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모든 걸 담을 수 있게 됐다. 사진도, 글도, 그림도, 목소리도. 하지만 휴대폰 안에 담긴 것들은 나를 거쳐 디지털을 거쳐 표현된 것들이었다. 반듯한 글자와 자동 보정이 된 사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선, 갇혀있는 목소리들이 그랬다. 모두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내가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서툴고 자연스러운 나였다. 완벽하지 않아서 인간다운 나. 그래서 앞이 안 보이는 미래를 희망하며 오늘도 불안과 슬픔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나.
나가는 길- 가방 안에 작은 수첩과 펜을 챙겼다. 휴대폰에 무언갈 담고 싶다 생각이 들면 수첩을 꺼내 펜으로 스윽 망설이지 않고 담아보리라. 단 이 수첩에 담을 것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하고 감동스러운 것들 이어야 한다라는 규칙을 정했다. 어느 날 불쑥 우울한 기분이 인사를 할 때 꺼내보고 키득키득 웃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지하철 안에서 문득 좋은 문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선뜻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열심히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펜을 들고 글과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마치 양식집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하는 것과 같은 어색한 행동 같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인가? 휴대폰 안에 갇히지 말자고 결심했으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우선의 의무.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수첩과 펜을 꺼냈다. 옆에 앉아있는 청년이 내 글과 그림을 본 듯했으나 그것은 그 청년의 휴대폰 화면이 누군가에게 보임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번 저지르는 것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고 그 후 나는 수첩을 수시로 꺼냈다. 전화를 하는 동안 사랑하는 이 가 두근거리는 말을 했을 때, 영화 속에서 명언을 발견했을 때,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을 때, 마음을 울리는 노래의 한 소절을 발견했을 때, 낯선 이에게 고마움을 느꼈을 때, 다시 오지 않을 이 가을을 담고 싶다고 느꼈을 때.
이 작은 수첩과 펜이 없었을 때 나는 이러한 소중한 순간들을 그저 흘려버리고 있었다. 디지털기기를 이용해서 메모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하고, 영상을 찍기도 했으나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도 못하거니와 나중에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쉽게 지워버리곤 했다. 그러나 수첩 안에 적는 이 순간들은 이대로 영원히 서툴고 예쁘게 내 곁에 머물러 줄 것이었다.
잠이 들기 전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선을 긋고 점을 찍는다. 앞장을 넘겨 오늘의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한다. 그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롯한 오늘의 행복.
진정한 행복-
이 작은 수첩과 펜이 알려줄 것이란 걸
왜 진즉 몰랐을까.
글.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