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우울증에 걸렸다
항우울제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한 아들의 이야기
아빠는 술을 좋아했다. 개인 사업을 하시는 아빠는,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일이 많았다. 술을 좋아하고 호탕한 성격 덕분인지, 아빠의 사업은 잘 풀렸다. 부자까진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아빠는 특유의 외향적인 성격으로 모임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빠의 농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지역에서 큰 모임의 회장을 자주 맡았다. 빠른 일처리, 사람들을 다루는 스킬까지 좋다 보니 그랬던 거겠지. 내가 중학생 즈음이었나, 아빠는 고급 외제차를 뽑았다며 좋아했다. 자동차에 관심 없던 나는 그게 얼마나 비싼 건지 그리고 그게 아빠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차가 ‘벤츠’라는 고가의 차임을 알게 됐고, 그걸 뽑았다며 좋아하는 아빠의 맘을 조금 알게 됐다. 아빠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다. 엄마가 나가서 돈 버는 모습은 볼 수 없다며, 결사코 혼자 경제적 부담을 껴안았다. 혼자 벌어서 자식 네 명을 먹여 살리고, 부모님도 모셨다. 취업을 준비하고 내가 직접 일해 받은 첫 월급을 내 손에 쥐고 나서야,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건지 알게 됐다. 아빠에게 고급 외제차는 자신이 힘들게 일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었던 거다. 아무리 가족들이지만, 본인의 피로에 대해 전부 알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외제차는 그런 시간에 대한 인정이었을 테니. 그리고 거기서 아빠는 일종의 보상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외제차를 뽑고 좋아하는 이유를 알 때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중2병이 무섭긴 무섭다. 난 고급 외제차를 뽑았다며 좋아하는 아빠를 두고, ‘폼 잡는다’고 생각했다. 돈 따위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저렇게 과시하고 싶은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의 외제차 자부심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아빠가 태워주는 그 비싼 외제차를 타고 잘도 학교를 오다녔다. 내가 고등학생 즈음,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도 아빠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차는 완전히 망가져 폐차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새 차를 뽑을 만큼의 보험금을 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싼 차를 구입했다. 난 그때 그냥 아빠가 더 이상 차로 폼 잡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아빠는 어려워진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아래서 치고 올라오면서 아빠의 사업은 예전만 못해졌다. 명절 때만 되면,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밀려들어오던 선물도 뚝 끊겼다. 아빠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아빠에게 볼일이 없어졌다. 아빠는 그러자 술을 더욱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잠 자기 전까지 술만 마셨다. 그런 아빠를 두고 가족 모두가 뜯어말리기도 해 보고, 무시도 해보고, 타일러도 보고, 화도 내봤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빠는 허전한 무언가를 술로 채우려 했다.
그러다 아빠의 책상에서 항우울제를 발견했다. 아빠는 일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상태였고 모임도 꽤 정리했다. 아빠는 남들 모르게 항우울제를 먹으며 버텨온 것이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힘이 되어줘야 하는데. 하지만 어리고 모자란 난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다. 난 딱 그 정도였다. 아빠는 나이가 더 들면서 술을 이기지 못하게 됐다. 그 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해 술을 잘 마시지 않게 됐다.
그러자 아빠는 그 후로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색소폰을 독학하기 시작했고, 최신 전자기기를 모으기도 했다. 비싼 악기들을 사들이고, 연습실도 지었다. 몇 년을 연습하시더니, 처음에는 음자리 하나 잡기도 어려워했던 아빠의 색소폰 실력이 지금은 청중들 앞에서 곡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지역 행사에 아빠가 나가 홀로 독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아빠를 달가워하지만은 않았다. 일도 없으면서, 비싼 악기와 연습실에 돈을 쓰는 걸 못 마땅해했다. 나 또한 그랬다. 당신 취미에 그렇게 돈을 쓰시면서 항상 돈 없다고 말하는 게 조금은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빠가 멋있다. 아빠는 당신의 우울증을 견뎌내셨다. 아직까지도 어리고 모자란 난, 아빠에게 당신의 우울증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다. 어떤 어두움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해 아직도 난 모른다. 하지만 난 아빠가 최신 전자기기를 구경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는 이렇게 멋진 시대에, 최첨단 기기들이나 신기한 것들 잔뜩 이용해 보고 죽고 싶어.”
난 몰랐다. 아빠가 술 마시는 거 외에,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바랐는지 말이다.
아빠는 이제 구세대다.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난 그게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는 충분히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 과정이 아빠에게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었단 것만은 안다. 난 이제 아빠가 색소폰을 마음껏 불고, 경험해보고 싶던 최신 전자기기를 마음껏 즐겨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아빠의 항우울제는 그런 소소한 취미 생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살아온 세월의 반도 채 살지 못한 나는 모자라고 어려서, 아빠의 그간 서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돈 버는 것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아빠를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더 성숙하고 어른이 되어서,
내가 아빠의 항우울제가 되기를 바라본다.