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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Sep 11. 2022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

장마가 끝나니 볕이 매섭게 뜨거워졌다. 봄의 볕은 엄마 무릎에 누워 낮잠을 자는 느낌이라면 한여름의 볕은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할 수 있을 정도의 위협이 든다. 머리에 세네 배는 되는 챙모자는 필수. 어르신들과 달리 MZ세대 농부인만큼 선글라스도 껴준다. 하지만 해가 지면 슬슬 나오는 그들보다 아직 현명함이 부족한 나는 가장 뜨거운 시간, 오후 1시에 텃밭에 도착하고 말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싱싱한 것 같았던 옥수수나무와 고추나무, 파프리카들이 갈색으로 변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무리 철대로 다시 세워보려고 해도 힘없이 축 쳐지고 만다. 그러고 보니 이웃 텃밭들은 기존의 나무들을 다 뽑고 새로운 것들을 심기 위해 새단장을 해 놓았다.


나는 한참 내 키만 한 옥수수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튼실하게 자라나 알이 꽉 들이찬 옥수수를 여러 개 내어준 나무들. 왜 나이 들어 이렇게 힘없는 모양이 된 건지 애석하다. 다른 걸 심지 못 할지라도 이대로 계속 살게 해 두면 내년에 다시 꽃을 피고, 열매도 맺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망설이다 몇 주를 보냈고 다시 새 생명이 싹트고 있는 이웃 텃밭과 달리 나의 텃밭은 노인들만이 가득했다. 땅주에게 잔소리를 들은 뒤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들은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고마워. 잘 가. 내년에 새 생명으로 다시 만나자."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누구나 나이가 들고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한 생명의 노력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연의 법칙은 고귀한 것이라서 우리를 태어나게 한 그 순간처럼 다시 돌아가는 그 순간도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이 한편으론 감사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사랑하는 두 노부부가 나오는 <인생 후르츠>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두 부부는 텃밭을 가꾸고 정성 가득한 음식을 만들며 사랑스러운 노년을 보낸다. 90도로 굽은 허리, 쭈굴쭈굴한 피부, 몇 가닥 남지 않은 새하얀 머리카락. 누가 봐도 노화가 많이 진행된 갈색의 나무들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흉측하기보단 사랑스럽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마치 계절의 장면같이, 자연의 일부같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부러웠다.



그분들을 본 후부터는 노화되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아름답게 나이 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나보다 먼저 자연으로 돌아가는 텃밭의 선배들에게 많이 보고 배워야겠다. 생이라는 짧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아름답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갈 수 있는 지를.





. 강작(@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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