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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Jun 12. 2023

망각의 두려움이 몰려올 때. _ 케일 머위 강된장쌈밥.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가는 구름을 보며 산책을 하다, 저녁 마실을 나온 건너편 할아버지네 강아지인 '가을이'우연히 만났습니다. 우연하고도 가만하게, 그렇지만 약속한 듯, 이루어지는 이런 만남들에 심장은 털썩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날개가 비죽히 솟아나기도 하지요. 가을이 덕분에 오늘은 까만밤의 무지개 빛이 밤새 반짝일 듯합니다. 노란 별빛이 뛰어든 가을이의 은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하던 시절의 눈빛이 떠오르곤 합니다. 천진난만한 심연이 있다면, 아마도 시절,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던 우물같은 눈빛이 유일하겠지요.

청개구리의 노랫소리가 이렇게나 황홀할 걸 보니 그리운 이들의 눈빛이 사무치게 밀려옵니다.


오늘은 마늘을 캐내고, 그 곳에 연둣빛 고구마순을 다시 심었어요. 지난해 고구마순의 살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를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지라, 이번엔 손을 쭉펴고서 간격을 적당히 재어가며 심었습니다. 동그란 엉덩이 의자를 매달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니 가을이도 신이나나 봅니다. 여름을 기웃거리다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랑하는 친구도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고구마순을 심어야 지요. 우연하게 고구마순을 심게 된 그는 말없이 한참을 몰입하며,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프루스트' 말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 여행이라면, 그는 분명 좀 너그럽고 온유한 시선갖게 될 여행을 하는 중인 듯 보였습니다. 고구마순을 심다가 잠시 매화나무를 바라보던 그의 옆 모습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는 노랫말처럼, 약속하지 않은 만남과 정해지지 않은 인연들은 한지에 물이 번져가듯 삶을 적셔가나봐요. 그리고 그 순간 설레임과 두려움이 수시로 자리를 바꿔앉기 시작하지요. 어느 자리에 앉을 지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 인연의 모습은 운명으로 빚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남은 우연하고도 찰나의 기적으로 새순을 틔우지요. 투명한 물방울들이 송글송글 매달려 있는 시원한 사이다 한컵에 친구의 환한 얼굴이 물들어 갑니다.

만날 수 있어, 좋은 나날입니다.


친구와 가을이는 뛰어다니며, 깔깔거리고, 바람은 생명의 향기를 전해오고, 풍경소리는 실로폰이 되어 음표를 만드는군요. 가을이의 털이 온몸에 붙어 친구는 울상을 하고선 엉거주춤 일어납니다. 만남 이후에 이어지는 서글프게 사라질까 두려운 시간 속에 분명 제가 존재합니다. 우연하게 엮여진 시간과 공간의 씨실과 날실이 자수를 놓은 듯, 하나의 완벽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군요. 분명 다시 꺼내어 보다가 싱긋 웃으며 서재에 가지런히 꽂아둘 풍경입니다. 지극한 환희로 그려진 이 시절의 여름에 서서 저는 존재하는군요. 인연의 모습이 어떻게 흘러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제가 웃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저는 기록하고 간직하겠습니다. 만남 후의 기록은 제가 살아있었음을 증명해 줄 명징한 문장이 되어 저를 언젠가는 변호해 주겠지요.


어쩌면 만남이라는 건, 흩날리던 씨앗이 흙으로 날아드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씨앗은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떠돌다가 온도와 습도, 양분과 촉감이 좋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되겠지만, 결국 죽어버리고 다시 씨앗이 되어 날아가버립니다. 씨앗은 어쩌면 사랑의 근원이 아닌 이별의 근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흙은 적막 속에서 혼자 읊조리겠지요. 

만남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죽음이라는 이별은 지구상의 피조물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자명한 법칙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흙에서 피어나 꽃과 열매를 맺으며 우주가 팽창하기만 하는,  시절의 추억은 영원히 마음과 문장으로  속에 스며들겠지요. 장난스레 다가온 씨앗을 흙은 부드럽고도 너그럽게 언제나 그랬듯, 잘 보내 줄 것입니다.

언젠가 떨어져 내릴 쑥갓의 꽃은 격렬하게도 아름답군요. 자신이 흙에게 작별을 통보하게 될 거라는 걸, 쑥갓은 알고 있을까요. 이별의 주체들은  이리도 사랑스러운 모습일까요. 골수가 흔들리고, 심장은 미어집니다. 가을이에게 간식을 주고 친구와 저도 점심을 먹어야겠어요. 턱을 괴고, 쑥갓의 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집안 곳곳에 진하게 배어버려 창문을 활짝 열어야만 하는 구수한 된장의 향수가 그리워집니다. 강된장에 밥 한술 얹어 친구를 든든히 먹여서 보내야겠어요. 헤어짐 후에도 배어버린 그와 된장의 향기로 혼자만의 시간이 쓸쓸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가장 두려운 건, 이별이 아닌 망각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제 책이나 읽다가, 밥이나 먹고 가. 고생많았어.'


