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자주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직 웬만한 직업을 가지려면 20년도 더 남은 아이에게 도대체 지금 이 질문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궁금해하고, 때로는 특정 직업을 권유(?)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게, 나도 우리 딸들이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하다. 특히 아이들의 꿈은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보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선망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이 나중에 아이들이 슬퍼할까 봐 커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시어머니로부터 몇 주 전 들은 터라 더욱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어주다가 큰딸에게, "유정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다. 딸은 평소와 달리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귓속말로 "이건 비밀인데.. 나는 엄마처럼 변호사가 되고 싶어. 변호사가 돼서 싸우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서 내 직업은 "싸우는 사람들을 (안 싸우게끔) 도와주는 사람"이다. 세상에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 말이 맞아!', '내 말이 맞아!' 하다가 가끔 현명한 사람들한테 가서 판단을 받곤 하는데, 엄마는 왜 그 사람의 말이 맞는지 잘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때로는 경찰 아저씨가 나쁜 사람을 혼내주려고 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경찰 아저씨가 안 나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오해할 때 엄마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잘 설명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건설회사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할 때는 "건물 짓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에서 엄마가 하는 일은 비밀이 아니다. 물론 여러 직업의 특성상 비밀보호의 필요성 및 어린이의 이해를 위해 상당한 각색을 거치긴 하지만 딸들에게 오늘 엄마가 무슨 일을 했는지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는 편이다. 가끔은 아이들의 허를 찌르는 질문과 명쾌한 답변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변호사는 제법 재미있는 직업으로 느껴졌나 보다. 실제로 유정이는 늘 엄마 회사에 따라오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딸이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쭐한 일이다. 누군가는 '아이들은 원래 엄마를 닮고 싶어 해'라며 간단하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엄마가 일을 함에 있어서 재미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엄마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직업이,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즐겁게 버티고 있는 하루하루가 나는 자랑스럽다.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객관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직업은 나에게 잘 맞는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누군가를 자꾸 설득하고 이기려는 습성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딸에게도 이 직업이 잘 맞다면 적극 응원할 것이다. 하지만 잘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직업을 권할 수 있다. 아직 딸에게는 직업을 고르기까지 적어도 15년이 넘는 세월이 남았으니, 여러 경험을 통해서 찬찬히 고민해보면 된다.
무엇보다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직업을 가지고 생산적인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이다. 내가 어쩌다 소위 '대박'이 나서, 매월 임대료가 천만 원 이상씩 입금되는 건물을 물려주게 된다고 하자. 그래도 나는 내 딸들이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사회에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를 하고, 남을 도와주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본인의 존재가 쓸모 있다는 성취감을 매일매일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점차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내 딸들의 소꿉놀이 속에는 이미 워킹맘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늘 일하러 가는 엄마를 보고 자란 우리 딸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아가들을 나에게 맡기고 본인들은 일하러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 요리도 하고 맘마도 먹인다. 그렇게 워킹맘의 은퇴 후 계획은.. 손주 돌보기로 이미 확정되어 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