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법
지금은 비 오는 날도 좋아하지만 어릴 때는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중학교 때부터 비 내리는 날을 즐기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으니, 바로 비오는 날 라면 끓여먹고 낮잠을 자는 것이다. 밖에 쌀쌀한 바람에 빗방울이 날릴 때 매콤 뜨끈한 라면을 먹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는 그 맛이란.
오늘 아침부터 봄비가 내렸다. 첫째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8개월 둘째를 낮잠 재운 후 설레는 마음으로 라면을 골랐다. 오징어짬뽕, 사리곰탕면, 너구리 중에 내가 고른 것은 오징어짬뽕. 비 오는 날은 짬뽕이지! 아기 우유병의 눈금을 활용해 550ml의 물을 정확히 맞춘다. 그리고 물이 끓고 나면 면과 스프를 넣고 4분 타이머를 맞춘다. 봉지에는 4분 30초라고 쓰여있지만 면과 스프를 넣는 시간, 핸드폰을 찾고 타이머를 세팅하는 시간, 타이머를 듣고 달려가 불을 끄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30초 정도는 걸리기 때문이다.
7년 전인가 교양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라면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었다. 라면 공장에서 라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보여주었다. 다른 내용들은 가물가물한데 한 가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게 있다. 리포터가 “라면은 어떻게 끓여야 맛있나요?” 하는 질문에 라면 만드는 연구가가 한 말이었다.
“라면은 봉지에 써있는 레시피대로 끓이는 게 제일 맛있습니다. 저희가 수십법 수백번 테스트해보고 만든 레시피거든요.”
그렇지. 가장 맛있는 맛을 내기 위해서 물이 550ml인지 600ml인지, 끓일 때 4분인지 4분 30초인지, 스프는 언제 넣는 게 맛있는지 여러 가지 변수를 놓고 수십 번 실험해보지 않았겠는가.
그 후로 나는 라면 끓일 때 그 짧은 레시피를 정석대로 보고 지킨다. 라면이야 초등학교 때부터 끓여와서 대충 끓여도 맛있게 끓일 수 있지만, 그 때마다 그 라면 연구가의 말이 떠오른다. 조금만 신경 쓰면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걸. 그러고 나서 보니 라면마다 묘하게 물과 끓이는 시간이 다르다. 그리고 어떤 것은 스프를 조리 후에, 어떤 것은 같이, 어떤 것은 물을 7~8스푼 남기고 버린 후에 스프를 넣는다. 이건 계량이 불가능해 늘 어렵다.
라면에 달걀을 넣거나 파를 많이 넣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바지락을 볶아 그걸로 육수를 내서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라면을 활용해 더 훌륭한 요리를 할 것이 아니라면, 그저 맛있는 인스턴트 라면이 먹고 싶은 거라면 정량의 물과 시간으로 인스턴트 다운 라면을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달걀을 풀면 매콤하고 시원한 라면국물이 텁텁해지고, 파를 많이 넣으면 달달해져서 라면 특유의 향이 많이 없어진다. 나도 종종 신김치를 투하해 얼큰하게 먹거나 치즈를 올려 치즈라면을 먹을 때도 있지만, 역시 라면은 있는 그대로가 맛있다. 그 ‘라면’을 먹으려고 라면을 끓이는 거니까.
물을 눈대중으로 대충 넣거나, 라면이 팔팔 끓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급하게 가서 불을 끌 때와 달리 정석대로 라면에 정성을 쏟으면 라면은 완벽한 맛으로 보상을 해준다. 너무 맵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너무 퍼지지 않은, 탱탱한 식감이 살아있는 면발. 호로록 한입 먹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다. 오늘은 비 오는 쌀쌀한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먹었다. 자고로 뜨끈한 국물은 찬바람 속에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니. 이제 커피 한 잔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되겠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은 도적처럼 다가오는 법이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가장 맛있는 라면 한 그릇에 행복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