 문장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합니다. 저의 이야기인 듯, 누군가의 이야기인 듯,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듯, 조잡한 문장들을 흘려두고 나서야 저의 마음은 조금 진정되곤 합니다. 글쟁이에게 선고된 고독과 고뇌는 기한이 없는 형벌인지도 모르겠어요. 가지런히 놓아둔 마알갛게 씻겨진 쑥들에서 아팠을 후배 녀석의 마음을 더듬거립니다.


조금 더 깊은 맛을 내보려고,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집된장 두 숟가락과 멸치액젓, 그리고 국간장 한 숟가락씩을 넣어 휘휘 저었습니다. 다진 마늘도 한 숟가락 넣어 쑥이 담겨질 국물을 끓였어요. 찢겨진 마음들에 진한 국물이 베어들어가 조금은 더 삶이 깊어지는 듯합니다.  시절 검버섯처럼 기미는 피어나고, 거뭇해져버린 거울 속에 들어앉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다지 걱정도, 연민도 떠올리질 않았어요. 그건 제가 스스로 빨간불을 켜고 희망을 정지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잡초들로 무성해졌고, 결국 길을 잃어가고 있었지요.

그래요. 그곳이 지옥도였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 '단테', '신곡'의 '지옥편' 중. -


옥은 희망을 정지시킨 지점에서 잉태되는 것인 듯합니다. 희망이 없다면 존립할 소명도, 보행할 이유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릴테니 말입니다. 그 시절 제가 가진 희망은 다시 살고 싶음이었습니다. 예전의 저와는 다른 조금은 더 흰 빛의 얼굴로 지금은 거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살기 위해 흙을 딛고서, 거친 문장들을 주워담으려 잡초들을 하나하나 뽑아내었지요. 뽑아낸 그 자리에서 결국 저를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입을 벌려서 말하고야 말았습니다. 지금도 수시로 통증이 밀려오기는하지만, 그럴때면 글을 쓰면서, 침묵하며, 기도하고, 사랑을 되내입니다.

뽀얀 무는 오래 익혀야 하기에 끓는 국물에 조금 일찍 투하하고, 두부는 퍼져버릴까 염려되어 들깨 가루 두 숟가락과 함께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자신 안에 가라앉은 가장 두텁게 쌓인 것들부터 하나하나 떼어내 다시 붙여, 용기내어 마주할 때 마음은 어느새 진하게 우러난 삶의 맛으로 익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한편의 시가 니다.


우리는 누구나 끓임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 가닿을 수 있는 는, 자신뿐이겠지요. 뒤돌아 그 시절의 마음들을 다시 꺼내어 보면, 온전히 제 마음만 덩그라니 있는게 아니더군요. 그곳엔 가족포함해 저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의 마음도 단단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제 안의 속뜰은 단정하고, 고요하게 살아지는 것만 같아요. 외롭다는 말을 이제는 아껴야겠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려고,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나 처절하게 아픈 것이니, 아픈 마음은 살아있음의 명징한 증표가 아니겠는지요. 단지 지루하리만큼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보듬 일을 반복하여야겠지요. 울고 싶을 때는 조금 울어도 괜찮고, 사무치게 외로울 때는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도 되고, 힘이 들 때면 조금은 덜 열심히 살아도 좋겠습니다. 꽃은 언제나 흔들리며 피어나니까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지만, 결국 우리를 살게하는 건,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하염없이 잡초와 서있고만 싶습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마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떠신가요.'

덧. 주재료: 쑥, 무, 두부, 들깨가루 두 숟가락

      부재료: 고추, 대파, 양파

      양념재료: 멸치육수, 집 된장 두 숟가락

                        다진마늘과 국간장 한 숟가락

                        멸치액젓 한 숟가락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선가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당신들에게 _ 곰취 무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