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May 26. 2024

다정한 청소를 합니다

낭만이 들어올 자리 만들기 

  

낭만이 들어올 자리 만들기


  좋은 다짐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청소부터 합니다. 물건이 가지런히 놓이고 깨끗한 공간이 생기면 생각도 착착 제 자리를 찾아가고 좋은 다짐이 앉을 자리도 생깁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청소를 가장 잘하는 달인은 올해로 여든일곱이 된 저의 외할머니입니다.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잠시 행동을 망설이게 됩니다. 윤이 나는 장판과 물기 없는 싱크대, 깔끔한 침구와 키에 맞게 가지런히 놓인 약통들 앞에서 조심스러워지죠. 제가 깨끗하게 설거지를 해도 성에 안 차셔서 다시 정리하시니 대단한 청소 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세가 많아 몸도 불편하시고 몇 년 전 할아버지도 여의셔서 슬픔이 클 텐데도 할머니는 늘 여유로운 미소를 지니고 계십니다. 청소가 일상의 기본을 단단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청소하시는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으면 유달리 특별한 방법으로 하진 않지만 뭔가 다름이 느껴집니다. 분명 저와 같은 방법으로 싱크대를 닦는데 할머니가 닦은 표면을 보면 더 말끔히 닦인 듯합니다. 찻잔도 할머니가 정리를 하면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히 안착한 느낌이 들죠. 왜 그럴까 늘 궁금했는데 최근 이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면서 불현듯 할머니의 특별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 물건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사드린 뚜껑이 있는 머그컵은 수년 째 '할미 컵'이 되어 애지중지 찻장 맨 앞에 놓이고, 마른 수건으로 닦이고, 천천히 뚜껑이 닫히고 있죠. 매번 사용하기 전엔 '이건 우리 지혜가 사준 컵이야. 할미컵.'이라는 마법의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컵뿐만이 아니라 플라스틱 칫솔, 낡은 수첩, 오래된 폴더 휴대폰도 할머니의 다정한 애정을 받습니다. 폴더식 휴대폰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닫은 후 작은 천 가방에 휴대폰이 떨어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넣고 자크를 잠구는 모습은 참 귀엽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할머니를 보면 마치 아기 다루듯 그릇을 들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닦아줍니다. 청소를 마치면 힘들고 지친 표정이 아니라 '흠!'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시죠. 그런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에게도 그릇처럼 윤기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선 혼자 해야 하는 집안일이 두배로 늘어나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다정한 청소를 하는 할머니를 떠올리고, 물건과 대화하고 노래 부르며 청소하는 디즈니 공주들을 생각합니다. 저도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으로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하고 말하고 다정하게 닦습니다. 빨래를 할 때도 '덕분에 오늘 외출이 즐거웠어. 깨끗이 씻자!'하고 속삭입니다. 그럼 집안일을 하고 지치는 게 아니라 신기하게도 사랑으로 가득 충전된 것만 같습니다. 제게도 윤기가 흐르고 있을까요? 


  낭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낭만의 뜻처럼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면 시작되는 것이죠. 지치고 힘든 일이 있다면 다정한 청소를 해보면 어떨까요? 이 연재와 함께 할 동안 당신의 일상에 낭만이 들어와 가득 찰 수 있도록 다정한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_

글. 강작

insta. @anyway.kkjj    


빗소리가 좋네요. 다음 주 일요일에 만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