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일오비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우주를 달리는 기차와 세월의 중력

by 강마레

우주를 달리는 기차


내게 가장 비현실적인 만화영화는 초등학교 때 본 <은하철도 999>였다. 주말 아침, TV를 틀면 낯선 우주와 어딘가 슬픈 눈을 한 여자, 그리고 왠지 음침한 개구쟁이가 나왔다. 메텔과 철이, 그리고 끝없이 달리는 기차. 그 장면들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또 자꾸만 보게 됐다.


그 시절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던 은색 열차 모양 연필깎이도 아마 <은하철도 999>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작고 차가운 금속 덩어리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돌리며 언젠가 저 기차를 타고 우주를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은하철도 999>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으로 1971년부터 1981년까지 주간소년킹에 연재되었고 TV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선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작품은 우주를 달리는 열차를 배경으로, 소년 철이와 신비로운 여성 메텔이 기계 인간의 세계를 향해 여행하며 성장과 인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만화가 시작될 때마다 김국환 아저씨의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우리는 얼른 TV 앞으로 모여야 했다. 그 노래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넘어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김국환이 직접 부른 〈은하철도 999〉의 열창은 지금 들어도 그 시절의 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은하철도 999 주제곡

날 수 없는 기차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무렵, 그 만화가 다시 방영됐다. 당시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설정과 철학적 주제의식, 그리고 한 편 한 편마다 다른 행성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에피소드들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당시 나에게 그보다 더 낯설었던 건 그 설정이 ‘말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주를 나는 기차, 레일도 없는 열차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안의 두 주인공의 외모와 태도. 처음엔 멋졌지만, 조금씩 이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보다 기차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레일도 없이 행성 사이를 넘나드는 거대한 열차가 어떻게 추진력을 얻는지, 공기 저항은 또 어떻게 이겨내는지. 말 그대로 기차인데 바퀴가 레일에 닿지도 않는 구조라니. 멋지기보다는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은하철도 999>는 철저한 안티사이언스 판타지였다. 우주에 공기가 있어서 창문을 열 수 있고, 중력도 지구와 똑같고, 심지어 기차 바퀴 소리까지 들린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물리 법칙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감성과 상상력만으로 달려나가는 기차처럼.


기차 안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소년 철이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인간 같지 않은 메텔. 철이는 늘 같은 옷차림에 지나치게 맑은 눈을 하고 있었고, 메텔은 어디서도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얼굴선도, 눈빛도, 목소리도…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완벽함이었다.


그래서 물리를 전공한 담임선생님께 물었던 것 같다. “선생님, 이거 진짜 가능한 건가요?”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기차는 원래 날 수 없게 만들어졌지”라고 하셨다. “공기 저항도 크고, 추진 방식도 달라. 비행기는 날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기차는 땅을 달리라고 설계된 거거든.”


그때는 그냥 신기한 과학 지식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은근한 인생 수업이었다. 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무리 꿈을 꿔도 결국 날 수 없다는.

은하철도 999

지울 수 없는 흔적


그런데 살아보니, <은하철도 999>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노래였다. 공일오비의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라는. 1993년도에 나온 공일오비 정규 4집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그 노래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하지만 그저 멜로디가 예쁜 발라드 정도로만 여겨졌다. 진짜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 건 1997년 말, 대학 시절 처음으로 사랑이 끝났을 때다.


우리는 아직 어렸다. 사랑하는 법도, 헤어지는 법도 서툴렀다. 계절이 바뀌듯 감정이 멀어졌고, 그 사람과 나는 조용히 서로의 뒷모습이 되었다. 그 무렵 익숙한 멜로디가 다시 들려왔다. 눈이 내리던 버스 안에서, 술이 덜 깬 새벽 학보사 복도에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어디서든 그 노래는 나를 따라다녔다.​​​​​​​​​​​​​​​​


모든 시간 끝나면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그때 그 모습으로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그때는 그 가사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렸다. 마치 정말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흔적을 지우고 그때 그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가사가 '다음 세상에서'라고 했으니, 결국 죽어서 만나자는 얘기였을 수도 있다. 꽤나 무거운 약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20대의 나에게는 그런 현실적 해석보다는 첫사랑은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미한 희망이 노래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깨달은 것은, 이것이야말로 <은하철도 999>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세월은 단순히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우리를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목소리, 표정, 웃는 방식, 걷는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결까지. 40대가 된 지금, 나는 20대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차가 비행기를 흉내 낼 수 없듯이, 그때 그 모습을 다시 만나겠다는 건 애초에 설계 자체가 불가능한 욕심이었다. 변한 사람끼리는 다시 만나도 ‘그때의 우리’가 될 수 없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사람은 되돌아갈 수 없다.


물리를 전공한 담임선생님의 말이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된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무리 간절해도 불가능하다는 것. 중력을 거스르는 기차처럼,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도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 노래를 좋아한다.


불가능한 약속


그 말도 안 되는 약속, 그 불가능한 꿈같은 가사를. 그 시절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진짜였으니까. 지금은 믿지 않지만, 그것을 믿고 있었던 내 마음을 여전히 사랑한다.


어쩌면 인생에는 불가능한 것을 믿는 시절이 꼭 한 번쯤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우리를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용감하게 만들어주니까. <은하철도 999>가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듯이,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는 젊은 날의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지만, 환상을 꾸는 마음만큼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직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40대가 되어 돌아보니, 그 환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출발


기차는 끝내 날지 못했고, 세월의 흔적도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가능함을 믿었던 마음이, 내 몇몇 계절을 지켜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돌아가고 싶어했던 날들, 설계되지 않은 비행을 꿈꾸던 나날들. 지금도 그 기억은 내 안 어딘가에서 천천히 달리고 있다.


기차는 결국 날 수 없지만, 그때 우리가 믿었던 것은 지금도 나를 데려가는 또 하나의 은하철도다. 그리고 그 기차는, 마음속에서 여전히 출발을 준비 중이다.


0158,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기차는 결국 날지 못했고, 사람은 결국 변했지만,
그때 우리가 믿었던 것은 지금도 나를 데려가는 또 하나의 기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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