친구는 갈색 바구니를 들고서는 케일과 머위, 대파를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더니 머위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어 보입니다. 너 처럼 웃고 있는게 머위라 알려 주었지요. 친구가 뜨락에서 장을 보는 동안, 표고버섯과 두부, 그리고 애호박과 양파를 맑은 물에 씻어 잘게 잘랐습니다. 들기름을 두른 냄비에 야채들을 넣고 달달 볶아대었습니다. 강된장은 물이 많으면 안되기에 볶고, 또 볶아서 야채들이 품고있는 물기들을 빼내어 줍니다. 어쩌면  또한 저의 기억을 볶아대는 , 물기를 건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그 무엇도 되지 못하였고, 아무것도 아닌 제가 스스로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복원되어지는 추억이 존재하때문이겠지요. 그것조차 서글프게 사라져만 간다면, 삶에는 공허와 무의미만이 싹을 틔울 것만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우리는 만남이라는 우연한 찰나에 성스러움을 입히곤 하지만, 진정 신화적 요소는 만남이 아닌 이별 후에 존재하는 추억 속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는게 아닐까요. 모든 경전들이 그러하듯, 이별 후에 홀로 남겨진 그곳에서 성전은 지어집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만남이 신비였고, 운명이었다며, 아니에요. 라고, 단호하게 얘기할지도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오래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척 도망치지 말고, 인사라도  그랬어요. 분명 사랑하고 행복했던 한 시절을 함께 만들었는데, 그 순간 저는 왜그랬을까요. 지우고 싶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하지 못한  이내 두고두고 후회했으니 말입니다. 마음과는 다른 행동과 말들에 저는 얼마나 후회하며 살아야할까요. 언제 다시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좀 더 자세히 오래 봐둘걸 그랬나봐요. 시간과 공간이 허락해준 투명한 물잔을 저는 결국 후회로 채워버리고 마는 여전히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사람인가 봅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안에서 잠겨져 있는 낡은 상자를 끝내 열어내지 못했겠지요. 이별 후에 존재하는 추억은 저도 모르고 살아왔, 저의 비밀을 알게  준 성스러움으로 저의 심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은 한동안 저를 괴롭혔지요. 관계에 있어 특별하고도 소중한 의미는 결국 만남이 아닌 이별 후에야 작동하는 회상의 화학적 반응에서 잉태되는 듯합니다. 



볶아진 야채에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고 조금더 볶다가 멸치육수를 조금 부어 끓였습니다. 으깨어 둔 두부와 남은 야채들을 넣고 자박자박해질 때까지 익힙니다. 볶아대고 볶아대다 보니 어느새 삶은, 구수한 향기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맛으로 저를 인도하는군요. 친구는 잘라온 머위와 케일을 계란꽃 가득 피어난 수돗가에 앉아 흥얼거리며 씻고 있습니다. 안구에 각인되어지는 적요한 풍경이 갓 끓여낸 강된장을 닮은 것만 같군요. 서재를 채워가된장의 향기는 어슴프레한 향수를 깨워냅니다. 자신과 타자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며,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엮어지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선명하게 존재하였던 서로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는 일을 우리는 회상이라 부르지요. 그 시절의 의미를 찾아 삶을 돌아보는 일이 회상이라면, 누군가가 얘기한 것처럼, 인생은 '의미 찾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삶을 살아가는 일이 순간 순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지나간 이별에서 반드시 의미를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요. 그 시절을 살아가던 자신이 싹둑 잘려나가지 않게, 그 만남이 초라하게 변색되지 않게 말입니다.

는 소금물에 잠시 대쳐낸 케일과 머위로 참기름을 섞은 쌀밥을 얹어 돌돌말아 주먹밥을 만들었어요. 끓여낸 강된장을 부어 친구와 저는 마주 앉았습니다. 그저 우연하고도 가만하게 만났으나, 별의 시간은 언약이라도 한 듯, 끝내 다가오고야 말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친구와 보낸 시간들은 생이 점멸하는 그날까지도 꺼내어 읽기를 반복할테니 말입니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던 '앨리엇'의 말처럼, 이별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성스러운 것들 덕분에 저는 끝끝내 이별하지 못하겠습니다.

점이 되어가다 사라진 친구의 흔적더듬거리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펼쳤어요. 순간순간 책장의 귀퉁이저도 모르게 젖어버립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다정하게 매만지, 사무치도록 그리워할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석양을 뒤로하고서, 모두에게 공평하고도 무심하게 걸어는 이별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끝내, 한 사람만이 남겨질테니 말입니다.

누군가가 머물렀던 흔적들이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덧. 주재료: 된장 네숟가락, 고추장 두숟가락,

                    케일, 머위, 두부, 표고버섯

      부재료: 애호박, 양파, 대파, 청양고추, 빨간고추,

                    들기름 두숟가락, 깐마늘 한숟가락,

                    고춧가루 한숟가락, 멸치육수, 참깨

       밥양념: 소금, 참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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