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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Sep 17. 2022

자신을 통제하는 힘

어른과 아이가 다른 점은 위기 상황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이는 불안해하며 엄마를 찾고 울어버리지만 어른은 곧 슬픔을 달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으로 나아간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명 어른아이들이 불안하고, 외롭고,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게의 이유가 이러한 자아통제능력 부족에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이가 들면 무조건적인 돌봄만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생 이 학년쯤 되었을 때 엄마가 갑자기 가족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아버지가 자영업을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명절 때 친척집에 가는 것 빼고는 여행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엔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우린 2박 3일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바다에서 사진도 찍고 수산시장에 가서 회도 먹었다. 저녁엔 볼링장을 갔고 다음날 아침엔 맛있는 순댓국도 먹었다. 엄마를 포함해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며칠 뒤, 나는 그 여행이 엄마가 결심한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행에 다녀온 후 엄마는 별 말없이 대학병원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말했다. 의사가 자궁 쪽에 문제가 있는데 열어봐야 알 수 있고 정확히 지금은 딱히 뭐라고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했다. 담담한 목소리여서 당시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끄제까지 언니와 나의 어깨를 안고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음악. 다린 태양계


수업을 마치자마자 수술을 끝내고 나온 엄마에게 달려갔다. 4인실의 작은 침대 위에 엄마는 소변줄을 꼽고 힘겹게 신음하고 계셨다. 잠시 뒤 간호사가 진통제를 투여하자 엄마가 갑자기 발작하기 시작했다. 계속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뻣뻣해지고 있다고 호소했고,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력을 다해 다리를 주물렀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맞지 않은 주사를 투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늦은 밤 처치를 한 뒤에야 엄마의 통증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보호자로 남기로 했다. 어두운 밤길을 언니와 걸으며 나는 고장 난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놀랐고, 끔직하게 괴로웠고, 슬퍼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의사에게 들어보니 암인 줄 알고 시작한 수술이었는데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자궁이 깨끗하지 않아 적출했다고 했다. 엄마도 무서웠을 텐데 가족들에게 아무 말하지 않고 여행 내내 미소만 보여줬던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입원은 단 이틀, 그리고 바로 다시 직장에 나가셨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장기를 떼어내고도 엄마는 그 흔한 갱년기 우울증도 보이지 않으셨다.  



엄마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픔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어른이 되셨다. 통제라는 단어 썼지만 그저 자신의 아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서 견뎌낸 것일 것이다. 엄마의 마음 안에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불안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견뎌보는 거야. 잘 될 거야. 사랑해.' 아마도 엄마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모진 삶을 웃으시며 살아오지 않으셨나 싶다.  



몇 주 전 씨를 뿌린 무 새싹이 돋아났다. 농약을 쓰지 않아 이곳저곳 벌레가 습격했고 장마를 버티느라 많이 쓰러졌다. 무 새싹에도 감정이 있다면 태어나자마자 위기가 몰아쳐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불안하다고 생각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무 새싹들에게도 이야기해줬다.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해!'하고. 그랬더니 '너나 잘 하렴'하는 것 같다. 치.




글. 강작(@anyway.kkjj)


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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