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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26. 2023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아요. _ 곤드레 무밥.


 시골서재에는 봄에게 안녕을 고하는 듯한 제법 큰한 비가 내립니다. 여름이 문지방을 기웃거리기에 반가운 듯, 아쉬운 듯, 문을 열어주는 봄인 것만 같아요. 한낮에 내려 꽂히던 날카로운 햇살을 아직 이르다며, 타이르는 봄의 목소리가 고조곤히 들리는 듯합니다. 봄은 성마른 아이를 닮은 름의 마음을 이해하겠지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용서를 하여야 하는데, 자연과 계절의 너그럽고, 부드러움에는 용서의 자리가 필요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지구상의 피조물들 중에 인간에게만 유일하고도, 반드시 결행하여야만 하는 일이 용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빗방울에 흩날리는 하얀 아카시아를 입을 벌려 받아먹습니다. 구겨진 마음을 펴보려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정호승' 시인께서는 고요히 칼을 거두말씀하셨는데, 간혹 무례한 이들을 마주할 때면, 칼을 더욱 움켜쥐게 되는  날카로운 종이 조각 같은 마음이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자에 대한 징계를 마주할 때면, 사람이 얼마나 간교한 동물인지를,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해소하려 하는 욕망의 마침표를 바라볼 때면, 인간이 얼마나 허기진 동물인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의지는 무엇일까요. 나뭇잎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버겁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왔어요. 스스로를 임금 노동자라며, 소맷귀를 걷어부치고 텃밭으로 걸어가는 친구의 뒷 모습은 제 삶이 온유하게 흐르고 있음명징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지요. 자그마한 딸기를 따는 일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딸기 따는 일에 매달린 친구가 그저 다정하기만 합니다. 마음이 산란하게 흩어지거나, 살아가는 일이 녹록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면, 꺼내어 볼 수 있는 적요한 풍경을 하나 더 손안에서 만지작거릴 수 있게 되었어요. 신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준 친구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자작 나무 밑에 무섭게 생긴 건 뭐야?'

'곤드레야. 곤드레가 너무 무섭게 자랐어.'

'곤드레는 자그마하연약한거 아니었어?'

'그러게, 내버려 두었던 무섭게 자라나네...'


친구가 자작나무 아래에서 어마어마하게 자라난 곤드레를 보며, 입을 다물지를 못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더라도 아마도 까맣고 커다란 눈을 어찌할지 몰라 당황할 것만 같습니다. 곤드레를 보고 있자니 자작나무를 못살게 구는 듯하여 곤드레가 괜시리 미워지더군요. 하지만 곤드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아마도 저는 스스로를 탓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웃자란 곤드레에서 너무나 싫었던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시절의 저는 날카로 그의 표정과 냉소적인 그의 언어 안에서 그저 어찌할줄 몰라 미안하다는 말만을 뱉어내며 버텼었지요. 굳게 잠겨진 문 밖에서 그저 몇 시간을 서성거리면, 문이 열릴 것이라는 소모적인 기대감마저도 놓지 못하던 욕감을 삼켜내 결국 목에 걸리곤 습니다. 제가 얼마되지도 않는 자존심을 내세우려 살짝만 인연의 줄을 놓아도 저의 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불안과 두려움의 서가 펼쳐지기에 이렇게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다짐하게 만들더군요. 한낮에 서서 피할  없는 이별임을 알면서도 몸부림치던 처참한  시절의 모습은 사랑이었을까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향한 사랑이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증오하였던 마음인지, 타인을 미워하였마음인지 수도 없는 분노와 수치스러움, 자괴감으로 뭉쳐진 감정의 찌꺼기들을 잘라내듯 곤드레 잎을 툭툭 잘랐어요. 손 대기도 두렵게 어그러지고, 먼지처럼 굴러다니다 뭉쳐져 부풀어 오른 마음을 잘라내니 평정심이 나타납니다. 버림받은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고, 용서하지도 못하며, 그저 비겁하게 내버려 두었던 거울 속 저에게 미안한 마음만가득해지는군요. 용서는 어쩌면 자신을 향한 선행라는 생각을 합니다. 얼굴 '',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같게 다는 ''. '용서'.

용서라는 단어에는 타자를 향하거나, 위하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용서는 자신의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었지요. 용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도 얼굴이 흐트러짐 없이 평정을 유지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의 기억으로부터 자책과 후회의 감정이 굴뚝에서 역류하여, 방안에서 번져가는 연기가 되어갈 때, 기침을 하며 우두커니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젊은 날의 사랑했던 시간으로 누군가는 누리고 있는 평범한 생이 사라져 버린 듯해서 어찌 해야할지 모를 가득한 연민이 제 자신을 향해 밀물 밀리듯, 떠밀려 오 합니다. 쉽지 않은 하루들에 부딪히고, 흔들리며, 그렇게 오늘을 버텨낸 그런 에게 '아일랜드의 전통 기도문'을 선물하며, 중얼거림과 연민을 지웁니다. 그리고 희망이 정지된 지점에서 용서의 페달을 밟습니다.


