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깨우는 주문
낭만을 깨우는 주문
지난주 노원구에 위치한 책방 '지구불시착'에 일일책방지기를 지원해서 하루 동안 책방 운영을 해보았습니다. 혼자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걱정되어 사장님께 손님이 많이 오면 어쩌냐고 물어봤더니 '그럴 리 없어.'하고 안심(?)을 시킵니다. 어찌어찌 오픈은 했는데 뭐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다 책방 앞에 조록조록 앉아있는 작은 초록 식물에게 물을 주고 첼로 음악을 틀고 사장님의 방식으로 정리된 책을 바라보았습니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인간의 세상에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세상에 인간이 있는 듯했습니다.
몽롱한 기분에 빠져있는 것도 잠시, 곧 첫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편안한 차림의 중년 여성 한분이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박스에 꽂혀있는 중고책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어디선가 책방의 주인은 손님이 부담을 갖지 않고 너무 진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 했던 것 같은데 새내기 책방지기는 손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색하게 활짝' 웃어버립니다. 그리곤 책 두 권을 허리춤에 끼고 만원 한 장을 건네는 손님에게 '아.. 이게 얼마였는지..'하고 얼버부리기까지 했지요.
첫 손님과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고 난 뒤 한참 동안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에 책을 팔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은 문 밖에서 '아! 여기 책방이 있었네?'하고 중얼거리다 지나쳐버립니다. 결국엔 제 카드를 꺼내 사고 싶었던 책을 결제합니다. '18000원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조금 위안이 됩니다.
늦은 오후에 사장님이 책방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셨는지 몸에 땀냄새가 풀풀 나고 약간은 지친 모습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책방에 들어오면 사장님은 기운을 차립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혼자 있었을 때는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오자마자 손님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사장님이 무슨 주문을 왼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일까요?
책방 앞에 전시되어 있는 포스터를 흘끗 보고 지나치려는 커플에게 사장님은 고개를 돌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랬더니 그냥 가려던 발길이 돌려져 책방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장님이 한 것은 그냥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였는데 포스터 두장에 책까지 판매됩니다. 그렇게 책방과 손님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저는 3년 전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역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입니다. 집을 계약할 때 만난 부동산 소장님 말고는 대화를 해본 사람이 없었고 무언가 계기가 될만한 것이 없다면 인연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처를 옮기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어 회사와 같은 소속 기관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공감하실 겁니다. 바로 앞 집에 사는 이웃과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외로움이 많은 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주문은 참 신기합니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했을 뿐인데 앞 집 이웃이 저의 안부를 걱정하고 마트 아주머니께서는 사은품을 더 챙겨주고 취미로 하는 텃밭에서 사람들이 무료로 기술을 알려줍니다. 온화한 낭만의 순간들이 인사로 시작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주문을 얼마나 외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주문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낭만적인 인연을 마주하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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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
insta. @anyway.kkjj
글을 쓰며 이소라 님의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라는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유월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