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7_pm11:11
소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볼 수 있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는 멋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저서 『소설의 이론』에 따르면, 근대 이후 개인과 세계와의 모순으로 생겨난 것이 소설이다.
소설의 3요소는 주제, 구성, 문체이며,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이 요소들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을 소설이라고 부른다.
장편소설은 단행본 한 권 분량으로 보통 200자 원고지 800매에서 1000매 내외이지만 더 긴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나는 아직 장편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 시도는 여러 번 해보았으나 시작 단계에서부터 틀려버렸기 때문에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게 맞다. 모든 글쓰기가 집짓기에 비유되곤 하지만 장편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집을 짓는 일이다. 차원이 다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동명의 웨스 앤더슨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하고도 미스터리한 호텔
나는 단편만 주로 썼다. 우리나라 공모전 기준 단편소설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70매에서 100매로 A4용지 9장에서 10장 내외다. 장편의 10분의 1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쓰다 보면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니다.
단편소설의 기본을 배울 때 등장하는 소설이 황순원의 「소나기」이다. 발단, 전개, 절정, 위기, 결말. 이 다섯 단계가 명확히 구분되면서 간명한 주제를 갖고 있어 내가 다녔던 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서는 단편소설의 Grammar in use*처럼 사용되었다.
*Grammar in use : 영어 기본 문법책
문득 지금도 황순원의 「소나기」로 소설 수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건 중고등학교 때 끝내고 대학교 전공수업이라면 다른 것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왜 「소나기」였을까. 마치 「소나기」를 배운 것이 여전히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의 원흉이라도 되는 듯 희한한 원망이 샘솟는 중이다. 비싼 등록금 생각도 나고.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조금 다른 세상에 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상태로 세상에 쓸모가 있는지 모를, 또 나에게 쓸모가 있는지 모를 무언가를 쓴다.
어떤 강렬한 빛처럼 ‘이걸 써야해!’하고 뭔가가 다가왔을 때에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이끌려 빠르게 써 내려가기도 하는데 그게 또 빛처럼 순간적이어서 소설을 완성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빛이 사라진 이후의 글쓰기는 어둠과 고통의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