'길이 솟아나 그대가 떼어놓는 발걸음에 가닿기를,

 거센 바람은 그대 등 뒤로만 불어오기를,

 따스한 햇살이 그대 얼굴을 반짝이며 비추기를,

 그대 텃밭에 단비가 스미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지켜주시는 손길이 그대 위에 머물기를.'


괴물처럼 자라나버린 곤드레를 깨끗이 씻어 소금물에 데쳤습니다. 자책과 폄하. 이런 말들이 삶에 깊숙히 파고들고, 낙인이 되어 자발적 고립을 택했을 누군가의 눈물을 보는 듯하더군요. 무수하게 달려드는 자기폄하의 순간들과 조각나버린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언제나 그러하듯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겠지요. 소금물에 소독하듯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용서해야 하는 일은 아마도 생이 점멸하는 그날까지도 지루하리만큼 반복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데쳐진 곤드레를 찬물에 넣어 잠시 우리고, 손가락 두마디 정도의 크기로 먹기 좋게 잘랐습니다. 하얀 무도 채를 썰어 단정하게 놓아둡니다. 국간장과 들기름, 그리고 다진 양파와 다진 파를 넣어 곤드레와 무를 밑간하는 동안 친구는 냄비밥에 자신있다며, 흥얼거리면서 쌀 두홉을 씻었습니다. 나란히 서서 밥을 짓는 일은 부풀어 오르는 하얀 쌀알처럼 마음도 고슬고슬하게 하는군요. 살아가는 일이 그리 고되진 않은 듯합니다.

노란 양철 냄비의 뚜껑이 들썩거리며, 밥익는 향기를 피어올립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삶을 익혀갈 때, 생은 비로소 구수한 냄새를 전하며, 소담한 밥상으로 인도하는 것같아요.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를 말하였다지만, 미움받은만큼 타인과 자신을 용서할 용기가 필요한게 아닐까요. 필연적으로 사랑에는 용서와 고통이 뒤따름을 인정해야 한다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듯한 고통의 근원을 용서하려 합니다. 우리 끊임없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용서하면 참 좋겠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곤드레 무밥은 양념장이 맛깔나야 하지요. 다대파와 다진 마늘, 양조간장과 매실청, 고추가루와 참기름, 그리고 깨소금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어요. 조금 짜려나요. 조금 짜고, 조금 매워도 오늘은 괜찮습니다. 좋은 이와 밥을 먹을테니, 그리고 어느새 저를 용서하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인생의 맛은 조금 짤 수도, 조금 매울 수도 있다는 걸, 그대도, 저도 잘 알고 있지요.

용서하지 않은 마음들이 비대해져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말끔히 잘라내어 하얀 쌀밥을 지어 먹어야 겠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모든 낮과 모든 밤에 떠올리며, 계절과 계절건너고 있습니다. 좌절과 후회, 두려움이 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집어삼키게 내버려 두는 것은  스스로가 마음의 감옥을 짓고, 감금한 채, 결정적 고통을 씹는 일인 듯합니다. 감옥을 헐어버리고, 세상으로 걸어가게 하는 용서. 결국 용서의 대상은 저였습니다.

천사는 자기애를 발명하고, 악마는 자기폄하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악마의 속삭임은 용서를 지워버리고, 괴물을 잉태합니다. 차마 용서하지 못한 자기폄하가 결국 자신도, 타인도 집어삼키겠지요.

우리, 괴물을 만들지는 말아요.


친구와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평상에 누워 하얀 달과, 달빛이 반사된 몽글한 구름의 이동을 쫓아갑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친구는 옆에서 재잘거립니다. 뻐꾸기의 소곤거리는 소리와 바람에 실린 자작나무의 사각대는 소리 섞여 함께 흘러가는 용서받은 밤이 되었습니다. 처절하게 마음이 찢겨져 본 우리는, 용서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덧. 주재료: 곤드레, 무,

      밑간 재료: 국간장과 들기름 한 숟가락씩,

                         다진 양파와 다진 파 두 숟가락씩.

      양념장: 다진 대파 두 숟가락, 다진 마늘 반 숟가락.

                   양조간장 다섯숟가락, 매실청 반 숟가락,

                   고추가루와 깨소금 반 숟가락씩,

                   참기름 두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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