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인(時印)

시간이 말을 걸어오는 방식

by 강라마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인 롭부리를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어떤 목소리는 원숭이의 울음처럼 소란스럽게 현재를 뒤흔들고, 어떤 목소리는 낡은 벽돌처럼 침묵 속에서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날, 나는 롭부리에서 말을 걸어온 두 개의 다른 시간을 만났다.

첫 번째 목소리는 '프라 쁘랑 쌈 욧', 원숭이들의 왕국에서 들려왔다.

수백의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혼돈의 영토 속에서, 나는 유독 한 녀석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13세기의 성벽 끝에 홀로 걸터앉은 녀석.

그 고요한 뒷모습은 다른 원숭이들의 소란스러움과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이나 동족의 안위가 아닌, 저 너머의 세상을 향해 있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어지럽게 얽힌 전선들.

한때는 자신들의 것이었을 저 너른 땅을 바라보는 저 모습은, 모든 것을 빼앗긴 늙은 왕의 회한처럼 느껴졌다.

저 작은 머릿속에는 어떤 상념이 흐르는 걸까. 저것은 분노일까, 체념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기묘한 평온함일까.

나는 그저 녀석이 이 도시의 살아있는 화석, 신화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폐허의 왕'처럼 보일 뿐이었다.

P5990703.JPG <시인(時印):1> 2025.08 | Thailand_Lop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그런 상념에 잠겨 발걸음을 옮긴 곳은 '반 위차옌', 17세기 외교 전쟁의 심장이었던 곳.

이곳에서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또 하나의 시간을 발견했다.

왕이나 외교관의 거대한 환영이 아닌, 발치에 채인 아주 작은 벽돌 하나였다.


주변의 벽돌과 어울리지 않는 선명한 글씨.

'2523', 'กรมศิลปากร', 'บูรณะปฏิสังขรณ์'. 이 글을 해독한 그 뜻은 간결했다.

"태국 예술청, 1980년에 복원함."

순간, 폐허의 왕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희미한 대답을 찾은 듯했다.

17세기의 이야기가 21세기의 나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보는 존재가 아닌, 시간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또 다른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의 어느 여름날, 굵은 땀을 흘리며 이 벽돌을 쌓았을 이름 모를 장인들.

그들은 왕도, 외교관도 아니었지만, 잊힐 뻔한 역사의 조각에 묵묵히 숨을 불어넣던 시간의 수호자들이었다.

두 개의 발견은 마침내 하나의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롭부리의 역사는 살아남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분투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신화 속 동물이 되어 '살아있는 상징'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름 없는 인간의 손길에 기대어 '물리적인 실체'로 시간을 버텨낸다.

폐허의 왕은 빼앗긴 시간을 말없이 바라보며 과거를 증언하고, 낡은 벽돌은 그 증언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P5990482.JPG <시인(時印):2> 2025.08 | Thailand_Lop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keyword
이전 27화역로(驛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