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장애 환자의 불면증 이야기
새벽 네 시, 어김없이 눈을 떴다.
잠시 잠들었다가 꼭 같은 시간에 잠이 깬다.
이때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외로운 불면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
나를 제외한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달콤한 꿈에 젖어 잠들어 있는 새벽이 싫다. 마치 홀로 이 넓은 세상의 보초를 서는듯한 기분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혼자 깨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새벽의 어둠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새벽의 무서움을 숨기듯 방에 불을 환하게 켜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모든 불이 꺼져있는 이 세상의 차가운 새벽에, 내 방에만 불을 켜는 것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만천하에 들키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어두운 새벽이 무서워도 모두가 잠드는 시간엔 똑같이 불을 끄고 자는 척 시늉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게 어둠 속에 숨어 홀로 긴 새벽 시간을 보낸다.
어두운 새벽을 이겨내려 애써본 적이 있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보았다.
하지만 글을 쓰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늪에 빠져드는 순간, 깊은 우울감이 느껴져 노트북을 접어버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양을 세어 보기도 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
아무리 세어도 머릿속엔 양이 늘어나지 않았고,
고작 몇 마리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잠이 드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자연스러운 행위이지 않은가. 머리맡에 놓인 책들 중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신나게 읽어 내려가다 몇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집어 든 것을 후회했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요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안과 혼란, 인간에 대한 공포, 피폐한 정신으로 위태롭게 삶을 이어가며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요조의 모습이 나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와 닮아있는 것 같아 슬퍼졌다.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가에 대해 밤이면 밤마다 고민하며 신음했다던 요조도 어쩌면 나와 같이 매일 밤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뒤척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책을 읽으며 울고, 멈추고, 울다가 또다시 멈추고, 읽고를 반복했다.
물론 그 사이에 잠은 오히려 달아나 버렸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약을 한 알 더 챙겨 먹었다.
어떻게든 외로운 새벽을 견뎌내기 위해서였다.
끝까지 약을 더 먹지 않고 잠들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것은 무리였을까.
하지만 약발이 채 돌기도 전에 어이없게도 새벽은 끝나버렸다. 창문이 파랗게 변하더니 블라인드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침이 밝았다는 신호다.
허무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새벽을 보냈다.
새벽 네 시.
가장 무서운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길고, 외로운 싸움이다.
그리고 무서운 새벽은 매일 또다시 돌아온다.
언젠가는 새벽의 어둠을 극복하고
'좋은 밤'을 보낼 수 있을 그날을 상상해 본다.
어느 날엔 글을 쓰다 뿌듯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거나
또 책을 읽다 기분 좋게 스르르 잠이 든다거나
굳이 약을 더 챙겨 먹지 않아도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날들.
그런 평범한 날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무섭고, 쓸쓸하고, 외롭게 홀로 깨어있는 새벽이 아닌
단잠에 곤히 잠들어 있는 나의 새벽 네 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