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여전히 나의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있다. 내 가방 안에는 이어폰이 있고, 나는 하루의 절반을 모니터 앞에서 보낸다. 여전히.
하지만 이제, 그것들을 '유용한 도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그들이 전력을 넣어주지 않으면 행사용 풍선처럼 쭉- 바람이 빠져버리는 내가 아니라 스스로 풍력을 조절해 바람을 만드는 바람개비가 됐다.
한달 전 디지털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그 반대인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보기로 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수평을 적절히 맞추게 되면 앞으로 멍하게 앉아 있거나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살아본 아날로그적인 삶은 단순히 옛 것, 오래된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아날로그는 인간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빠르고 정확한 디지털에 비해, 서툴고 느리지만- 솔직하고 정겨웠다. 그야말로 인간다웠다. 가벼운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부끄럽지만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로 했을 때, 빠른 메일 대신 편지를 쓰며 설렘을 느꼈을 때, 친구의 생일을 외우고 진심 어린 선물을 준비했을 때, 책에서 감명받은 문구를 발견하고 이것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 느꼈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편리하고 풍요로운 것들에 휩싸여 나 스스로 인간답지 않게 살아 놓고서는 허공에 대고 '외로워, 공허해, 우울해, 텅 빈 것만 같아'라고 외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인 아날로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 앞으로 당신이 그렇듯 나도 휴대폰을 사용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컴퓨터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어 엉덩방아를 쿵 찢지 않도록- 수평을 맞추며 인간답게, 아날로그의 삶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우리가 애정했던
아날로그.
아니, 우리가 애정하는- 아날로그.
글.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